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경제학계의 촉매제 돼야"
"피케티, 경제학계의 촉매제 돼야"
  • 윤나영 기자
  • 승인 2014.09.29 06:46
  • 호수 15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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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 인터뷰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 /정현웅 기자 dnddl2004@
지난 18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한국을 방문했다. 피케티는 지난 해 8월 책 ‘21세기 자본’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불평등’을 세계 경제학자들의 최고 화두로 만들었다. 소득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는 피케티의 독창적인 연구방법과 해결책은 점점 더 논의를 확장시키며 그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최근 담뱃세와 주민세 인상으로 소득 분배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우리나라 역시 피케티 열풍이 강력히 일고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를 만나 ‘21세기 자본’을 분석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불평등 상황을 진단해봤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나.
‘21세기 자본’의 핵심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사회에서 돈으로 돈을 버는 비중이 사람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것을 자본수익률(r),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경제성장률(g)로 표현한다. 자본수익률(r)은 높고 경제성장률(g)은 낮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노력 없이 돈을 버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이렇게 부가 편중되면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민주주의, 능력주의, 기회의 평등이 무너져 문제가 된다. 그래서 충분한 세금을 통해 돈이 돈을 버는 것을 억제하고 사람이 돈을 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피케티는 300년간 세계의 자본 축적과 소득분배의 역사를 실증적 데이터에 기초해 서술하고 있다. 이런 연구 방법론은 기존의 연구 동향과는 다른 것 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는 경제학은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전 세계적으로 학생들이 주도해 경제학 커리큘럼을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경제학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을 제기했던 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통찰’이었다. 역사를 봐야 수리모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변화에 대한 통찰할 수 있다. ‘21세기 자본’은 그런 흐름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피케티는 이 책을 통해서 큰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현실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피케티가 분석 과정에서 활용한 수식은 극히 적다. 그 수식들은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피케티는 크게 두 가지 수식을 활용해 경제를 분석한다. 하나는 자본/소득비율(β)로, 축적된 자본이 소득 가치의 몇 배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자본은 저축(s)으로, 소득은 경제성장률(g)로 표현한다. 자본은 쌓여있는 부의 가치, 소득은 생산량의 변화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본/소득비율(β)=s/g라는 식이 도출된다. 현대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β값이 점점 커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g)보다 자본(s)이 더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과연 사람들이 자본 자체를 골고루 갖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거기서 나온 수식이 r>g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크다는 관계식이다. r과 g의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피케티는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피케티의 논지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수식 자체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β=s/g 식에서 자본(s)이 증가함에 따라 β값이 커진다는 논리에 대한 비판이 많다. 기본적으로 경제학에선 어떤 단위가 증가하면 희소성이 감소해 가치가 하락한다. 노동자가 많고 일자리가 적으면 임금이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s)이 많으면 그 가치가 떨어져 자본 수익률(r)이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본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게 되므로 오히려 임금이 증가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β값이 계속 증가할 때 전체 소득 대비 자본의 양은 커지지만 자본의 수익률(r)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 상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한 피케티의 반박은 무엇인가.
피케티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우선 실제 통계자료를 분석해보면 그렇다는 입장이다. 세계 1차, 2차 대전과 그 사이 대공황을 겪을 때 자본의 가치가 떨어져 β값이 하락했으나 그 이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생산의 자동화로 노동의 대체 탄력성이 높아져 반대 논리와 달리 임금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가장 핵심 논리인 r>g에 대한 의문 제기도 있나.
r>g이기 때문에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논리는 사실 굉장히 정교한 수학 모형으로 검증해야 하는 부분이다. 간단하게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부의 세습과 형성은 개개인이 얼마나 저축을 잘하는가, 얼마나 유산을 많이 남기느냐 등에 따라 복잡하게 결정되기 때문에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 피케티는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경험적인 사실에 근거해 논리를 펼치는데, 이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r>g가 어떻게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는지의 데이터는 너무 구하기 어려워서 이 일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터 상에 미흡한 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r>g 상태라고 명확히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 수식이 자본 분배의 원인을 완벽히 설명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검증은 쉽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들로 미뤄봤을 때 그렇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 경제성장률이 불가피하게 감소할 예정이다. 또한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0.31로 OECD의 중간 정도였으나 피케티의 방법론으로 분석한 결과 OECD에서 소득분배가 가장 불평등한 편에 속했다. 자연스럽게 r>g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조세자료를 활용한 피케티의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을 분석했을 때 역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미국을 빠른 속도로 쫓고 있었다.

피케티는 부의 세습으로 인한 극도의 불평등 상태인 ‘세습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자본과세를 제시한다. 국제적 협의를 통한 자본 과세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누진세 적용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피케티 역시 이것은 유토피아적인 해결책이라 언급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한 것인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지금 당장 실현하기엔 정치적 여건이 맞지 않다는 의견, 다른 하나는 자신의 부를 잃지 않기 위해 내세우는 반대를 위한 반대다. 개인적으로는 국제적 자본 과세가 굉장히 필요하다고 본다. 국제 금융자본은 지하경제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자본은 한 나라의 경제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자본 과세를 통해 투명성이 강화되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정말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면 무의미한 일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지 따져보고, 맞다고 생각되면 그 생각을 확산시키고 공유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피케티는 유럽 연합에서 어떻게 이런 자본세를 도입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연구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케티에 대해 주로 어떤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나.
참 아쉬운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피케티의 주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이데올로기적 논쟁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부의 분석 과정에서 피케티가 훌륭한 연구 성과를 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논리적 추론이 충분히 뒷받침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대부분 피케티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상태에서 그가 언급한 자본 과제, 소득에 부과하는 급진적인 누진세 등에 대한 색깔론이 주를 이룬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 과연 피케티의 정책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더 효과적인 대책이 있을 것인지. 그런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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