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해 7월 개봉한 스릴러 영화 <더 레이븐>은 애드거 앨런 포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소설에 관련된 연쇄 살인 사건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비록 흥행 면에서나 평단의 평에서나 큰 재미를 보지 못한 평이한 영화였지만, 애드거 앨런 포의 죽음 이후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가 끼치는 영향력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최초의 추리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 그의 소설이 살인을 부른다!’라는 영화의 홍보문구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나라에서 포는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유명하지만, 또한 그는 인간 심리 근원에 내재한 공포를 다룬 고딕 소설의 대표적 작가이기도 하다. 포는 그의 단편소설에 관하여 그의 작품집 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만약 나의 여러 작품에서 공포가 그 주제를 이루고 있다면, 그 공포는 비단 독일의 것이 아니라 영혼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 공포는 합리적인 원천에서 유추된 것이며, 오로지 합리적인 결과에 맞도록 묘사했음을 주장한다.
포는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가 통속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에 작품 속에서는 이를 특수화시켜서 전문적으로 다뤘다. 포는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를 다룸에 고딕적 수사법을 취했는데, 그가 반복해가면서 썼던 주제들은 죽음과 그에 관한 신체증후군, 부패, 생매장, 망자의 귀환, 비애에 관한 것들이었다. 크리스 볼딕의 옥스퍼드 고딕 설화 사전의 서문에 따르면 문학적 고딕은 ‘공간적으로는 갇혀있다는 폐소공포의 느낌, 시간상으로는 대물림이라는 끔찍한 감정’을 포함해야 하며, ‘이 두 차원은 서로 강화하며 몰락을 향해 치닫는 진저리치는 추락’을 형상화한다. 포의 주 소재들과 이것이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초의 고딕로맨스 소설인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토의 성의 주 무대가 되는 고성과 같이, 포의 대표작 어셔 가의 몰락 또한 고딕풍의 묘사를 통해 황폐하고 기이한, 폐소공포의 느낌을 환기하는 저택을 주 무대로 한다.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주인공 어셔와 그의 여동생 매들린과 함께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작품의 배경인 어셔 가의 저택은 앞서 언급한 18세기 이후 고딕문학의 정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오트란토의 성의 붕괴하는, 고딕적 장치로서 저주받은 성이라는 테마의 연장선에 있다. 포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테마는 적사병 가면과 같은 작품에서 적사병의 공포와 죽음으로부터 격리된 공간이자 반대로 죽음의 손아귀에서 결코 도망칠 수도 없는 폐쇄된 공간인 프로스페로 왕자의 성으로 이어진다.
캐서린 스푸너는 다크 컬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딕소설에서 과거는 몸서리쳐지는 위력을 안고 귀환한다. 죽은 자가 무덤에서 일어나 산 자의 어깨에 찬 손을 얹는다. 이 소름끼치는 시나리오는 다시 신체적 감금과 이어진다. 죽은 줄 알았던 매들린이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로더릭과 함께, 종국엔 무너지는 저택도 함께 파멸을 맞이한다. 포는 망자의 귀환이라는 모티프 또한 주된 테마로서 사용하였다. 포의 또 다른 대표작 검은 고양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긴장감으로 서서히 옥죄어 오는 죽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나 고발하는 심장에서 주인공을 파멸에 이르기까지 괴롭히는 노인의 심장소리에서도 이런 모티프는 변용된다. 이는 본작의 또 다른 키워드인 ‘생매장’의 모티프와도 이어진다. 무덤은 죽은 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주는 공간이지만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무덤은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공포를 유발하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이는 기이한 느낌(Uncanny)을 들게 함과 동시에 전술한 폐쇄된 공간의 공포의 연장선에 있게 된다.
포는 ‘플롯 속에 도입된 사물은 실생활에 속하고 있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진실이 효과의 기반이 되어야한다고 하며, 진실이 소설의 주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고딕 문학은 과거와 현재, 비이성과 이성의 관계에서 거리두기기법을 통하여 우리가 이런 공포를 과거로 축출하고 계몽된 우리의 현재를 자각하며 안심할 수 있음을, 그래서 과거의 짜릿한 횡포를 즐기고픈 욕망에 마음 놓고 탐닉해도 무방함을 속삭인다. 포는 그의 초현실적 소설에 대해 그 주제의 근본에 있는 진실 추구의 의식이 합리적인 것을 통하여 비합리적인 것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허위를 표면상의 주제로 삼게 됐으며, 인간 행동심리의 근원을 주제로 삼았다고 볼 수도 있다.김상윤(법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