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학과 3학년 한소범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1.
민희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엄마의 손을 집요하리만치 찾아서 잡아 쥐고 또 잡아 쥐었다. 어머니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앙 다문 민희의 입술이 지나치게 결연해서, 나는 무슨 말을 처음으로 건네야 할지 모른 채 문 앞에서 10분 째 서성거리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영정 앞을 지키고 사람들을 맞는 오빠의 맞은 편에서 땅만 바라보고 있던 민희가 나를 발견한 것은, 내가 식장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머뭇거린 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집 안방에서 목을 맨 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것이 민희였는데, 발견한 것이 어제 오후였으니 채 하루도 안 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민희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자살 앞에서 보일만한 곤혹스러움이나 절망의 표정을 보이지 않고 차라리 호되게 배신당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락이 온 건 아침 수업을 마치고 난 바로 다음이었다.
“바빠? 우리 아빠 죽었다. 잠깐 내려올 수 있니?”
그것뿐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는 민희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하나도 어려 있지가 않았고 어쩐지 화가 난 듯한 말투여서 나는 쉽사리 어떤 애도의 표현도 하지 못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 길로 용산 역으로 달려가 기차를 탔고, 근 6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더위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 6월이었다.

“기자들이 자꾸 찾아와서 미치겠다. 오빠가 싫다고 돌려보내고 있기는 한데, 큰 아빠랑 큰엄마가 인터뷰를 해주려고 해서 짜증나”
민희는 머리 끈을 입에 물고서 웅얼거리며 말했다. 머리를 틀어 올려서 단단하게 묶은 뒤에 까만 저고리의 상복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국밥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는 민희는, 지나치게 씩씩했다.
“뭐 좀 먹었어?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하다. 엄마가 제 정신이 아니라 오빠랑 내가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됐어. 내가 뭐 할 일은 좀 없어?”
나는 생목이 올라 땅콩만 겨우 몇 개 집어먹다 말았는데, 민희는 자꾸만 내 쪽으로 반찬을 밀어주며 말했다.
“됐어.. 내려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야. 학교는 괜찮아? 평일인데 수업 있는 거 아냐? 일단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 하긴 했는데 이렇게 바로 내려올 줄은 몰랐다.” 
“수업이야 뭐.. 지금 수업이 중요한가.
“중요하지 그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민희는 아버지를 두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대하는 민희의 태도가 서늘한 것을 두고 새삼스럽다고 할 것은 아니었다. 서울의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지방의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뒤 십 수 년 째 시간강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자식들에게 그다지 능력 있는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본인의 공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고학력 노동자들이 그렇듯 매우 높은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민희의 어머니가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야지 만이 근근이 자식들의 학원비를 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의 아버지의 권위란 가장 높고 어려운 것이었다. 세 살 위의 민희 오빠가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해군사관학교로 진학해 집을 떠나자 아버지의 권위적 행동은 오롯이 민희를 향했다. 너희 오빠는 그랬는데……라는 말을 늘 족쇄처럼 달고 다니던 민희는 결국 오빠와 같은 해군사관학교를 지원했지만 입시에 실패했다. 재수를 하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아버지의 무시가 더욱 공공연해져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 민희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었고, 빨리 대학에 가서 아빠와 떨어져 살고 싶다는 것이 근래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때에, 민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안방에서 목을 맨 채로, 학원에서 돌아온 민희가 발견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이기적인 사람이야. 엄마가 식당에서 일한 게 벌써 십 년도 넘었어. 엄마가 불쌍하지 아빠 불쌍한 건, 글쎄. 결혼할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교수 사모님 들을 생각으로 죽어라 뒷바라지만 했는데, 결국엔 이렇게 끝난 거야. 병신같애.”
어째 점점 견디기 힘든 것들이 늘어만 가냐, 라고 말하면서 밥을 꾹 눌러 담은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는 민희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견디기 힘든 것들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 아이였다. 나는 민희의 말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반찬들만 깨작이고 있었다. 장례식장이 작은 평수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한산했다. 민희의 오빠는 빳빳했던 하얀 군복을 입었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후줄근한 검은 상복을 입고 여전히 장례식장 앞에 진을 친 기자들에게 그만 돌아가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