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주성 편집장 (qrweuiop@skkuw.com)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슬슬 따뜻해지는 환절기가 되면 무슨 옷을 입을지 항상 고민이 된다. 두꺼운 점퍼는 너무 더울 것 같고, 얇은 후드만 입기에는 해가 떨어지는 오후만 돼도 춥다. 이번 환절기에도 또다시 이런 고민이 찾아왔다. 짧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새 옷을 사는 것이었다. 결론을 내자마자 재빠르게 컴퓨터를 켜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무엇을 살지 정한다. 이번에는 청바지 한 벌, 약간 두꺼운 후드 티셔츠 한 벌이다. 이제 드넓은 정보의 바다 속 넘쳐나는 수많은 옷 중 맘에 드는 옷을 정하기만 하면 끝이다.
평소에 애용하는 포털 쇼핑검색창에 ‘청바지’를 검색한다. 검색결과는 391만 4043건. 수없이 많은 결과가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이 많은 상품 중에 내 맘에 드는 옷이 없으랴 하는 생각에 묘한 안도감이 든다. 첫 페이지부터 상품을 살펴본다. 색깔, 기장, 봉제선, 청바지의 찢어진 모양, 워싱 유무, 브랜드 로고의 크기. 수십 개의 상품을 살펴봐도 무언가 한 군데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기를 수십, 아니 수백 차례. 이제 겨우 청바지 한 벌 골랐을 뿐인데 며칠이나 지나버렸다. 후드 티셔츠를 고르려면 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을 앞두면 항상 고민한다. 선택의 결과가 자신에게 미칠 영향 때문일 것이다. 청바지를 고를 때 우리가 수없이 고민하는 이유는 우리가 산 옷을 입고 바깥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나와 내 옷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옷을 입을 때마다 드는 기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린 선택은 어떤 형식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의 시간은 우리에게 미칠 결과의 크기와 관련돼있다.
대통령 선거는 우리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다.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의 모습을 결정하는 순간이고, 이 나라의 국민이기도 한 내 자신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고작 몇 년 입는 청바지 한 벌, 후드 한 벌을 살 때도 수백여 가지의 제품을 살펴보고 수많은 것들을 고려한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의 방향이 결정되는 결정에 있어서는 사실 그리 큰 고민이 없어 보인다. 자신을 선택해달라는 후보들이 그들이 그리는 국가의 미래를 알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공약들을 내세우는 시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보다는 그들의 흠결에 주목하고, 상대 후보에 대한 헐뜯기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혹은, 아예 관심이 없기도 하다.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단기 레이스다. 많은 사람들이 단기 레이스 일수록 상호비방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사실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후보에 대한 관심이 없을 때에만, 상호비방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대중들이 선거에 관심을 가질수록, 근거 없는 소문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대선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선택이 내게 미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고민의 시간도 커져야 마땅하다. 나라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고르는 일이 남의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한 달의 시간동안, 향후 5년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고민하자. 우리들의 고민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