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중문 12)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자 악의 화신인 하이드를 죽이기 위해 지킬박사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현대인의 이중성을 드러낸 그의 초자아와 무의식은 결국 화합하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한다. 과연 지킬박사는 죽어야만 했던 것인가?
수많은 작품에서 ‘정신질환’은 때로는 작품의 개연성을 위해서 극적인 연출이나 유희적 요소로 등장해왔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우리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고를 포기해버리거나 외면해버렸다.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인물의 사연과 삶을 조명하기보다는 단순한 장애나 시련으로 서술하고, 자살·사고 혹은 대상을 결말에서 배제하며 ‘정신질환’이라는 문제를 표면화함으로써 느껴지는 일종의 ‘불편함’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 사회가 발전하고 다양화됨에 따라 새로운 사회문제들이 발생했고 이에 기존에는 없었던 정신의학적 문제들(가벼운 불안증, 신경증에서부터 비교적 최근 등장한 공황장애(ADHD))이 나타나게 되었다. 요새 현대인들이 자주 접하는 이러한 정신질환들은 이전과 달리 일상에 밀접한 것들이며 비교적 사소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비록 정신질환에 여전히 불편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트라우마와 인격 사이의 상관성을 주장하고 트라우마의 극복을 통해 개인의 문제나 정신질환 등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에 있어 환자의 사연과 감정에 집중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대중매체에서 다뤄지는 정신질환의 양상과 등장인물들의 태도 또한 뚜렷하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분열증, 환시, 투렛 증후군 등의 정신질환을 단순히 개연성을 위한 소재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인물의 상처 등을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며, 인물의 극복 의지와 과정을 구체적이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또한 미국 드라마『블랙박스』에서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과의사가 신경의학센터에서 다른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병과 환자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내용을 다루었다. 이 두 드라마에서 정신의학은 환자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게 하며 더 이상 사유를 외면하지 않는다. 또한 정신질환자는 단순히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만 받아들였던, 다시 말해 환자와 정신질환에 대한 사유를 회피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매우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치료의 가능성과 사람들의 인식재고를 호소한다.
물론 ‘정신질환’이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 항상 환자의 사연을 서술하거나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를 촉구할 필요는 없으며 현재의 작품들이 모두 그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대중문화 속 달라진 정신질환의 모습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조금 아플 뿐인 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