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백지형 기자 (omi0511@skkuw.com)

내가 처음 신문사에 들오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를 말렸다. “거기 엄청 힘들대.” 사실 나에게 그런 말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영부영 보낸 나의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만회하려면 힘들어도 보람찬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처럼 또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나 하는 세월을 보내기엔 나의 대학생활이 너무 허무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신문사에 지원했고, 60-2기 수습기자가 됐다. 하지만 트레이닝을 해 나가면서 점점 힘들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의 개인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그 시간을 신문사에 할애해야 한다는 점보다도, 그 트레이닝을 위해서 내가 써가야 하는 ‘문건’때문이었다. 매번 많은 양의 글을 읽고 그에 대한 문건을 정리해가야 했다. 그런데 그 문건을 쓸 때마다 내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고, 나는 그런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런 걸 배워야 하지’라는 피상적인 투정 속에 감춰진 나의 속내는 ‘이런 것도 모른 채 19년을 살아온 것인가’하는 부끄러움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그런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던 듯하다. 정신적인 것만큼이나 몸도 많이 힘들었다. 1학기 째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방중 활동을 할 때는 실제로 신문 제작에도 참여했기에 막차를 놓치고 외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탁한 공기로 가득 찬, 때로는 일 처리 때문에 정신도 예민해진 상태의 신문사 안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생활을 몇 학기 째 계속 해오는 여러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내가 이걸 잘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가끔 흔들렸다. 그렇게 어느덧 3월, 개강이 찾아왔다. 그리고 진짜 ‘기사를 쓰는’ 첫 학기를 맞았다. 반년의 적응기간을 거쳤음에도 아직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 하지만 내가 쓴 기사가 지면에 실렸을 때의 그 뿌듯함을 계속 만끽하고 싶기에, 또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생활이기에, 깨어있는 대학생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