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가 사는 지금은 지식·정보가 부를 창출하는 시대다. 이 무형자본인 지식·정보는 미래에도 부와 권력, 나아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근대 역시 지식·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진로가 갈렸다. 동아시아 각국은 새로운 지식·정보를 크게 활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16세기 이후, 서구 각국이 대항해 시대를 열어 부를 축적하고 산업화로까지 나아가는 것에 무관심하였다. 서구는 몇 세기 동안 지식·정보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고 근대의 길로 나아간데 반해, 동아시아 각국은 국가가 지식·정보를 독점하거나 통제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를 활용하고 보편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새로운 지식·정보는 국가와 체제를 유지하는 데 순응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여기서 벗어날 경우 검열의 대상으로 규제를 받았다. 주로 책의 출판 상황을 통해 저간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전환기인 17세기에 이수광(1563~1628)은 3차례나 중국을 다녀왔다. 그는 그곳에서 서양 선교사를 만나, 새로운 지식·정보를 획득하는 한편, 새로운 견문지식을 지봉유설에 담았다. 그는 마테오리치와 천주교 교리서인 천주실의는 물론, 5대륙을 그린 세계지도를 흥미롭게 기록하였다. 이 구형의 「곤여만국전도」는 동아시아 세계관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너머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린 새로운 지식·정보였다. 이수광이 견문 체험한 지식·정보를 통해 동아시아 공간 내의 조선이 아닌 세계 속의 조선,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널리 알렸다. 그렇지만 동아시아 너머의 세상 소식과 새로운 지식·정보를 담은 이 지봉유설은 제한된 지식인들에게 유통되었을 뿐, 많은 독자가 읽고 새로운 지식·정보를 획득하는데 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이수광은 예전에 없던 세계 조류의 새로운 지식·정보와 만났지만, 결국 그의 만남도 많은 타자와는 엇갈리고 말았다.
서구는 이와 사뭇 달랐다. 새로운 지식·정보가 만나고 엇갈리는 기로에서 만남을 지속하였고, 그 힘은 책의 출판과 유통으로 확산되었다. 일부 책은 국가나 권력(종교)의 힘으로부터 벗어난 공간에서 간행되어 유통되었다. 더욱이 새로운 지식·정보를 담는 책은 통치이념이나 종교적 강제에서 벗어나 지식·정보의 보편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지식·정보의 화약고에 불을 질렀다. 구텐베르크는 국가나 권력이 아닌 사적 공간에서 종이라는 물질의 이용법을 보편화시켜 새로운 지식·정보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의 인쇄술은 곧 전 유럽에 알려졌다. 마침내 국가와 교회가 장악하고 통제한 지식·정보는 무장해제를 당하였다. 다양한 문헌이 인쇄되어 전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도 한 동안 잊혀 졌다가 르네상스로 부활하였다. 부자나 권력자는 물론 누구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어 값싼 판본의 고전을 비롯하여 새로운 지식·정보를 손쉽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침내 르네상스는 서구 전역에 확산되어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지식·정보도 점차 국가나 교회로부터 탈주하여 보편화 되어 갔다. 더욱이 종교적 억압과 국가나 교회의 검열이라는 봉인을 풀어헤치자, 여기서 새로운 사유가 터져 나왔다. 지식인들은 출판을 통해 저마다의 관심과 견해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지식의 백가쟁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저 마다의 사유를 표출한 출판은 더러 과거의 모순과 제도를 비판하는가하면, 시대를 개혁하거나 전복하는데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백과전서는 이를 말해준다. 이 책의 집필자나 편집자는 각양각색의 인물이었지만, 가톨릭교회와 절대왕정을 반대하였다. 이 책은 18세기 후반 진보적 사상을 총동원한 거대한 결과물로 주목받았을 뿐만 아니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무기로도 기능하였다.
17세기 이후 서구 지식인들은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세계 전역에 전파하였다.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이마저도 제대로 인식하거나 활용하지 못하였다. 역사에서 뛰어난 문명을 지녔던 거대한 제국 중국이 자본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반식민지로 전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지식·정보 폭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를 어떻게 갈무리하여 활용할 것인가? 우리가 이제 답해야 할 순간이다.

 

한문교육과 진재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