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여름방학이 절반정도 지난 8월 초에 서울역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나는 방학 때 학교 도서관에서 자주 공부를 했는데, 그 날도 평소처럼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이 1호선이기 때문에 지하철을 환승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릴 때였다. 갑자기 지하철 보안관이라는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나에게 핸드폰 사진첩을 확인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내 앞에 서있던 여자 바지가 좀 짧았는데, 내가 핸드폰 하는 모습을 그 여자의 다리를 몰래 촬영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내 사진첩의 사진은 정상적이었고, 나는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다.
사건을 겪은 후 처음 느꼈던 감정은 황당함과 약간의 분노였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핸드폰도 보지 못하는 시대인건지, 나는 왜 바보 같이 사진첩을 순순히 보여줬는지 등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보다 더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성범죄가 더욱 일상화 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사진첩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던 지하철 보안관도 최근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하다고 말하며 양해를 구했었다.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제자를, 동료 여교사를. 대학 교수가 자신의 제자를. 대학 조교가. 군인이. 경찰이. 현역 국회의원까지도. 최근 크게 이슈가 되었던 성범죄만 꼽아 봐도 이 정도다.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성범죄 관련 소식들을 접하고 있으면 이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안타깝지만 이제 우리는 받아들여야한다. 성범죄가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확실히해두어야 한다. 성범죄가 바로 누구도 아닌 당신과 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전혀 그렇게 안 생겼는데’ 혹은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성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를 두고 주변에서 자주 하는 말들 중 하나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성범죄가 몇몇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세상에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없다. 성범죄는 얼굴모를 ‘또라이’가 아니라 이 글을 쓰는 평범한 나와 이 글을 읽는 평범한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성범죄가 일어날 리 없는 장소’도 없다. 대학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많은 사건들을 보아왔다.
따라서 이제는 학교 본부와 학생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성범죄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대학 역시 성범죄에서 자유로운 공간이 아닐뿐더러, 입시 중심의 중, 고등학교의 교육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개강총회와 같은 술자리가 많은 학기 초에 성범죄와 관련된 유인물을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배포해야한다. 성범죄는 특히 술자리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학생회에서는 많은 대학 새터, MT, 농활과 같은 현장 활동에서 반성폭력 교육 및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한 방안을 학생대표자들과 논의해야한다.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한 현장 활동이 평생의 악몽으로 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은 불편하고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깐의 작은 불편함이 모두를 정말 큰 불편함에서 구할 수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캐리비안 베이 여성 탈의실 몰래 카메라를 촬영, 유포한 사람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또 얼마 전 서울의 모 대학 여자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되어 학교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가해자를 당연히 잡아야겠지만 잡는 일에서 그치지 않아야한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 성범죄 안전지대는 없다. 우리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우리 학교는 일어나지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보다 학교와 학생회가 성범죄 예방을 위해 머리를 맞댈 시기이다.
 

박중현(정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