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한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그 말은 성대신문에의 지원을 2년 가까이 고민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성대신문은 오랜 시간 지원을 고민하다 글 쓰는 데에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놓은 지 오랜 낭만이었다.나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젊은 세대처럼 지면의 글씨보다는 화면의 영상이 더 익숙하고 즐거웠다. 장기화된 바이러스로 방 안에서 즐기는 각종 영상 매체들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웠던 어느 날, 성대신문 뉴미디어부 모집공고를 보았다. 미처 다 내려놓지 못한 미련이 에브리타임의 성대신문 게시판을 즐겨찾기에서 해제하지 못하고
항상 막연하게 방송, 언론, 미디어 매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너무 오래된 꿈이었던 지라 왜, 언제부터 이 꿈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다 남들보다 긴 수험 생활을 겪으며 입시에 지쳐 잠시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 대학에 입학한 후, 다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어린 시절 내가 꿈 꿔왔던 그 분야가 가장 내 심장을 뛰게 한다는 사실이었다.그 후, 이제는
용의 꼬리가 되고 싶어, 뱀의 머리가 되고 싶어?막 13살이 된 겨울에 캠프에서 만난 여자애의 물음에 참 이상한 걸 생각한다 싶었다.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보다는, 공을 멀리 차서 친구들의 환호를 듣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좋았다. 그 애를 지금 다시 만난다면, 묻고 싶다. 뱀의 머리가 용의 꼬리보다 낫다고 알려주는 속담 책에게도 묻고 싶다. 뱀은 용의 존재를 알까. 안다면, 뱀의 머리에서 안주할 수 있을까.성대신문은 내게 용의 꼬리였다. 다만 조건이 있다. 다시 뱀으로 돌아갈 수 없다. 3학기 의무 활동은 내게 그렇게 들렸다. 한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 중 하나였던 학보사에 들어갔다. 편집부로 2년간 일했고, 애정을 가지고 학보를 제작했다. 하지만 기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대신문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성균관대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대신문 모집 글도 보았지만, 더는 학보사에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익숙하고 궁금해서 관심은 갔지만, 전공으로 택했던 ‘영상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지원하지 않았다.그러다 작년 10월, 성대신문 뉴미디어부의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새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초반까지만 해도 학보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내 진로와는 딱히 연관성이 없을 것 같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관심 있는 특정 분야와 관련된 활동만 하면서 이유 모를 부족함을 계속 느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무언가 허기 진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된 성대신문 뉴미디어부 모집 글이 나의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글을 쓰는 일은 어떤 방면에서든 미래의
믿는 구석은 없지만 스스로를 믿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어제 생각한 건데, 기사 쓰기 전 눈 시릴 때까지 남의 글을 살피는 습관이 생길 것 같아요아직도 저는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무겁습니다밤을 쪼개어 쓴 글들이, 진심 어린 말들이 당신께 어떤 형태로 닿게 될까요이왕이면 모르는 상태가 좋습니다정확하게 말하면 ‘모르겠는’ 상태입니다알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잘은 몰라서 괴로운 순간. 머리 아픈 느낌아는 것 없어 겸손할 수 있고 모르니 궁금한 게 많아 힘이 나서요자주 ‘모르겠고’ 싶으며모르기에 쓰고 싶습니다현실들은 제 눈
지난 학기 마지막 1688호, 사회부 지면 0.5p가 남아 ‘스토킹처벌법’이라는 주제로 내가 덜컥 지면 기사를 쓰게 되었다. 원래는 웹기사로만 쓸 예정이었으나 남은 지면을 채우기에 내 소재가 적절하고 시의성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말고사가 점차 다가오는데 기사를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긴 했지만, 어차피 써야 했을 기사를 더 빨리 마무리해버린다는 점에서 안심이기도 했다. 문제는 ‘기성 기사를 반복하는 수준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지? 내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지?’ 였다. 스토킹처벌법은 시행 초기에 관심이 뜨거웠지만, 기사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1월 1일 0시가 땡 하는 순간 들을 노래를 준비하는 게 습관이 됐다. 새해 첫 곡대로 한 해가 풀린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실천한 게 그 시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성대신문에 지원했던 작년에는 가호의 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길었던 휴학을 끝내고 복학생으로 첫 수업을 들었고, 수습기자로서 신문사 생활을 시작했고, 또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그렇게 맞이한 시작들은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기사는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고
살면서 많은 글을 쓰게 된다. 개인적인 일기부터 논술 시험, 리포트,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 등 많은 글들을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쓰게 된다. 그 글이 만족스러울 수도,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대신문에 들어오기 전의 나의 글은 지극히 나만을 위한 글들이 많았다. 내 생각을 정리하거나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학교에 온 이후 색다른 목표를 위한 글들을 써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성대신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학교의 언론인 만큼 독자인 학우들에게 학교 소식을 알리고 여러 생각들을 재고
또다시 펜이 부러졌다.'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하고 중얼거린다.펜을 특이하게 쥐는 나는 글을 쓰다 종종 뚝- 하고 플라스틱 펜을 부러뜨린다.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탓이다. 못쓰게 된 펜을 보니 속이 쓰리다. 그러나 이내 은근한 자부심마저 든다.'글 쓰다 펜이 부러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부러진 펜은 버리지 않고 필통에 모아둔다. 펜들의 무덤이다."서현아, 넌 힘을 좀 빼야 돼."생각이 많던 나에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 별거 없다고, 너무 끙끙대며 살면 부러지기
