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익호(인과계열12)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신사의 품격’, ‘각시탈’, ‘응답하라 1997’, ‘넝쿨째 굴러온 당신’, ‘해품달’ 등등. 이것들 중 적어도 하나는 당신이 보거나 알고 있는 것일 터다.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최근 높은 시청률과 함께 흥행몰이에 성공한 한국 드라마들이다. 최근 드라마 열풍이다. 아니, 드라마는 그 시초부터 열풍적인 장르였다. 드라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침체기가 온 적은 없었다. 왜 사람들은 드라마에 열광할까? 이 부분을 깊이 분석해보면 타인에게 무관심한 우리의 삭막한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윤활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다.’고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말했다. 이 말에 따르자면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갈등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선인은 선인에게 동조하고 악인은 악인에게 동조하면서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보호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편 가르기 하려는 본성, 남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안정을 얻으려는 본성(공감)을 아리스토텔레스 이전부터 현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러한 인간들의 본질을 선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극?, 즉 드라마이다. 극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 극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분노와 슬픔, 동정심, 두려움 등의 감정을 야기하게 하여 그것이 극 속에서 순화(카타르시스)되도록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은 사라질 수 없는 존재이므로 쌓여서 폭발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적절히 배출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극은 정말 선한 의도를 가지고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이유를 이제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반대로 생각해보자. 드라마는 현실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 쏟아지는 관심이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에너지가 현실에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
분명히 가능하다. 물론 드라마는 그 자신의 투영과 감정 해소가 보다 잘 일어나도록 극적효과를 의도적으로 아주 잘 깔아놓은 가상의 타인의 삶이다. 그러므로 현실보다 공감하기가 쉽고 편한 건 맞다. 그래도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모방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들은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우리 사람들이 드라마에 갖는 관심은 본질적으로 우리 현실세계에 갖는 관심이라 볼 수 있다. 주객이 전도된 세상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무관심으로 삶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 지구상에 많다. 왜냐면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공감에 의해 힘들고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도 힘들고 아프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공감의 잘못된 발현인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불쾌를 느끼고 불쾌를 해소하기 위해 공감하기를 멈춘다. 왜 이것이 그들의 고통을 해소시켜주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나아갈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 있다. 모든 인간이 행복할 수는 없다고. 반드시 불행한 인간이 있기 마련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공감하고 도와준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기에 내가 굳이 해소되지 않을 수 있는 고통을 안고 갈 이유는 없다고. 따라서 보다 손쉬운 방법인 ‘공감하지 않기’를 행하여 불쾌의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자고.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발상을 전환하자. 모든 인간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다만 그들이 아직까지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일찍이 공감하기를 그만해서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스스로를 돌아보자. 자신의 인생이 드라마임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열심히 사는 들장미소녀 캔디 같은 드라마라면 공감에 의해 타인의 삶도 드라마일 것이고 도울 것이다. 물론 혹자는 ?불우한 이웃에게 지금 타인들이 관심 가져 줄 재미있는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냐??라고 나에게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이해다.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의미는 어려운 이웃을 보고 느끼는 쾌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이 구원받음으로써 오는 쾌감에서 유발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 관심을 타인에게도 돌려보자. 드라마의 대리만족을 넘어서서, 행동함으로써 보다 깊은 감정적 해소, 감정적 만족을 해보자. 언제까지 앉아서 눈 뜨고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