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결(영문13)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저번 달 군대에 간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편지를 꽤 썼었는데.’ 친구 생일 같은 날 편지지 하나 사서 간단하게라도 내용을 적은 뒤에 과자랑 같이 전해줬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붙어 있어서 편지에 쓸 말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편지는커녕 수업 시간 외에 펜을 잡아 본 일이 거의 없다. 과제를 할 때에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사람들과는 핸드폰을 통해서 연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지를 쓰던 때의 감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디지털화된 삶 속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편지 한 통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편지는 쓰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는 것 같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글로써 대신할 수 있고 받는 사람은 편지를 통해 정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편지를 통해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고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는데 무언가가 결여돼 있는 것 같다. 왜 그런 것일까? 진심이 다 전달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을 돕고자 만들어진 것인데 오히려 방해하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나는 편지를 많이 받진 않았지만 아직도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 가끔씩 꺼내서 읽어 보는데 편지를 받은 때로부터 한참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편지 쓴 사람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편지들을 버릴 수가 없다. 편지를 보면 옛날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안 좋았던 기분도 좋아진다. 나는 편지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까지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진실한 소통을 하기 위해 무조건 편지를 쓰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편지가 빛나는 것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편지를 쓰는 데 정성과 진심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한다면 우리가 기계화되고 딱딱한 세상에 살고 있을지라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한결(영문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