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존중(尊重)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높이어 귀중하게 대한다’라는 의미다. 이러한 존중은 나의 도량이 좁은 탓에 상호간의 기브엔테이크가 가능한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몇몇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성인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군가를 존중하는 일은 내가 존중받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런 나의 일상에 혐
성대신문에 들어온 지 3학기 째, 나는 사회부의 기사를 준비할 때면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내가 직접 정한 주제로 지면을 채운다는 것은 영광스럽다기보다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런 방향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과연 독자에게 가치가 있을까?’ 기사를 준비할 때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독자에게 가치 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 학보사 기자로서 해내야 하는 의무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기자인 내가 가진 힘이기에 남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신문이 대다수의 학우에게 중요한
『왜 지금 지리학인가?』 HOT BOOK 코너를 맴돌던 기자의 눈에 포착된 이 질문은, 외면하기에는 강렬했다. 하지만 이내 소비자로서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교양 도서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수만 가지 속에서 눈에 띄려면, 강렬한 제목 정도야 뭐. 과장되게 말하자면 HOT BOOK이 갖춰야 할 미덕과도 같다. 때문에 ‘미안하지만 너를 들어줄 순 없겠다!’하고 뒤돌아서려 했으나 왠지 그럴 수 없음에 집으로 데려와 침대 맞이에 모셔놓아 본다.소재다, 소재. 소재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왜 지금 역사인가, 왜 지금 도덕인가도 아닌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의 집 안방에서 유품정리업자와 폐품정리업자들과 기자가 둘러앉아 고개를 처박고 자장면을 먹었다. 안방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공부방과 대치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오전 작업 때 쓸어 모은 각종 폐품들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었다. 거실을 가로질러, 공부방으로부터 건너오는 냄새는 콧등을 찌르며 넘어왔다. 온 집안을 둘러싼 날 선 냄새에 코가 얼얼했으나, 코끝을 간질이는 자장 냄새는 기어이 기자를 허기지게 했다. 당혹스러웠지만, 가구를 옮기고 책들을 쓸어 담고 수많은 옷가지를 포대에 구겨 넣은 오전의 육체노동에, 점심의 허
시골 주택에 살았던 어렸을 적, 집 마당의 나무와 텃밭은 내게 즐거움의 장소였다. 봄에는 따스한 마당에서 사다리를 올라가 시큼한 앵두를 따먹는 게 나의 일상이었으며, 더운 여름엔 시원한 강에서 다슬기를 한 소쿠리 모아 푹 삶아 먹기도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만큼 마당에 감과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추운 겨울이 끝나갈 때 즈음 텃밭 주위에 나는 쑥과 냉이는 좋은 별미였다. 이번 자연인 특집의 체험기를 위해 찾아간 영월 산골은 바쁜 서울 생활에 지친 나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영월 산골까지 가기 위해선
나는 사진 촬영을 취미로 가진 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카메라를 접하고 다뤄왔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의 매력은 어린 시절의 나를 홀렸고, 지금도 홀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풍경 사진은 물론 인물 사진까지 다양한 사진을 찍는다고 으레 생각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어려워했고 그래서 항상 내 사진첩에는 풍경 사진과 우리 집 고양이 사진만 가득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러다가 인물사진을 영영 찍지 못하는 것이 아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할 때 자주 불러내 채팅창을 채워주는 친구가 있다. 내가 부를 때마다 군말 없이 나와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기도 공감해주기도 표현해주기도 하는 친구. 그 친구의 이름은 사랑스런 몸짓과 표정을 짓는 토끼, ‘베니’다. 처음에는 귀여운 모습에 반해 베니 이모티콘을 구매했다. 하지만 그 이모티콘에 담긴 사연과 베니를 그린 구경선 작가를 알게 되고는 열렬한 팬이 되어 베니를 간직해가기 시작했다. 시청각 장애를 가지고 소리가 없는 세상, 빛마저 사라져가는 세상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낼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는 4학년의 생활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선택한 성대신문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내가 쓴 기사가 처음 실린 것은 ‘꽃이 피기 전’인 3월 초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사를 쓰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지나가지 않고 지면 속에 고스란히 남겨지는 글과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름 뒤에 기자라고 붙는 모든 내용은 신중하지만 뚜렷하게는 담지 않으려 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조심스러웠던 나였지만, 이번 시각면은 욕심을 냈다.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 지쳐 ‘기다림’을 그리워했던
2014년의 나는 행동하지 않는 자들이 싫었다. 그들을 향한 나의 분노는 ‘세상이 이 모양인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라는 답답함의 발현이었다. 그들의 행동하지 않음이 내겐, 곧 부정의에 대한 침묵이었고, 종국에는 동의로까지 치환되었다. 그때의 내겐, 행동하지 않는 자들이 비겁해 보였다. 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15년의 나는 지난 시간의 반작용인지, 행동하는 자들이 불편해졌다. 마치 그들이 행동하지 않는 이를 자신의 잣대로 경멸하고 무지한 자로 치부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스스로 찔렸던 것일까. 나는 또 다른 극단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기자’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 꿈은 나를 ‘성대신문’으로 이끌었다. 사회부 기자로서 매번 기사를 쓸 때마다 어떻게 하면 흥미롭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힘들게 기사를 쓰고 난 뒤 누군가 기사가 별로라는 뉘앙스를 조금이라도 풍기면 쉽게 좌절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꽤 많은 기사들을 써왔지만 누군가에게 당당히 내보일 수 있을 만큼 인정받은 기사도, 인정한 기사도 없었다. 이번
거북이의 꾸준함을 칭찬하지 않고 토끼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사회.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놓치며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관계도 그중 하나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자신이 가장 중요해지고 타인의 삶은 방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잊어버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려보자. 우리 모두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바라보는 존재다. 봉사를 다룬 이번 특집에서 나는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사람의 관계’
신문이 발행되면 기자단이 모두 모여 지면평가를 진행한다. 이 때 기자단 사이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기사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교적 학내사항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을 기자단들에게도 보도부에서 다루는 기사들, 특히 학생자치에 관한 내용은 쉽게 외면당하곤 한다. 사실 학생자치가 학우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학생회와 학생자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로도 학우들이 학생자치에 큰 관심을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