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얼마 전 엠마 왓슨이 UN연설에서 페미니즘을 언급해 많은 비판을 받았던 지점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많은 비판들이 있었으며, 그러한 비판점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그러한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 틀린 일이 아니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의견에 긍정적인 반응들도 있긴 했지만 유독 나의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올바른’ 페미니즘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가 소위 ‘페미나치’라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이러한 반감을 가진 이들은 ‘여성우월주의’나 ‘여성상위시대’로 페미니즘을 오독하며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러한 공격성의 기저에 핵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남성의 군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남성들은 군대에 가서 ‘손해’를 보며 ‘의무’를 이행하는데 비해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심리가 겨냥하는 지점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물론 법적으로 한국남성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라는 개념이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희생은 공동체를 위해 당연한 것이며 그렇기에 공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평범한 개인이 군대에서 받는 고통을 정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월급을 올린 대신 군 보급품을 축소시켜 생활용품을 구매하는데도 돈이 모자라 집에서 돈을 빌려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뉴스마저 나왔다. 요즘 군대에서는 전에도 없던 사병들 간의 빈부격차 문제까지 대두된다고 한다. 분명 이러한 고통은 단순히 의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병역이 의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또는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채우려 하는 사태가 나타난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은 물론 국가에게 있지만 고통을 보상해줄 책임은 상대적 약자인 공익이나 병역면제자,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고로 페미니즘적인 요구에 대한 혐오나, 국가의 직접적인 보상이 아닌 누군가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주어지는 군가산점 등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에 대한 보상은 오히려 국방부를 비롯한 국가에 직접적으로 요구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물음은 우리가 병역에 대해 ‘의무’라는 개념을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지 않는다면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면 국가에 대해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상은 누군가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주어져서는 안 된다.
 

 

이호성(국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