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 인터뷰

기자명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지난해 말 우리는 한 영화에 열광했다. 바로 배우 송강호가 주연으로 열연한 ‘변호인’이다. 영화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변호사 송우석은 정의를 수호하고 사회 낮은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위해 변호에 임한다. 진정으로 법의 정의와 인권을 외치던 법조인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인물인 것 같지만, 현실에도 이런 변호사가 존재한다. 그것도 여러 명씩이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하 공감)’에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변호사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염형국 변호사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변호사법 제1조 1항에 충실하게 살아온 그를 만나봤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가 소수자 인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영준 han0young@

염형국 변호사

염형국 변호사는 지난 2004년부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소송과 법 개정 운동 등을 펼쳐왔다. 그 결과 여러 인권단체와 함께 △난민법 △입양특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정신장애인전문위원회 전문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장 △장애인차별금지 추진연대 법제위원 등을 맡아 다양한 방면에서 소수자 인권 향상에 힘써왔다. 그는 이러한 사회공헌을 바탕으로 지난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와 변호사협회 인권재단이 공동 제정한 ‘제1회 변호사공익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종윤 기자(이하 이) : ‘공익변호사’가 되기로 한 계기가 궁금하다.
염형국 변호사(이하 염) : 처음부터 변호사로서 어떤 식으로 활동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다만,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막연하게 사회적 약자를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사법연수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수원으로 특강을 왔다. ‘공익변호사의 길을 걸어보라’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그 길로 공익변호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박 시장에게 메일을 보내고 찾아갔다. 박 시장은 아름다운재단 산하에 공익변호사 팀을 꾸려줬고, 뜻있는 다른 변호사들이 참여해 2004년 1월 ‘공감’이 탄생했다.

이 : 공익변호사는 무엇인가?
염 : 언론을 비롯한 사회에서 공익활동을 전업으로 삼는 변호사를 공익변호사라 부르는 것 같다. 사실 공감이 생기기 이전에도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는 제법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공익변호가 업무 전부고 다른 변호사들에게는 부업의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내부적으로도 단체의 운영을 위한 활발한 모금과 홍보가 필요하기에 의식적으로 공익변호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 10년간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수임료를 한 푼도 안 받은 것으로 안다. 운영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나?
염 : 나를 비롯해 공감의 변호사들은 단 한 번도 수임 사건을 맡은 적이 없다. 공감은 개인 정기 기부자와 기업과 로펌의 기부로 운영된다. 그렇기에 절대 대형 로펌이나 수임 사건을 맡는 다른 변호사들만큼 수입이 많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사회적으로 이미지가 좋고 인지도가 있는 아름다운재단이라는 단체 밑에서 출발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변호사 단체라는 프리미엄도 작용해 비교적 기부가 잘 이뤄진다는 것이다. 늘 재정 문제로 고민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운영이 잘 되고 있다. 다른 시민단체에 비해 보수도 나은 편이다.

이 :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도 수임 사건을 맡을 계획이 없나?
염 : 전혀 없다. 아름다운재단에서 독립하면서 ‘공익변호사그룹’에서 ‘공익인권법재단’으로 공감의 위상을 변경했다. 재단법인은 원칙적으로 변호사 활동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없다. 그게 또 공감이 지향하는 하나의 가치이기도 하고. 재정이 어려우면 모금을 좀 더 하면 되지 않을까.(웃음)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1인 시위를 벌이는 염형국 변호사. ⓒ염형국 변호사 제공
이 : 공감과 함께 이뤄낸 성과가 있다면?
염 : 한참 영화 ‘도가니’가 흥행할 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성공했다. 개정된 법안은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외부이사 선임을 의무화하고,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자들의 인권 보장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양한 장애인 복지 운동도 펼쳤다. 신도림역 환승 구간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양천구청역에 있던 남녀공용 장애인 화장실을 분리했다. 또한, 이전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에 소송을 제기했고, 작년에 홈페이지 개편을 결정해 현재 개선 중이다.

이 : 반대로 안타까웠던 소송은 무엇이었나?
염 : 이명박 전 서울시장 때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됐다. 당시 복원된 청계천에 지체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내려가려면 반드시 계단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를 상대로 차별적인 공간 때문에 장애인들이 정신적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비슷한 외국 사례도 찾아보는 등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나 결국 법원에서 기각했다. 사고를 당했다거나 가시적인 피해가 있는 게 아닌 상황에서 단순히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은 심각한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비장애인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 소송을 거치면서 청계천 일부 구간에 경사로와 승강기가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 염형국 변호사가 지난달 25일 ‘염전노예’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
이 :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주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염 : 최근에 염전노예 사건이 발생했다. 오갈 데 없는 지적장애인들을 염전에 데려다가 노예처럼 부린 사건이다. 가해자들이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지적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를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심지어 먹고 재워주면서 보호해주는데 임금까지 똑같이 줘야 되냐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주노동자나 난민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서 우리나라에 온 것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그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필요 때문에 받아놓고, 소수자들을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 지난 10년간의 ‘공감’ 활동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낸 책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염형국 변호사 제공
이 : 앞으로 공감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지?
염 : 올해부터 공익변호사 양성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공익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문제도 있고 공감이 무한정 변호사 수를 늘리기는 힘들다. 마침 ‘어필’이나 ‘희망을 만드는 법’과 같은 단체를 비롯해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최소한의 재정이 확보돼야 한다. 그래서 공감의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다른 공익변호사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형 로펌이나 변호사 단체에서 공익변호사들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업을 시작한 곳이 없는데, 공감이 그 첫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이 : 다른 고액연봉의 변호사들이 부러운 적은 없었나?
염 :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그러나 사람의 기본적인 삶의 목표가 행복해지는 것이라 하면, 내 인생에서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소는 아니다. 우리 사회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현재 세계 10위권에 드는 부국이 됐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불이 넘는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세 모녀 사건’만 봐도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또한, 생계 문제로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등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 성장이 계속되고 국민소득이 지금의 두 배가 된다 해도 국민이 행복할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렇기에 돈 이외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 가치가 공동의 행복이다. 소수 약자가 배제되지 않는 삶, 더불어 사는 인생을 살고 싶다.

이 : 우리 학교에도 로스쿨이 있다. 예비법조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염 :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예비법조인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위나 명예, 그리고 부가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런 사례들이 수두룩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나아가 그 행복이 자기 자신만 누리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여러 사회구성원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이면 더 좋겠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다른 곳에도 잠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실패나 좌절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벗어나려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전부 인생의 자양분 아니겠는가.

◆변호사법 제1조 1항=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