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도(사학11)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전에 본인의 모 지인분이 터키에 잠시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본인을 위해서 여러 가지의 은화, 동화를 기념 선물로 주신 적이 있었다. 총 여섯 개의 주화로 고대 아테네 공화국 시절의 은화로부터 시작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 주화, 로마 3두정 시기 폼페이우스의 주화, 로마 제국 고르디아누스 황제 - 어느 고르디아누스의 것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 의 주화, 비잔틴 시기의 동화 - 당시에는 이것을 폴리스(Follis)화로 불렀다 -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도 비잔틴 빠돌이(?)를 자처하며 전공을 준비해나가는 본인으로서는 정감가는 비잔틴 동화의 정체가 가장 궁금했다.
역덕(?)을 자처하는 본인은 다행히도 화폐의 도안에 써진 글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도안목록은 가지고 있었다. 화폐의 뒷면(오른쪽)에 있는 기호들은 이 동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표식이다. M은 그리스어로 40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당대 가장 작은 화폐인 누무스(Nummus) 기준으로 40 누무스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만 내가 이 화폐가 생산된 시점으로 추측하는 레온 5세(813~820) 시기에는 이미 누무스 화폐가 폐지된 상태라 의미가 없어진 상태였고 그 위에 있는 XXX, NNN 기호도 무의미해졌다고 한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동화 형태의 주화는 바로 그 직후인 쎄오필로스 황제(829~842) 때의 화폐 개혁으로 사라진다는 점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 무렵부터 계속 이어져 온 화폐 도안의 전통을 마지막으로 준수한 최후의 몸부림이 잔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옛날의 주화, 특히 저렴하면서도 많은 옛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동화의 경우는 그것의 이력을 추적하는 것이나 그 속에 담긴 이미지 및 언어 프로파간다의 파급력,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상상 등 실용 관점에서 쓸모없어 보이나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지적 유희를 제공하고 지적 영감을 제시해주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하나씩은 가져봄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