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연교 기자 (joyungyo@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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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의 뼈 아픈 교훈
1989년 11월 10일 아침, 30년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리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마침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일은 서독이 분단 이래 오랫동안 통일을 위해 치밀하게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회에 많은 문제점을 양산했다. 먼저, 실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사회주의경제 체제에서 살아온 동독인들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물밀 듯 들어오는 통일 독일의 사회에서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동독인들은 경제력 상실과 더불어 정체성도 위협받았다. 동독에서의 지난 45년의 기억을 지우고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계 10위의 공업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공산국가 가운데 가장 근면하다는 평가를 받던 지난 동독 시절과는 달리 통일된 독일에서 동독인들은 열등의식과 소외감을 느꼈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인상되는 세금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서독인들의 불만 또한 커졌다. 서독인들은 실업자로 전락해 무기력한 삶을 전전하는 동독인들을 능력 없는 열등한 이웃으로 생각했다. 반면 동독인들은 자신들을 우습게 여기며 우월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서독인들에게 반감을 느꼈다. 마침내 동독인은 서독인을 ‘베씨’(the Wessi), 서독인은 동독인을 ‘오씨’(the Ossi)라고 부르며 서로를 비하하는 표현을 만들어 냈고 동서독 주민들의 갈등은 깊어지게 되었다. 통일이 이뤄진 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 동독 사람들과 구 서독 사람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괴리는 독일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체제의 통합을 넘어선 사람의 통일
이러한 독일 통일의 사례를 통해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 논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문화적 통일’, 즉 ‘사람의 통일’임을 강조한다. 기존의 통일 논의는 통일을 마치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생각하며 단순히 ‘체제의 통합’에만 치우쳐져 있었다면 이제는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 간의 진정한 ‘정서적 화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역사학 박사는 “남북한 통일의 경우에는 동서독 통일의 사례에 비교했을 때 더욱 심각한 악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의 동독은 서독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했지만 지금의 북한의 경제력과 비교했을 때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또한 동독과 서독은 남북한보다 교류가 훨씬 더 활발히 이루어졌고 서로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동독에서는 서독 방송을 거의 대부분 수신할 수 있었는데, 한 사회학자는 “45년이라는 분단의 기간 동안 그들의 문화적 공통성 유지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동서독인들이 다 볼 수 있었던 TV방송”이라고 말했다. 또한 탈북자들에 비해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탈동자들의 수도 20~30배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북한과 동독의 체제이다. 둘은 겉보기엔 공산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권력이 최고지도자인 수령 1인에게 집중되고 그를 중심으로 전체 사회가 하나로 편제되는 유일체제로서의 북한의 정치체제는 동독을 포함해 전 세계 어디에도 유사 사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형태이다. 또한 동서독은 남북한처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지 않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6.25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남북한의 사람들은 동서독 사람들에 비해 서로에 대한 개인적인 적대감이 훨씬 더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연구하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남북한의 통일이 이뤄질 경우 우리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임이 틀림 없다”며 “갑자기 오는 통일은 모두에게 불행한 것”이라 입을 모은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단장인 김성민 교수는 “독일은 내부적인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서적 갈등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남북한이 준비 없이 통일되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겠느냐”며 “하지만 통일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필연이기 때문에 통일 이후를 생각하는 포스트 통일의 관점으로 남북한 통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서 통일 이후 독일 사회를 보고 ‘사람의 통일’을 이뤄야 할 필요성을 알 수 있듯이, ‘포스트 통일’이란  통일 이후의 사회를 ‘상상’함으로써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통일 문제에 접근해야 함을 알려주는 새로운 통일 패러다임이다. 김 교수는 “통일 이후를 상상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으로서 통일 이후에 시행할 정책 등을 연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의 사회를 미리 생각해 봄으로써 지금 여기서 무엇을 준비하고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즉, 이 패러다임은 통일이 주는 후유증을 줄이고 남북의 결합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김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들은 “통일은 쉽게 말해 결혼과 같다”며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처럼 통일 또한 ‘현실’이다. 부부가 한 집에 살 듯 남북의 주민들도 통일을 하면 한 곳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 부부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듯이 남북의 주민들 또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개인적인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보며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아무리 정치·경제적인 문제가 존재하더라도 한반도 통일은 청신호가 켜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런 의미에서 개성공단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며 “북한의 노동자들이 남한의 노동자나 CEO를 만나 서로의 차이점 그리고 공통점을 접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공통점을 만들 수 있었던 교류의 장이었기에 그 폐쇄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괴델리즈 독일 동서재단 이사장은 “우선, 사실의 인지가 이루어지면 부차적으로 감성적 이해가 동반되고 이는 곧 남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거대한 차원의 정치, 경제적 문제까지 해결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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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향한 인문학적 시선,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통일’
포스트 통일의 관점으로 학계에서의 통일 준비를 주도해나가고 있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은 7년간 56권에 이르는 단행본을 발간하며 통일 문제에 대해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령, 청소년을 위한 기획도서를 발간하며 젊은 세대가 통일 문제에 보다 정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애쓰고 있다. 또한 △초중고 강연 △시민강좌 △영화제 △영상공모전 △DMZ 답사 등 대중들이 북한 사회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행사들 또한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더불어 김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들은 “남북한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대성은 근본적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는 통일을 위해 반드시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트라우마는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생긴 정신적 상처로서 인문학적 논의의 대상”이라며, “남북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분단과 이산 트라우마, 지속적인 감시·통제에 노출된 북한 주민들의 북한체제-트라우마, 탈북자들이 탈북 과정에서 겪은 탈북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가 통일 준비의 차원에서 반드시 논의돼야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우리가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보통 자신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울거라 생각하며 타인을 환자로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사실 우리는 분단되었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 표현하는 데 있어 걸리는 부분이 있고 행동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이 같은 분단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심리·상담학계에서도 ‘먼저 온 통일’, ‘이미 온 통일’이라 불리는 탈북자들에 대한 연구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탈북자들을 통해 본 ‘북한체제-트라우마’와 그에 대한 치유 방법을 연구하는 유혜란 북한체제-트라우마 치유상담센터 대표이사는 “*상징 조작과 감시·통제·억압을 통해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권을 침해하는 북한체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었던 사람들은 사고력과 이타성이 떨어져 한국 사회에 와서도 타인을 의심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대인관계를 왜곡시켜 제대로 된 관계 맺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했다. 그에 더해 “탈북민들 스스로 자신이 체제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상처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북통일에 앞서 그들에 대한 상담치유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체제 상으로 하나가 되어도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남이라 느껴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며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치유하고 치유받는다면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통일이기에 통일은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려는 그 움직임들이 모두 모여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도우미

◇상징 조작=실체와는 다른 환영(幻影)을 교묘하게 조작함으로써 대중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광고나 선전 등은 이와 유사한 대중조작을 행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