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지은 편집장 (skkujen10@skkuw.com)

'해야 되는데 해야 했는데'

열 글자로 구성된 짧은 글이다. 보통은 글을 읽고 고개를 갸웃한다. 알쏭달쏭한 이 글, 나름 문학 작품이다. SNS 시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하상욱 씨의 시집 ‘서울 시’에 포함돼 있는 어엿한 시 한 편이다. 의문의 갸웃거림은 시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공감의 끄덕임으로 변하곤 한다. 열 글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법의 한 단어가 있다. 바로 시의 제목 ‘효도’다.

생각해보면 마법의 단어는 ‘효도’로 국한되지 않는다. ‘고백’, ‘공부’, ‘운동’ 등 어떤 단어를 대입해도 알쏭달쏭했던 열 단어는 의미심장한 시 한 편으로 변모한다. 우리는 일상의 여러 순간 ‘해야 되는데-해야 했는데’의 전철을 밟고 있다. 매순간 결정은 어렵다. 선택을 유보하고 주춤거리게 된다. 순간의 주춤거림은 머지않아 후회로 바뀐다. 제목만 달리하면 단순한 열 글자에서 여러 편의 시가 탄생하는 이유다.

인생의 일면을 담고 있는 열 글자를 보자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과거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씨가 출연했던 SBS 방송 ‘힐링캠프’ 속 한 장면이다. 당시 방송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둬서다. 경험의 부재에서 기인한 무지는 ‘만약 내가 그것을 했더라면’ 뒤의 문장을 끊임없이 생성한다. 앞서 제시된 시에서 화자가 한 후회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었다. 대체 가능한 무수히 많은 시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우리의 삶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차 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일상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다. 후회는 ‘만약 내가 그것을 했더라면’ 하는 환상을 키웠다. 시간을 돌려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탁월한 결정을 통해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치원 때로, 중학교 때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파’주의의 목적지는 나이를 먹을수록 늘어났다.

‘돌아가고파’주의의 허무맹랑함을 깨달은 건 재수 시절이었다. ‘해야 했는데’의 1순위를 달렸던 ‘공부’를 다시 할 기회였다. 그러나 환상과 실제의 괴리는 상당했다. 막상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이 일상 속에 범람했다. 순간순간의 ‘하지 않을 이유들’이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재수 시기에도 ‘해야 했는데’는 늘어만 갔다.

재수 시절 이후 필자는 삶에 임하는 자세를 바꿨다. 우선,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무의미한 복기를 자제했다. ‘만약 내가 그것을 했더라면’ 하는 환상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다. 그리고 매 순간의 ‘해야 했는데’를 줄여나가기로 다짐했다. ‘주저하지 말고 시작하자’를 좌우명으로 삼은 계기다. 삶의 자세를 바꾼 지금, 필자는 인생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후회의 빈자리는 도전과 성취의 기쁨으로 채워졌다.

어느덧 이번 학기의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 당신의 지난 2개월을 돌아볼 시기다. 그간 당신의 ‘시작’이 무수한 망설임에 의해 막히진 않았는가. 더 이상 당신의 삶을 ‘해야 했는데’로 채우지 말자. '해야 했는데'가 아닌 '하길 잘했다'로 가득 찬 삶을 위해, 지금 바로 시작할 때다.
 

▲ 정지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