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협동조합 ‘동네빵네’ 이야기

기자명 손민호 기자 (juvenile0223@skkuw.com)

프랜차이즈 업체가 골목 깊숙이까지 확장하며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에 부딪쳤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둔 프랜차이즈 업체와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없는 까닭이다. 결국 경쟁에서 밀린 소상공인들은 실업자가 되기 일쑤다. 이에 일부 소상공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프랜차이즈 업체에 대항하는 중이다. 그중 누구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과를 거두는 곳은 ‘동네빵네 협동조합(이하 동네빵네)’이다. 지난해 8월 설립된 동네빵네는 서울시 서대문구, 은평구 지역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결성한 제과업계 최초의 소상공인 협동조합이다. 1년 동안 프랜차이즈 업체와 맞서 골목 빵집의 자리를 지켜온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 동네빵네 협동조합 공장 내부. /김은솔 기자 eunsol_kim@
이대로 무너져선 안 돼
은평구 신사동에 위치한 ‘깜빠뉴 베이커리’를 운영 중인 신흥중 동네빵네 이사장은 제과업에 몸담은 지 46년 된 베테랑 제빵사다. 처음에는 월급쟁이로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했지만, 점차 기술을 익히며 1980년대 중반에는 직접 가게 문을 열었다. “아주 큰 수입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을 충분히 먹여 살릴 만큼 돈을 벌었어요.” 1990년대 중반에도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골목 깊숙이까지 들어오진 않아 그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제법 많았다.
그러나 IMF 이후 프랜차이즈 업체가 본격적으로 골목 상권에 침투해오기 시작했다. 신 이사장에게도 한 업체가 가맹점으로 바꾸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는 10년 동안 가꿔온 조그만 제과점을 선뜻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업체에서는 가게 바로 옆에 가맹점을 차리겠다며 그를 협박했고, 그렇게 가게 근처에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들어섰다. 깜빠뉴 베이커리의 매출은 떨어졌고, 직원을 정리해고 해 홀로 제과점을 운영하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서대문구와 은평구 지역의 다른 동네 빵집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어 오랜 세월 몸담았던 지역을 떠나 공사판을 전전하는 제빵사들도 늘어났다. 신 이사장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소상공인 협동조합을 결성하자는 제안을 했고, 다른 영세 제과점 제빵사 10명도 이에 동참했다. 여러 영세 소상공인들이 뭉치면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에 대항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했던 이들은 쉽게 협동조합을 결성하지 못했지만 마침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운영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지난해 8월 동네빵네가 탄생했다.
 
▲ 동네빵네 깜빠뉴 베이커리에 진열된 빵들. /김은솔 기자 eunsol_kim@

프랜차이즈 업체와 맞설 방법 고민하기
동네빵네를 결성한 이후 조합원들은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동안 공장을 마련할 여유가 없던 동네 제과점 제빵사들은 자신의 가게에서 열악한 장비로 빵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만들기 어렵고, 신제품을 개발할 여력도 없었다. 그들은 공동으로 운영비를 출자해 공장을 건설하고 다양한 기계를 사들이면, 프랜차이즈와도 경쟁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소상공인진흥원의 지원을 받으며 조합원들은 1000만 원가량의 출자금을 냈다. 이로써 지난 1월 공장이 설립됐다.
그 후 동네빵네에서는 프랜차이즈에 맞설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했다. 당시에 여러 프랜차이즈 업체의 공장에서는 신속하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이스트를 이용하여 반죽을 발효시키고 있었다. 동네빵네는 이스트 대신 몸에 이로운 천연 효모를 넣은 빵을 만들어보기로 했고, 천연 효모를 직접 배양하는 기계를 구매했다. 현재 동네빵네 조합원의 제과점에서는 공장에서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 반죽을 숙성시켜 빵을 만든다.
건강한 빵을 만들자는 표어 아래, 이들은 동네빵네만의 특화된 빵도 출시했다. 동네빵네가 최초로 출시한 ‘일주일을 꿈꾼 빵’ 역시 한 조합원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빵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반죽을 일주일 정도 저온으로 숙성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반죽만으로 빵을 만들기엔 뭔가 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양한 과일을 첨가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처럼 수차례의 논의와 품평을 거친 결과, 일주일을 꿈꾼 빵이 탄생했다. 이외에도 △노아갈릭 △단호박 찰빵 △무화과 꽃이 피었습니다 등 조합원들이 함께 개발한 신제품들이 동네빵네 상표를 달고 등장했다.
▲ 동네빵네 협동조합이 개발한 '일주일을 꿈꾼 빵'. /ⓒ동네빵네 협동조합 제공
 
