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학교 다녀오겠나이다
소녀, 학교 다녀오겠나이다
  • 이성경 기자
  • 승인 2015.09.16 15:58
  • 호수 15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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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2

 500년 전 성균관, 공자의 가르침을 외는 푸르른 소리가 명륜동을 채운다. 청금복을 입은 유생들이 명륜당에 앉아있다. 그러나 성균관이 생기고 618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한복은 옷이 아닌 그냥 ‘의상’이다. 청바지와 후드티가 익숙한 우리에게 한복은 세뱃돈을 위해 감수하는 절차일 뿐이다. 진짜로 그렇게 불편한 걸까. 지난 일주일, 치마끈 한번 제대로 매본 적이 없는 기자는 한복을 입고 생활했다. 인사캠과 자과캠 일대를 누볐던 지난 일주일의 회고록을 하루로 정리해봤다. 하루 빨리 ‘#데일리룩’과 ‘#한복’이 짝꿍이 되기를...

진시(오전 7시~9시)
내가 한국인이긴 했던 걸까

‘이거 왜 이렇게 생긴 거지.’ 당황했다. 내가 알던 한복치마는 앞으로 팔을 끼워서 뒤에 달린 지퍼를 잠그면 됐던 것 같은데 이건 온통 끈뿐이었다. 허리에 묶으니 치마가 질질 끌린다. 가슴 위로 올려서 묶어봤다. 여전히 치마는 바닥을 쓸었고 옷 태가 살지 않았다. 내 키는 166. 여자로서 작은 키는 아니다. 인터넷에 도움을 청했다. 왼쪽의 치맛자락은 안으로 넣고 오른쪽 치맛자락은 바깥을 감싸게 해 끈으로 몸을 둘러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빼 매듭을 지으면 된단다. 맞는 것 같다. 치마라는 산을 넘어 다음은 저고리. 옷고름이 축 늘어져 내게 윙크를 한다. 짧은 고름을 위로 해 엑스자로 교차해 한번 묶어준다. 그 후, 긴 고름으로 고를 만들고 짧은 고름을 동글게 말아 고를 통과시켜주면 옷고름 완성이다. 한복, 쉽지 않다.

 

 

사시(오전 9시~11시)
걱정이 태산

아침 9시, 집을 나섰다. 나의 등굣길은 잠실에서 수원까지. 서울사람들 모두가 지하철을 타는 그때 한복은 너무 버거운 존재였다. 선릉, 강남, 교대··· 역들을 거칠수록 나와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은 늘어갔다. 계단을 오를 땐 바삐 뛰어가는 직장인들에게 치마를 밟히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했다. 자과캠 후문에서 제2공학관까지 가는 5분 동안 적어도 50명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일단 강의에 가야된다. 첫 수업은 영어발표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교수님을 포함한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다. “Your dress is beautiful!” 외국인 교수님이 한마디를 건넨다. 칭찬에 좋았던 기분도 잠시, 엉덩이 밑에 깔린 치마는 몸을 잠깐 뒤척여도 바스락 소리가 났다. 필기를 하려고 팔을 들면 짧은 저고리 탓에 살이 슬쩍슬쩍 고개를 비췄다. 한복을 입어서 조신해 보이는 게 아니다. 한복은 조신한 사람이 입는 거였다.

 

 

술시(오후 7시~9시)
오늘의 교훈, 작업은 작업복을 입고

건축학과 학생인 난 항상 과제와 함께한다. 오늘도 건축모델을 만들러 제1공학관 5층 설계실로 향했다. 등 뒤에 노트북 가방을 맨 채 오른손엔 A1박스지와 우드락본드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왼손엔 치맛자락과 휴대폰이 들려있다. 겨우 제1공학관 5층에 도착하니 설계실 문을 열 손이 없다. 과 친구들은 ‘가지가지 한다’며 나를 반겼다. 칼판 앞에 앉아 어제 끝내지 못한 건축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별로 깨끗하지 않은 내 자리에서 한복을 지켜내는 일은 꽤 힘들었다. 우드락 본드는 옷에 묻기 십상이었고 칼질 한 번에 우드락 조각들이 치마에 우수수 떨어졌다. 긴 치마 때문에 신은 하이힐은 발을 괴롭혔고 꽁꽁 묶은 치마끈은 어느새 느슨해져 스르륵 내려올 것만 같았다. 지저분하지만 편안했던 내 ‘츄리닝’이 그리운 밤이다.

 

 

자시(오후 11시~오전 1시)
“예쁘네. 맨날 한복 입어주면 안돼?”

“야, 떡볶이 먹으러 가자” 방으로 돌아가는 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콜!” 떡볶이 집에서도 나, 아니 한복은 인기 만점이었다. “학생, 한복이 참 예쁘네” ‘예쁘다’. 그 단어를 오늘만 10번도 넘게 들었다. 용돈을 다 털어서 산 원피스를 입어도 천송이 립스틱을 발라도 쉽사리 나오지 않았던 그 말이 한복을 입으니 쏟아진다. 방에 들어와 속치마와 속저고리만 입었다. 하얀 옷이어서 일까. 내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우아함과 여성스러움이 보이는 듯도 하다. ‘오늘 좀 예쁜가.’ 사람을 예쁘게 하는 옷, 바로 그게 한복이었다. 불편함이 없다곤 못한다. 하지만 발에 밟히는 맥시드레스나 뱃살이 다 드러나는 크롭티도 마찬가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덥지도 않다. 오히려 통풍이 잘 돼 시원하다. 내일 아침은 어떤 조합으로 등교할지 고민하며 새하얀 속치마를 입은 채 스르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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