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스케치- 국립민속박물관‘쉼’특별전

기자명 김태윤 기자 (kimi3811@skkuw.com)

언제 마지막으로 온몸을 펴고, 호흡을 가다듬고 쉰 적이 있는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머릿속을 붙잡고 있는 상념들로 지친 우리를 위한 전시가 있다. 제대로 된 ‘쉼’을 느껴보기 위해 우리 학교 후문에서 종로 02번을 타고 북촌로를 따라 국립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총 3부로 이뤄진 전시는 ‘금강산 관람객이 유람하고 집에 돌아와 쉬었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는 과정’을 담았다. 금강산 여행이라는 스토리텔링 안에서 관람객들은 ‘전시를 본다’는 느낌을 넘어 ‘논다, 여행한다, 쉰다’는 느낌을 받는다. 1부에서 3부로 갈수록 쉼의 자세가 바뀌며 휴식이 깊어진다.

 

▲ 김은솔 기자 ensol_kim@
1부: ‘푸른 그늘 실바람에 새소리 들레어라’
전시실 입구를 따라 들어가는 관람객들은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닌 금강산 유람객이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담은 그림들의 레이블에는 그동안 봐왔던 제목, 재료, 작업 년도의 딱딱한 설명이 아닌 은유적이고 시적인 문구를 만날 수 있다.
정갈한 반찬과 한 덩이 잡곡밥 찬합에 담아 어스름한 새벽에 길을 나선다. 이 봉우리 저 계곡, 정신없이 노닐다가 어느 그늘진 평지에 주저앉아 주린 배를 채우고, 허리춤 표주박에 계곡물 담아 목을 축이니 정신이 번쩍 나고 두 눈이 맑다. 부른 배 두드리고 편히 누워 바라본 금강산에 시흥이 절로 인다.
이처럼 ‘쉼’ 특별전은 기존 전시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간극을 느꼈던 관객에게 주인공이 되는
▲ 김은솔 기자 ensol_kim@
기회를 선사한다. 그림 아래 꽂혀있던 스마트폰을 들고 꽃 그림을 비추자 꽃들이 만개하는 장면이 스마트폰 상에 펼쳐진다. 연꽃, 모란, 나리꽃이 봉우리에서 피어나는 모습을 *증강현실 기법을 통해 재현한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자 한 척의 배 구조물이 보인다. 두 손으로 노를 잡고 저어보니 영상 속 구름이 걷히며 금강산을 둘러볼 수 있다. 이렇게 ‘쉼’ 특별전은 민속자료의 원형에 현대의 신기술을 접목시킨 실험적 전시다.

2부: ‘홑적삼에 부채 들고 정자관 내려놓고 있자니’
1부에선 서서 쉬었다면 이제 좀 더 긴장을 풀고 앉아서 쉴 차례. 2부의 작품들은 실내 구조물이나 △경대

▲ 김은솔 기자 ensol_kim@
△농 △바둑판 △분합 △정자관 같은 소품들로 구성돼 있다. 집을 소재로 한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 대청마루를 발견하고 앉자 시냇물 소리, 개구리 소리, 매미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건너편에는 20세기 초 한국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장기 두기가 보인다. 양반 두 명이 마주 앉아 곰방대를 피우며 여유롭게 장기를 두고 있는데, 선명한 색채와 의복 묘사가 돋보인다. 관객이 주인공이 된 전시답게 등등거리, 등토시, 모시적삼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두 팔을 넣고 옷고름을 여미니 여가를 즐기는 한량이 아니고 무엇이랴. 2부 역시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적삼의 속이 비치는 시각적 요소와 완만한 선의 미감을 재해석한 금기숙의 '호박저고리'는 박물관 소장품인 저고리를 각색해 진노랑 빛 호박으로 저고리 모형을 꾸몄다. ‘쉼’이라는 추상적 단어는 전통과 현대의 결합 속에서 감각적으로 형상화된다.

▲ 김은솔 기자 ensol_kim@
3부: ‘한여름 밤 꿈, 속세를 벗어나니’
서서, 그리고 앉아서 쉬었다면 이제는 누워서 쉴 차례. 호흡도 자신을 방해하지 못할 만큼의 완벽한 쉼이다. 쌀을 넣어 만든 푹신한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한 채, 가로 12m 세로 3m의 스크린에 시원하게 펼쳐진 영상 '한여름 밤 꿈'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의자에 누워 편안하게 천장에 설치된 밤하늘 별빛을 감상하며 꿈속 세계로 들어간다.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의 공간을 넘어 관객의 안방이 돼 쉼을 선사한다.
‘쉼’ 특별전의 전시관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호흡이 진정되고 상념으로부터 벗어난다. 육체적 쉼을 넘어 정신적 쉼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 가까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대로 쉬어보는 것은 어떨까.

*증강현실 = 신세계에 3차원 가상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