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naver.com)

▲ 지난 9월 28일 알랭 바디우가 강남 플라툰 쿤스트할레에서 강연중이다. 이영준 기자 spiritful45@

<연재순서>
① 위기의 서울에서 만난 위험한 철학자
② 자본주의와 긍정의 변증법

1550호 16면에 게재한 연재 순서가 일부 변경됐습니다.

지난번 슬라보예 지젝이 이데올로기가 없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판한 것에 이어 이번 연재에선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소개한다. “당신은 지금 새로운 공간을 모색하고 있는가?” ‘코뮤니즘 컨퍼런스’부터 ‘시인들과의 대화’까지, 그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의 목소리를 남겼다.

새로운 정치의 공간이 필요하다
바디우는 지젝과 함께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모든 사람에게 권력이 동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건강, 교육 문제 등에 있어 소수에게 권력이 사유화된 이 형태는 민주주의라고 부르기 힘들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에 의해 사유화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주체가 돼야 한다. 이는 과거의 왜곡된 정치 모델에 투쟁하는 동시에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대항을 해야 만들어진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긍정으로부터 부정하라, ‘긍정의 변증법’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공간은 어떻게 창출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항상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나누고 그 중 전자만 채택하려 한다. 그리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믿고 수용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받는 것은 불가피하며 의회민주주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으며 경쟁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고 세뇌당한다. 바디우는 이에 ‘긍정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정-반-합’으로 알려진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정’에 대해 먼저 부정할 것을 주장한다. 그 결과 더 높은 차원의 합이 창출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바디우는 먼저 ‘긍정’하라고 말한다. 그는 “‘사건’에 긍정의 태도로 대응할 때 숨겨져 있던 새로운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 새로운 가능성의 형태를 지니고 출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주체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특수성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컨퍼런스에 참여한 우리학교 황호덕 교수는 “새로운 가능성의 창출은 스스로의 고민을 ‘공통적인 것’으로 매개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며, "대학생들이 철학적 사유를 공론화하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긍정하는 것은 현재 체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현대예술을 통해 정치의 모호함을 모색하다
바디우는 새로운 공간에서 사유하는 것을 ‘장소 밖 묘사’라고 설명한다. 묘사라는 개념은 현대 예술과 정치의 유사성에서 나온 개념이다. 철학은 눈에 보이는 ‘존재’와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실존’이 있다고 전제한다. 현대 예술은 일상적인 장소를 벗어나 사물의 ‘실존’을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존’을 밖으로 드러내 ‘존재’와 같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그 예로 바디우는 시를 들었다. 시작(詩作)을 위해서는 일상 언어 속에서 나타나지 않는 어떤 개념을 시어로 재현해야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시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내면의 솔직함을 담은 모호한 언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예술의 모호성을 통해 ‘실존’이 도출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정치도 예술과 마찬가지다. 그는 “정당은 국가의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일부 공적인 장소를 점령한다. 우리는 사회·국가적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학생은 학생이면서 학생이 아닌, 시민이면서 시민이 아닌 모호성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면의 ‘실존’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당신이 있는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이에 바디우는 “그것은 나조차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자신의 장소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고 조언했다. 바디우가 한국에 온 것도, 당신이 그의 철학을 만난 것도,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 아닐까.
 

WHO IS HE?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로 현존하는 철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다고 평가받는다. 70년대 마오주의 운동에 투신했으나 운동의 쇄락이후 정치적 대안 가능성을 모색하며 ‘진리철학’을 확립했다. 지젝과 함께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위해 런던, 뉴욕, 베를린에 이어 서울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