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개인적인 햇수로 스물네 번째 맞는 봄이 올해는 유난히도 더디게 옵니다. 3월 얼마간 따뜻한 날씨가 이어져서 무의식중에 몸과 마음을 봄 리듬에 맞춰가던 중,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매섭고 이번 주에는 심지어 눈까지 몰아쳤습니다. 겨울을 기약하며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두꺼운 코트를 다시 꺼낸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것 같군요. 학교 곳곳에서는 필자처럼 뒤통수를 맞은 몇몇 봄꽃들이 얄미운 날씨를 탓하며 추위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구에 문제가 없다면 이제 조금만 있으면 오긴 오겠죠, 따뜻한 봄이.이렇게 길게 늘어지는 겨울의 끝자락을 보니, 문득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분 좋은 추억도 많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도 떠오릅니다. 갇힌 공간 안에서 상위권 대학으로 향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경험 말이죠.
당시에는 공부하다 말고 자주 창밖을 바라보며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10대의 아름다운 시절을 왠지 흘려보내는 듯한 초조함과 아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의 노력은 10대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 행복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수능 때까지 조금만 버티면 따뜻한 봄날이 올 거라고 필자를 위안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합격의 기쁨과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얻게 되자, 추운 겨울 벌판에서 한 무더기의 개나리꽃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벌판은 곧 꽃이 만개한 화단이 될 것만 같았죠.
하지만 대학생활을 한두 달 해보니 현실은 생각과 조금 달랐습니다. 생활비를 위한 아르바이트, 학우들과의 학점 경쟁,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 취업을 걱정하는 선배들의 모습. 대학이란 곳도 아직 내 인생의 봄을 맞이하기에는 조금 이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벗어 던지려던 외투를 다시금 여미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군대도 갔다 오고 복학해 3학년이 된 지금 대학생활에 대한 필자의 느낌은 이번 주에 뜬금없이 4월의 눈보라를 맞을 때의 것과 비슷합니다. 분명 봄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싶은데 아직은 너무 추운 것 같습니다. 이 추위가 왠지 4학년이 되면 더욱 심해질까 봐 내심 걱정이 됩니다. 이런 기분을 주변에 말했더니, 부족한 것 없이 등 따시게 살다 보니 배부른 소리 한다고, 너보다 힘든 상황에서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고, 나약한 소리 말고 먹고 살고 싶으면 정신차리라고들 합니다. 이런 말들을 이젠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단지, 수험생 때부터 기다려온 ‘막연한 행복’이 계절이 바뀌고 봄이 오는 것처럼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쩌면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듭니다.
오늘부터 점점 날씨가 풀린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벚꽃과 낭만과 사랑의 계절이 다가올 것입니다. 늦어진 봄 때문에 무더위도 더욱 금방 찾아올 거 같아 불안하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한, 누구나 공평하게 일 년에 한 번 따뜻한 봄의 기운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혼자든 유난히도 짧을 것만 같은 이번 봄을 다들 행복하게 만끽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빈(국문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