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사실 성대신문사에 들어오기 전 홈페이지의 수습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궁금했다. 성대신문의 수습기자들은 도대체 무얼 ‘수습’할까. 6주간 ‘수습기자’라는 아주 매력적인 수식어를 부여받고 트레이닝에 임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일정, 매번 주어지는 과제, 지하철 공기마저 탁했던 아침 트레이닝, 그리고 도착도 하기 전에 지쳐버린 자과캠 원정까지.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간 기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가치중립적인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에 비해 난 너무 감성적이었고, 그러한 글에서 퍽퍽함을 느꼈다. 하지만 까면 깔수록. 어울리지 않는 성대신문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나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마치 양파 같다고나 할까. 예쁘게 제작된 팜플렛을 보자 2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몸이 안 좋아 선택한 고등학교 휴학. 무기력했다. 마주하게 된 무한한 자유는 그동안 생각했던 이상적인 자유의 모습과 달랐다. 무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내가 빼곡히 짜인 스케줄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됐기에 새벽 늦도록 잠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고, 그것은 상상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새벽에 울려 퍼지는 타자소리가 좋았다. 아무 포장할 필요 없이 생 날것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자유’라는 단어에 현기증이 난다. 말로는 자유로움을 지향하면서 막상 구속되길 원하고 있다. 자유가 주는 나태함,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혼자 짊어져야하는 책임감을 알고 있었기에. 좌표 설정이 필요했다. 어딘가에 밀착하고 싶었다. ‘성대신문’은 자유와 구속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유의 상징인 대학 안에 거함. 그리고 미치도록 바쁜 일정이 선사하는 구속까지. 기성 언론이라면 불가능한, 대학 언론만이 가능한 자유 속에서 내 글은 목소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구속은 좌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나를 잡아줄 수 있을 것이 확실했다.
아침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건강한 아침이었다. 재취재 스트레이트 기사 작성, 문제기사 기획, 언론관 교육, 바람직한 기자상에 대한 고민. 서로의 문건을 소리내어 읽고 거침없는 토론까지. 자유와 구속의 줄다리기 속에서 전에 맛보지 못한 재미를 느꼈다. 짜릿했다. 성대신문은 바빠지고 싶었던 내 소망을 200퍼센트 넘게 충족시킬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리고 하나하나 결론지어지는 수많은 글들을 읽어나가며 어떠한 가능성을 보았다. 아직도 ‘수습’ 중인 내 글이 좋다.
‘문화부 기자 김태윤’이라 적혀있는 명함을 지갑에 꽂았다. 팩트를 전달하는 기사의 객관성과 문화부 기사로 녹여내는 감성 두 가지 사이에서 짜릿한 줄타기를 계속해야겠지만, 그 고민조차 설렌다. 선서식 3계명 중 하나인, 깊은 산속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은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들의 소리에 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자. 아직도 ‘수습’ 중인 내 글이 좋다. 그리고 계속 ‘수습’하기 위해 펜대를 굴리겠지?
그동안 회의감(懷생각할 회 意 뜻 의)이 많이 들었다. 내가 왜 성대신문에 들어왔나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