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주성 편집장 (qrweuiop@skkuw.com)

3월의 개강이 9월보다 더욱 설레는 이유는 어쩌면 해가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기관에서는 한 해의 시작을 한겨울인 1월에 맞이하지만, 대학은 봄기운이 피어오르는 3월에 학기를 시작한다는 점도 개강의 두근거림을 더하는 것 같다. 3월의 대학가는 새로운 사람들이 가득하고, 대학생들은 새로운 후배를 맞이하게 된다.
과거 대학에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밥을 사는 것이 일종의 미덕이었다. 신입생이 3월에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는다면, 그것이 곧 선배들의 잘못이 되는 시기였다. 식구(食口)란 원래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대학의 선후배들은 그렇게 또 다른 식구가 되어가곤 했다. 필자 역시 예전에는 선배들이 사주는 밥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선배들에게 얼마나 비싼 밥을 얻어먹었는지가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 주된 이야기 거리였다. 3월 내내 한 푼도 쓰지 않고 식사를 해결했고, 그 만큼 여러 선배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 1년 뒤, 필자는 선배들에게 얻어먹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을 후배들에게 베풀어야 했다. 너무나 당연한 ‘내리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기백만원을 지출하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학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매서운 경제 한파가 대학생의 지갑에도 몰아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식당에도 캠퍼스 바깥과 비슷한 가격대의 메뉴들이 늘어나고 있을 만큼 밥값에 대한 부담도 늘어났다. 자신의 밥 한 끼를 사먹기도 고민이 되는 상황에서 후배 여럿의 밥을 사주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대학에서는 후배들, 특히 신입생과의 밥 약속을 피하기 위해 학과 모임을 빠지거나, 아예 속칭 아웃사이더가 되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기성 언론에서는 ‘밥 사주기 문화’가 대학 공동체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했다. 처음 후배에게 밥을 사주기 시작한 선배들의 마음속에는 밥을 사주는 행위는 단지 수단이고, 목적은 후배와의 자연스런 교류였을 것이다. 하지만 해가 흘러 지금은 밥을 사주는 것이 부담돼 아예 교류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심지어 교류를 방해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불편해지고,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는 후배들 또한 선뜻 먼저 선배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선후배간 교류의 기회가 사라져가고 있다.
모든 제도가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다지만, 우리 학교가 운영하고 있는 대계열제가 가지는 커다란 단점 중 하나는 신입생이 학과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운영되는 LC나 가전공, 혹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동아리나 학회가 다른 학교에서의 학과 역할을 대체하고 있지만, 강력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같은 과 선배’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더욱 선후배간 교류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
오늘날은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이 큰 자산이 되는 시대다. ‘성균관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쳐진 학우들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된다. 그러니 ‘밥약’이 아무리 무섭다 한들 만남의 기회를 피하지 말자. 중요한건 밥이 아니라, 만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