혼술, 혼밥, 혼영…. 1인 가구가 급증했다더니 ‘혼자’하는 문화생활이 오늘날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재미난 것은 혼자 하는 것이 트렌드인 동시에, 사람들이 많이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혼자 놀기, 어디까지 해봤니?’와 같은 포스팅만 보더라도 이 양가적인 성을 알 수 있다. ‘레벨 1, 혼자 쇼핑하기. 레벨 2, 혼자 영화 보기. 레벨 3, 혼자 노래방 가기. 레벨 4, 혼자 1박 이상 여행가기. 레벨 5, 혼자 콘서트 / 페스티벌 가기. 레벨 6, 혼자 샐러드바 가기. 레벨 7, 혼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곳곳의 보따리 장사꾼과 여러 노점상이 청계천 일대로 모여들면서 현재 동대문 시장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거대 상권이 형성됐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대학로와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헌책방이 자리 잡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청계 5가부터 지금의 동대문종합시장에 이르기까지 책방은 어지러이 늘어섰다. 1960년대 초 3층짜리 평화시장이 세워진 이후에는 현재와 같이 건물 1층으로 헌책방이 한꺼번에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이후 30여 년
1바클리가 사라졌다.2중요한 건아론은 말꼬리를 늘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턱에 괴었던 손을 팔꿈치 아래로 가져가는 동작은, 어딘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의 두터운 이마는 어두침침한 조명을 받아 눈 밑으로 길게 그늘을 드리웠다. 그늘 밑에서 번뜩이는 동공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천하의 짐 모리슨도 대학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로 D를 받았다는 거야. 가장 큰 꿈은 대개 그런 식으로 종언을 고하지. 터무니 없이 끝나버린다고. 알겠어?아론은 잔을 들이켰다. 여자도 마찬가지고. 그는 덧붙였다. 여
“진도 팽목항 연결합니다. 김관 기자!” “네. 팽목항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관 기자는 진도 팽목항을 지켰다. 팽목항에 나가 있는 그의 피부는 바닷바람에 거칠어졌고, 얼굴엔 수염이 약간 거뭇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분명히 살아있었다. 진실만을 정확히 보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JTBC 사회부 기자 김관(영문 01) 동문을 만났다. 기자는 ‘남 얘기하는 직업’김 동문은 대학 입학 전까지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전형적인 한국형 교육제도의 틀’에 갇힌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알바를 하던 중이었다. 늘 그렇듯 인터넷을 보며 딴 짓을 하다 발견했다. ‘제주항공 신규노선 특가.’ 그 순간 방학의 무료함을 날리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고 따뜻한 곳이라면 그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친구와 그날 바로 표를 끊었다. 5박6일, 목적지는 베트남 하노이와 호이안. 옷 한 벌 배낭 하나 메고 간 내 첫 자유여행이었다. 비행기는 여러 번 타봤지만 아직 스스로의 계획에 의한, 자유로운 ‘여행다운 여행’은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여행을 즐기는 성격의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은 그
지하철역 근처에는 간혹 붉은 조끼를 입고 잡지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빅이슈’ 판매원. 각자의 사정으로 노숙인이 됐으나 남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힘든 점도 있지만, 빅이슈를 통해 그들은 과거의 절망을 딛고 나아가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2010년 한국에 창간돼 500여 명의 노숙인들에게 자립 의지를 심어준 빅이슈를 탐구한다. 빅이슈는 1991년 9월, 영국에서 처음 창간됐다.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더 바디 숍(The Body
노점상은 도시빈민의 생존 수단의 하나로 전 세계 어느 도시지역에서나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도시공간에 본격적으로 노점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해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도시빈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생계 수단을 마련하고자 노점을 차렸다. 이렇게 발생한 노점상은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가 추진되며 그 수가 급증했다. 경공업 중심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고 도시빈민이 됐기 때문이다. 그 후 점차 노동력이 고급화되고 일자리도 늘어 노점상 수가 잠시 감소
# 노점의 메카 종로대로 비우기“어휴, 그때는 노점상이 정말 많았어요.” 종로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가 2009년 종로대로의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 종로대로는 600여 개의 노점상으로 북적였다. 유동 인구가 많아 노점상이 들어오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늘어나는 노점상 때문에 통행하는 데 큰 불편을 겪었다.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단속원이 동원됐지만, 노점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이에 종로구청은 ‘걷기 편한 종로대로’라는 표어 아래 새로운 노점상 관리 방식을 고안했다. 바로 노점특화거리 사업
“저 여기 붕어빵 6개에 얼마인가요?” “네, 1000원이요.” 군것질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학원 수업이 끝나면 주린 배를 채우러 노점을 자주 이용했다. 값이 싸기도 했지만 점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노점상분들의 친근함에 이끌려 노점에서 자주 군것질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05년 어느 날 전날까지 분명히 있었던 붕어빵 아저씨가 없어졌다. 나는 궁금했다. 항상 이 자리에 계시던 분이 왜 사라지셨을까? 다음날이 돼서야 친구들로부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용역 아저씨들이 노점상 아저씨들을
▲ 김기진 기자 매주 일요일 오후 1시가 되면 혜화 로터리 한 편에 100m의 필리핀이 들어선다. 향수에 이끌린 필리핀 이주민들이 모여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는 이곳은 혜화동 필리핀 장터다. 이 신기한 시장에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필리핀 물건과 음식들이 즐비하다. 시장 옆에는 필리핀 공용어인 타갈로그어로 미사가 열리는 혜화동 성당이 있다. 지난달
우리에게 익숙하고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축물이 주변 공간의 맥락(context)과 잘 어울린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서울을 세계적 디자인 메카로 만들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추진됐지만 주변 공간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축물 중심으로 설계가 이뤄졌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