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지은 편집장 (skkujen10@skkuw.com)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한 말이다. 성공한 주식중매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던 그는 어느 날 강한 예술적 끌림에 의해 안정적인 일상을 버리고 무작정 떠나간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물에 빠진 사람이 헤엄을 치는 것에 비유했다. 실력의 우위는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그의 생애를 바칠 당위는 충분했다.

소설의 제목 ‘달’과 ‘6펜스’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투영한다. 둘 다 은빛이며 형태가 둥글다. 그러나 각각이 투영하는 의미는 사뭇 대비된다. 달은 정신적·도전적 삶을 의미한다. 반면 6펜스는 물질적·안정적 삶을 가리킨다. 스트릭랜드는 6펜스적 삶에서 벗어나 달의 세계를 좇았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6펜스적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당장 대학가에서도 그렇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상경 계열 복수 전공은 필수 사항이 돼버린 지 오래다. 소신껏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를 향한 주변인의 반응은 ‘취업은 어떻게 하려고?’가 대다수였다. 취업 시기에도 ‘6펜스적 사고’가 팽배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보수가 좋은 일’이 우선순위에 놓이는 게 당연하다.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는 적성과 관계없이 지원서를 내민다. 수 십장의 지원서를 기계적으로 작성하는 ‘지원서 제조기’ 취업준비생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발에 치이는 6펜스만을 찾으려 하다 보면 하늘에 달이 떠 있는지도 모른다.” 서머싯 몸은 한 서신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하늘을 보는 것을 잊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지난 2년간 퍽이나 시류와 역행해 살아왔다. ‘6펜스’가 아닌 ‘달’을 좇은 것이다. 취업 준비의 전초선이라는 2학년 후반기에 신문사에 들어와, 원래대로였다면 졸업반이었을 지금까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졸업은 연기됐고, 취업 준비는 먼 소리다. ‘대책 없다’는 핀잔을 피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물에서 헤엄치듯,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이순간이 매양 행복하다. 스트릭랜드의 언급처럼,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으니 말이다.

‘달과 6펜스’ 속 스트릭랜드가 달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열정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 그는 충만했다. 필자도 지난 2년간의 생활이 ‘성공적이었다’고 단언은 못하겠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매순간이 충만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남은 신문사 임기 반년간도 6펜스는 잊고 달의 세계를 좇아보련다.

▲ 정지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