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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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은 마지막 장면에서 제주 4·3사건에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지방지를 태운다. 제사 의식의 마지막 단계인 ‘소지’(燒紙)는 종이를 태우며 영혼을 하늘로 올려 주는 의식이다. 이 영화는 제주 4·3사건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제사의식이다. 영화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제사도 끝나지만, 관객들의 마음속 제주의 그날은 끝나지 않는다. |
이런 비극적 사건의 배경인 이념적 갈등과 배후에 있는 미 군정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군인과 제주도민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죽은 어머니의 품에 있던 감자를 이웃에게 나눠주고 몰래 눈물을 훔치는 순동과 감금된 순덕에게 감자를 전해주려던 박 일병. 순덕을 짝사랑하는 만철과 돼지가 가족인 원식이 삼촌까지. 그들은 이름 없이 죽어나간 희생자가 아닌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이름이 있는 역사의 인물이다.
흑백 화면이 자아내는 엄숙하고 묵직한 분위기는 인물들의 사연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데에 일조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제주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참혹한 그날의 상황을 더 부각시킨다. 순덕과 박 일병이 대립하는 장면의 배경인 하얗게 눈이 쌓인 넓은 벌판은 과연 장관이지만, 그 넓은 공간이 가져오는 둘 사이의 공백은 어쩔 수 없는 차가운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군인과 제주도민 사이의 거리감을 선악의 구도로 나눌 수는 없다. “폭도는 무슨 폭도야. X 같은 명령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지.” 박 일병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갈등한다. 사람을 찔러 죽인 칼로 과일을 깎아 먹을 정도로 살인에 무감각해진 군인도 “우리 어머니도 빨갱이한테 죽었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들도 결국 그 시절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희생자였다.
2003년에 제주 4·3 진상보고서가 나왔음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제주 4·3사건을 ‘인민군이 선동한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서중석 교수는 “북에서 사주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제주 4·3사건에 대해 바로 알기 위해 우리 모두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4월 3일이 다가오는 지금, 영화 <지슬>은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기억하지 않는 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 처참한 비극이 단순히 과거의 일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
◆지슬=‘감자’의 제주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