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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헬렌켈러,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그림을 전하다일러스트레이터 구경선 작가
성여경 기자  |  ssungvely@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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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호] 승인 2016.12.10  23: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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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선 작가 제공
 
앙증맞고 귀여운 캐릭터 ‘베니’로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을 장악한 일러스트레이터, 구경선 작가는 베니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녀는 두 살 때 열병을 앓고 난 뒤 청력을 잃었고 3년 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시력마저 잃어가고 있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던 그녀에게 그림은 하나의 언어로 다가왔고 그녀는 일러스트 작가의 꿈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빛마저 사라져가는 세상에 놓인 그녀이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입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손이 남아 있어 절망하지 않겠다는 긍정적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베니라는 캐릭터가 본인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베니는 저에게 아주 의미 있는 분신 같은 존재예요. 청력이 뛰어난 동물인 토끼가 귀가 들리지 않는 저 대신 많이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게 된 캐릭터예요. 사람은 어차피 언젠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잖아요. 베니는 10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캐릭터로 잘 남겨두고 싶어요. 캐릭터는 계속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모티콘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저는 2008년에 싸이월드 스킨작가로 데뷔했어요. 3년 전 제 눈에 대한 병명 진단을 받고 생활이 달라졌을 때, 싸이월드 선물가게 총괄자분이 싸이월드 운영자분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어요. 저를 돕고 싶다고. 베니를 알리자고. 그래서 차근차근 비트윈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카카오톡까지 연결해주셨고 이모티콘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어요.

베니 이모티콘의 표정이나 행동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정말 특별한 게 없어요. 그저 제가 귀가 안 들려서 통화를 못 하니까 카카오톡이 제게 전화기 같거든요. 그래서 카카오톡으로 수다를 떨다보면 대화를 할 때 제가 쓰고 싶은 이모티콘이 떠올라요. 그래서 하나씩 메모해뒀다가 작업을 하곤 해요.

정적인 일러스트와 동적인 이모티콘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일단 믿기지 않겠지만 저에겐 베니가 아직 보인답니다!(웃음) 일러스트는 정지된 그림이지만 이모티콘은 움직이죠. 그래서 일러스트는 제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베니의 사진을 찍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이모티콘은 제 눈앞에 보이는 베니를 그대로 옮기는 느낌이에요.

   
구경선 작가의 그림 '아프지마'
ⓒ구경선 작가 제공

한국의 일러스트 분야 또는 이모티콘 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빠르게 바뀌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기본에 충실하고 테크닉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개성이 넘치고 감성적인 그림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일러스트 분야가 또 다양하게 바뀔 것 같아서 기대가 돼요. 예전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을 꾸미는 것이 한창 열풍이었는데 지금은 또 이모티콘 사용이 열풍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 하루하루 무섭게 성장하는 한국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를 하고 있고, 베니 이모티콘이 올해 9월 카카오톡의 첫 번째 *기브티콘으로 선정되어 판매액의 일부가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해 기부되었다고 들었다.
아무 직업이 없던 25살 때 캄보디아로 선교를 갔는데 거기서 꿈이 생겼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전부인 그림을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만큼 발전시켜서 그 그림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그래서 그 꿈을 세우고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렸어요. 하지만 모든 일이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1년 동안은 수입이 잘 안 나온 적도 있었고, 겨우 잘 되기 시작하다가 3년이라는 긴 공백이 찾아오기도 했어요. 그 시간들을 보내며 어느새 저도 모르게 꿈이 바뀌게 됐어요. 영향력이 큰 사람보단 인간다운 사람이 되자고. 그러면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어버리게 된 거예요. 그저 베니를 계속 그렸는데 어느새 카카오톡과 기브티콘을 하게 되었고 베니로 청각장애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소름 돋았어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예전의 꿈이 이뤄질 수 있었죠.

출판하신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에 그려낸 버킷리스트 중 ‘팬미팅 하기’를 곧 하게 된다고 들었다.
다른 강연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사회를 보던 친구를 알게 됐어요. 그 친구가 제 강연을 듣고 너무 감동 받았다며 제 책을 나중에 사서 본 거예요. 그 책에 담긴 버킷리스트 중에 팬미팅 하기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걸 돕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진행해줬죠. 곧 팬미팅을 하게 되는데 지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이에요.
   

작가의 에세이 『그래도 괜찮은 하루』
ⓒYES24 제공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팬이라기보다는 저와 같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가진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그 여자아이의 어머니와 인연이 닿게 되어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시력 검사를 하러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약속을 잡았지만 애석하게도 서로 자꾸 엇갈려서 2년이나 못 본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부산 근처에 살고 있는 여자아이를 만나러가겠다고 했어요. 같이 맛있는 밥 먹고 이야기 나누었던 그 만남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요.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여자아이의 마음이 남일 같지 않았고 여자아이의 동생도 함께 나왔는데 나이에 비해 의젓한 모습이 제 동생 같았어요. 여러 가지 마음이 느껴져서 참 가슴이 뜨거웠던 만남이었어요.

버킷리스트에 어머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가 있고 ‘엄마 사랑해’라는 전시회를 여는 등 어머니와의 관계가 특별해 보인다.
엄마는 제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감사한 존재예요. 아빠가 집에 잘 계시지 않았고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혼자 저를 키우느라 고생을 참 많이 하셨어요. 단어 하나를 가르쳐주는데도 몇 백 번 반복하시고 구화를 가르쳐주시며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셨죠. 그런 엄마는 제게 있어서 시골 마을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나무 같은 존재예요. 아주 뿌리가 깊고 굵어서 한 사람이 모두 안을 수 없을 만큼 큰 나무요. 엄마도 베니를 아주 좋아해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하고 싶다고 베니 그림을 보내 달라 하시기도 하고, 이모티콘 출시 첫 날에 꼭 사서 사용하시곤 해요.
   
그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프리허그를 실현하고 있다.
ⓒ구경선 작가 제공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들이나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힘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안 그래도 힘내고 있는데 힘내라고 하면 얼마나 더 힘내야하나 뭔가 힘이 빠지는 거예요. 막연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힘내라고 하지 않아요. 그냥 여러분도 힘내고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요. 100미터 달리기에서 98미터까지 와놓고 포기할 거냐는 둥 그런 이야기도 하지 않을 거예요.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하는 거예요. 잠시 멈췄다가 다시 가던 길 가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거든요. 억지로 하는 게 더 힘들고 더 병이 돼요.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소소한 개인적인 목표는 태국어를 배우는 거예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내년에 두 번째 책을 출판하고 새로운 이모티콘을 출시하고 전시회를 여는 것이에요.


기사도우미

◇기브티콘=주다(Give)와 이모티콘의 합성어로 구매와 동시에 기부를 할 수 있는 이모티콘.로 구매와 동시에 기부를 할 수 있는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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