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돌아와 점수 발표가 나기를 기다리는 장소를 ‘키스 앤 크라이 존(Kiss and cry zone)’이라 한다. 환희와 슬픔이 공존하는 오묘한 공간이다. 어떤 선수는 뜨거운 축하의 포옹은 나누지만 누구는 안타까운 위로와 슬픔을 나눈다. 많은 선수들이 이 오묘한 공간인 키스앤 크라이 존을 지나갔고 밤을 새워 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김연아 선수도 이곳을 거쳐 갔다. 안타까운 은메달이었지만 김연아는 이 오묘한 공간에서 의연한 행복과 즐거움을 보여줬다.
우리 생활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니 바로 현관(玄關)이다. 현관(玄關)은 들고 남이 공존하는 공간이요 매일 매일의 감사와 고단함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불교에서의 현관은 깊고 묘한 이치에 드는 관문(關門)으로 보통 참선으로 드는 어귀를 말한다. 현관에는 문이 있다. 문(門)은 무엇이 나오는 출구의 기능도 있지만 무엇이 들어가는 입구의 기능도 있다. 문은 들어가고 나감이 교차하는 묘한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현관(玄關)이라 할 때 “현(玄)”을 쓴 모양이다. 현(玄)은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여 공존하거나 일체가 되는 경우를 뜻하니 출입문이 있는 현관이야말로 오묘한 공간인 것이다.
2014학번 신입생 4256명이 “성균관대학”이라는 새로운 문을 들어섰다. 그들은 매일 매일 이 교문을 들고 날 것이며 4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이 문을 통해 성균관대학을 떠날 것이다. 매일 들고나는 교문이 키스존이 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학문이다. 학문은 책을 통해 하는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동아리 활동이나 교내외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기 자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정 모두가 배움인 것이다. 그 배움은 자신을 이기는 공부가 돼야 한다. 남을 이기기 위해 하는 공부는 보이기 위함이요 자랑하기 위함이니 자신을 이기는 공부야말로 진정한 내면의 깊이와 향기를 갖추는 과정인 것이다. 자신을 이겨 자신만의 향기를 가지되 남과 잘 어울려야 한다. 같지는 않되 어울릴 줄 아는 것이 화(和)이다. 공자 역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자신을 이기는 것이 수기(修己)요 남과 어울리는 것이 치인(治人)의 덕목이다.
위학문여역수주(爲學文如逆水舟)라. 학문이란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는 배와 같아서 잠시라도 노를 젓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고 했다. “성균관대학”이라는 노를 가졌으니 이제 쉼 없이 성찰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일이다.
새로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는 대학 4년이라는 같은 시간이 배정됐고 그 시간에 어떤 무늬를 새길지는 각자의 몫으로 주어졌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은 생활에 간섭하는 담임선생님도 없고 한 달 내내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없다. 도처에는 술집을 비롯해 놀고 즐길 거리가 천지다. 다만 어떤 일이든 자신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책임과 결과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조절하는 “자율(自律)”이라 하고 그 자율을 바탕으로 대학을 어떻게 다닐 것인가 하는 선택과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