1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성대신문 포스터를 보았다. 영화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자라는 직업은 더 이상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포스터를 보고 나니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나의 꿈은 기자였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는 명확히 잘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기자가 되고 싶었고, 20대가 된 후 어느 순간 그 마음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2년 동안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기자라는 꿈은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고, 정
글 쓰는 것? 싫어하진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이 딱 좋아할 정도. 글에 나의 생각이 넘쳐날 정도로 가득히 채워 넣고 최대한 길게 쓴다. 교과서적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은 스트레스가 아니고 오히려 쉬웠다. 시를 쓰는 것도, 에세이를 쓰는 것도 그저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이니까.뭣도 없이 오만에 찬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학교 글쓰기 교양 수업은 b+을 나에게 던져 줬다. 학점에 그다지 흥미가 없던 터라 학점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만 내 능력을 직시하는 순간이었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글 쓰는 능력을 키
수습일기를 쓰기 전에 성대신문사 입사지원서를 찾아봤다. 당시 성대신문사에 지원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아무런 경력도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기자를 꿈꿔왔다는 등의 화려한 스토리도 없었다. 정말 값진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성대신문사에 지원했다. 그리고 벌써 준정기자가 됐다.지난 한 학기 수습기자로 생활하며 가장 많이 되뇌었던 말은 ‘신기하다’였다. 취재하는 과정,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 등 기사가 지면으로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새롭고 신기했다. 신문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었고 모두가 발
여기저기서 MZ를 찾는다. 기업은 각종 마케팅에 MZ를 활용하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경선 당시 ‘민지(MZ)야 부탁해’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미디어는 MZ에 대한 분석을 쏟아낸다.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하고, 불안정한 사회 속 포기에 익숙하며 …’ 윗세대와 대조되는 이러한 특징들에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세대 구분상 MZ에 속해 있는 필자가 보기에도 흥미로울 정도니까. 그 세대 구분이란 것도 재밌다. MZ는 밀레니얼(M)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로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말한다. 20대
참 모순적이지 않은가.햇빛 쨍쨍하고 높은 하늘을 보고서 우울하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에는 죽죽 젖어가며 행복하다는 것이. 인생을 그리 부단히 복잡하게 살아왔다. 뭣하나 좋지 않은 게 없었고 뭣 하나 싫지 않은 것도 없었다. 행복할 때에 걱정에 죽고 걱정할 때에 행복에 미친다.그래서 그런지 사랑도 너무 쉽고 동시에 어렵다. 내 몸과 눈이 어려서, 서로의 반짝이는 눈에 반하기 쉽고, 나의 모든 것을 주기가 너무너무 쉽다. 사랑의 진입이 세밀하게 자극적이고 간단하다. 단 한숨의 눈 마주침으로 인해 나는 푸른 마음을 맡긴다. 단 한
남성에 적대적인,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유난 떠는, 페미니즘에는 다른 급진적 사상보다 유독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남성을 향해 무언가를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책은 아니다. 정희진 씨는 페미니즘이 저항이론이나 운동이 아닌, 새로운 인식 방법론이라고 강조한다. 그 안에서 페미니즘을 설익게 접한 기자가 어떤 요구를 도출해내는 작업이 사뭇 조심스럽기도 하다. 아래 쓰이는 내용이 정희진 씨의 주장으로 와전되지 않기를 바란다.남성이 ‘여성의 영역’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다. 이때 여성의 영역이라는 표현은 특정 영역
필요한 건노력이 아니라 휴식일지도.
처음 취재를 나갔던 날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찬 바람이 매섭던 2021년 2월, 지난 학기 개강호 나의 첫 기사 소재는 ‘팀빌딩과 온라인 입학식’이었다. 당시 팀빌딩에 참여한 21학번 학우의 멘트를 얻고자 프레스증과 명함을 챙기고서 무작정 자과캠으로 향했다. 그때의 자과캠은 낯설어서인지 긴장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더욱 춥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프레스증을 목에 건채, 한 손에는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새 명함을 다른 한 손에는 멘트를 녹음할 휴대폰을 쥐고 후문에서 1시간가량을 서성거렸다. “안녕하세요 성대신문 보도부 기자 이현정
소확행이든 대확행이든 당신도 행복해지고 싶은가요? 그러면, 우선 당신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은 당신 몸과 당신 정신의 온전한 주권자입니다. 세상에서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잘난 면과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고서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십시오.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도 당신의 삶에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당신 삶의 설계자 그리고 운전자는 당신입니다.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조언에 귀를 기울이되,
사진투고 에메랄드빛 바다를 손에 담고 싶은 마음에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곤 쭈그려 앉아 파도가 나에게 닿길 기다렸다. 파도는 자기를 만져보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닿일락 말락 했다. 바닷물과 밀당을 하다 닿은 그 감촉은 그동안 바다를 보고 싶었던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시원하지만 투명한 물속에 담긴 햇살의 빛깔이 참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