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 리뷰

기자명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은 마지막 장면에서 제주 4·3사건에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지방지를 태운다. 제사 의식의 마지막 단계인 ‘소지’(燒紙)는 종이를 태우며 영혼을 하늘로 올려 주는 의식이다. 이 영화는 제주 4·3사건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제사의식이다. 영화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제사도 끝나지만, 관객들의 마음속 제주의 그날은 끝나지 않는다.

▲ ⓒ자파리필름
영화 <지슬>은 1947년부터 1948년 사이에 있었던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제주도민 사이에는 미 군정에 대한 불만과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 가운데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이 시위 군중 6명을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극우세력에 대한 제주도민의 울분이 폭발해 1948년 4월 3일 봉기사태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문제를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산간 마을에 대대적 진압작전을 시행했다. 진상보고서를 보면 당시 이 진압작전에서 약 2만 5천 명에서 3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4·3 중앙위원인 서중석(사학)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시대까지 통틀어 우리 역사상 이렇게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은 전무후무하다”고 말했다.
▲ 감자의 제주도 방언인 '지슬'은 영화 속 인물들의 희망과 생명 그 자체다./ ⓒ자파리필름
이런 비극적 사건의 배경인 이념적 갈등과 배후에 있는 미 군정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군인과 제주도민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죽은 어머니의 품에 있던 감자를 이웃에게 나눠주고 몰래 눈물을 훔치는 순동과 감금된 순덕에게 감자를 전해주려던 박 일병. 순덕을 짝사랑하는 만철과 돼지가 가족인 원식이 삼촌까지. 그들은 이름 없이 죽어나간 희생자가 아닌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이름이 있는 역사의 인물이다.
흑백 화면이 자아내는 엄숙하고 묵직한 분위기는 인물들의 사연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데에 일조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제주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참혹한 그날의 상황을 더 부각시킨다. 순덕과 박 일병이 대립하는 장면의 배경인 하얗게 눈이 쌓인 넓은 벌판은 과연 장관이지만, 그 넓은 공간이 가져오는 둘 사이의 공백은 어쩔 수 없는 차가운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 ⓒ자파리필름
그러나 군인과 제주도민 사이의 거리감을 선악의 구도로 나눌 수는 없다. “폭도는 무슨 폭도야. X 같은 명령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지.” 박 일병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갈등한다. 사람을 찔러 죽인 칼로 과일을 깎아 먹을 정도로 살인에 무감각해진 군인도 “우리 어머니도 빨갱이한테 죽었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들도 결국 그 시절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 희생자였다.
2003년에 제주 4·3 진상보고서가 나왔음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제주 4·3사건을 ‘인민군이 선동한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서중석 교수는 “북에서 사주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제주 4·3사건에 대해 바로 알기 위해 우리 모두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4월 3일이 다가오는 지금, 영화 <지슬>은 우리에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기억하지 않는 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 처참한 비극이 단순히 과거의 일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

 

◆지슬=‘감자’의 제주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