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인문학 명저 등산”은 우리 학교 문과대학의 공통 전공기반 과목 “인문학 명저 산책”을 학생들이 부르는 별칭이다. 별칭이 생긴 이유는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인문학 고전 작품들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과목이 ‘산책’ 수준을 훨씬 넘어 마치 등산이나 달리기 같은 고강도의 훈습(하드트레이닝)을 요구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지르는 ‘비명’과 한탄에 맞닥뜨린다. 읽고 쓰는 자기 능력의 한계와 마주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다. 내가 수업을 너무 어렵게 하는 건가 걱정도 했는데, 다른 교수가 하는 강좌도 비슷한 상황이라 한다.

세간에는 인문학이 ‘상식’을 가르치거나 기초적인 ‘교양’을 배우는 것이라는 오해가 꽤 있는데, 사실 제대로 된 인문학 소양을 갖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독서력과 표현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문과 학생들조차 스스로 책을 완독하고 스스로의 언어로 감상과 자기 논리를 말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길들여져 마치 입속으로 떠먹여 주는듯한 가공된 지식만 섭취해왔거나, 정답풀이식 입시 위주 고등학교 교육에 ‘쩔다가’ 대학에 와서도 스펙 쌓기나 학점 따기에 몰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맡은 강좌의 경우,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의 전체상과 오늘날 한국의 ‘교양의 지형학’에 입각해서, 아직 독서력과 독서경험이 취약한 학부생에게 지적경험을 만들고 보완하고 글 쓰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설문과 대화를 통해 아예 없거나 비체계적이며 산발적인 학생들의 독서경험과 문제에 대해 진단해주고자 한다. 이를 통해 목표의식을 만들고 백범 김구, 조세희,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드, 에드워드 사이드, 미셸 푸코 등이 남긴 ‘현대의 고전’들(학기마다 조금씩 다름)을 읽고 요약ㆍ발제한다. 때론 전두엽에 격한 고통이 유발되는 이 스스로 읽고 쓰기가 강좌의 핵심이다. 요약하고 발제하기는 문리(文理)를 트기 위한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세미나 방법이다. 독서력과 표현력을 키우는 다른 왕도는 없다. 나도 전문 연구자들과 지금도 이런 방법으로 공부한다. 학생들이 쓴 글 중에서 흥미롭고 잘 된 글은 같이 읽고 토론도 해본다. 또한 사회과학이나 예술 분야로 독서경험을 확장하기도 한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니, 전체적으로 이 같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이전에 못해봤던 강렬한 지적 수행을 행하는 것이다.

한 학기에 다 해내기 어려운 과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려운 산행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체력이 길러지듯, 뿌듯한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갖게 된다. 선생으로서도 이런 과목을 강의할 때 더 많은 긴장과 보람을 느낀다. 이번 학기에도 60명 정원을 채운 학생들은 문과대학 여러 학과들 외에도 사회대학과 예술대학의 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이 과목은 2013년에 인문학 소양에 대한 근래의 사회적 수요에 대응하여 높은 수준의 인문학 소양을 갖춘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개설된 이래 매 학기마다 60명 정원의 4, 5개의 강좌가 열려왔다. 실로 성균관 문과대학을 대표할만한 과목이지만, ‘인문학명저산책’의 ‘인문학’은 광의의 인문학이며 융합적인 것이다. 이런 과목이 더 많이 개설되고 타 단과대학과 율전 교정의 학생들도 수강할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사회대·자연대·예술대학 등의 교수님들이 이런 고전 과목 교수로 참여할 길이 열렸으면 한다.

창의적인 인재는 인간의 삶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깊고 보편적인 이해, 그리고 구상과 언어 능력으로부터만 길러진다. 또한 스스로 하는 공부를 통해서만 삶에 대해 제대로 고뇌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나온다. 인문학 공부의 가치는 다른 교환가치나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엄한 삶의 주체로 되는 데 도움이 된다. 책 읽기나 글쓰기는 평생의 존재론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 천정환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