성공한 매장, 난항 겪은 공장
천연 효모가 첨가된 신제품들은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4월 이들은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응답하라 동네빵네’ 코너를 열어 1주일간 특별 행사를 벌였다. 당시에 일주일을 꿈꾼 빵 외에도 여러 종류의 건강빵 세트가 전면에 나섰다.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빵 5000만 원어치가 금세 팔려나갔다. 기세를 몰아 동네빵네는 국회 의원회관 앞에 차린 특설 매장에서도 3일 동안 800만 원의 빵을 팔았다.
각 매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마실ing’ 사장 최기권씨는 한동안 빵이 팔리지 않아 커피 판매에 집중했다. 그러나 요즘 그의 가게에는 동네빵네의 빵을 찾는 지역주민들로 북적인다. 최씨는 “이전보다 매출이 2배로 올랐다”며 만족을 표했다. 그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동네빵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 매출액이 20% 정도 상승했다. 신 이사장의 깜빠뉴 베이커리 주변에 사는 권모씨는 “이곳에서 만드는 빵은 대체로 몸에 좋아 아이들에게 안심하며 먹일 수 있다”며 자주 찾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동네빵네가 항상 순조로운 길을 걸어온 것만은 아니다. 공장을 운영하며 여러 차례 어려움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동네빵네는 발효된 반죽이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공장에 △선풍기 △에어컨 △제빙기 등을 장만했다. 이 때 들었던 추가적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합원들로부터 매달 걷는 출자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추가적인 운영비를 내지 않는 조합원이 생기며, 조합 내부에 갈등이 생겼다. 신 이사장은 출자금을 절감하기 위해 조합원 이외 가게들에도 반죽을 제공하는 등 거래처를 구하러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5개의 거래처를 통해 얻는 이익으로 침체한 공장 분위기를 점차 살려 나가고 있다.
 
지역민들과 함께 굽는 희망
협동조합을 꾸리며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조합원들은 이전과 다른 자신감을 얻었다. 최씨는 “우리도 인정할 만큼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제과점의 대명사지만, 우리도 지역민들에게 인정받는 제과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을 품고서 지난 7월 4일에 열린 ‘소상공인 협동조합 박람회’에 참가해 자신들이 개발한 상품을 소개하며 동네빵네를 시민에게 알렸다. 그 이후 동네 제과점 제빵사들은 동네빵네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으며, 기존 조합원들도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지역민들을 공장으로 초대해 직접 빵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숭실고를 비롯해 여러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공장을 다녀갔다. 학생들은 손에 크림을 묻혀가며 케이크를 만들고 천연 효모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 공장이 협소해 이동하기 불편했지만 동네 가까이 있는 제빵 공장에서 현장 체험을 하니 보람차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제 동네빵네는 지역민들이 정기적으로 체험할 기회를 확대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신 이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 기간 지역민들과 함께한 만큼, 앞으로도 신선한 빵을 만들고 신제품을 개발하려 해요. 동네빵네가 좀 더 성장하면 프랜차이즈와 대등한 경쟁을 하게 되리라 믿어요.” 영세 자영업자로 시작해 협동조합을 운영하기까지, 그들이 만드는 반죽은 어려움에 빠진 동네 제과점을 구하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