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몸에 몰래 들어왔다
누군가 내 몸에 몰래 들어왔다
  • 김민진·조연교 기자
  • 승인 2017.05.22 12:44
  • 호수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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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년들의 미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불임, 난임으로 인해 아이를 낳고 싶음에도 그럴 수 없는 부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방암이나 갑상선암과 같은 중병 환자들의 수 또한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 배후에 환경호르몬이 있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 아래는 전문가의 검토를 바탕으로 작성된 가상 사례입니다.

대학생 A양이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일찍 일어날 거라 다짐했건만 오늘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부랴부랴 샴푸를 하고 바디워시로 몸을 씻는다. 스킨, 로션… 지각을 해도 요즘같이 볕이 따가운 날엔 선크림을 듬뿍 발라줘야 한다. 간신히 늦지 않고 강의실에 도착하니 친구 B양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그의 손끝엔 새빨간 매니큐어가 예쁘게 발려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들의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린다.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다. A양은 평소처럼 컵라면을, B양은 도시락을 집어 든다. B양은 건네받은 영수증을 입에 물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A양은 잘 익은 면을 돌돌 만 컵라면 뚜껑 위에 올려 후루룩 먹는다. 왠지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 그런데 문득 A양의 머리에 생각이 스친다. 요즘 들어 부쩍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시작해야 하는데 영 감감무소식이다. 한편 B양은 갑자기 아랫배에 강한 통증을 느끼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갈수록 생리통이 심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도 A양과 B양의 사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비슷한 경험을 겪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민건강관리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자궁근종 △자궁선근종 △자궁내막증 같은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0대 환자의 경우, 10년 동안 78%나 증가했다. 최근 몇 년간 이같은 여성 질환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에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해 바삐 살아감에 따라 운동량이 감소하고 스트레스가 증가해 온 것 외에 또 다른 원인이 지적되고 있는데, 바로 환경호르몬에 대한 노출 증가이다.

가상의 사례 속 A양과 B양은, 일상 곳곳 포진된 환경호르몬에 노출되고 있다. 우선 A양은 일어나 샴푸를 하고 바디워시로 몸을 씻는다. 그런데 △샴푸 △린스 △바디워시와 같은 계면활성제를 함유한 합성세제에서는 환경호르몬이 발견된다. 스킨·로션 등 기초화장품은 종종 파라벤을 포함하는데 이는 생식 기능에 영향을 끼치는 등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물질로서 유방암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밝혀진 바 있다. 선크림 또한 그 성분에 유의해야 한다. 백탁 현상을 없애기 위해 대부분의 선크림에 들어가는 벤조페논-3(옥시벤존)은 성호르몬과 더불어 갑상선호르몬에도 교란을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이다. 또한, 매니큐어에는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드는 가소제인 프탈레이트가 들어있다. 프탈레이트는 간·신장·심장·폐에 유해하고 자궁내막증과 더불어 불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환경호르몬이다. 한편, 편의점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제품들이 한가득 진열돼 있다. 컵라면 용기에 주로 사용하는 재질은 주로 PP(폴리프로필렌)로서 비교적 안전한 플라스틱이지만 그 뚜껑과 일부 용기에는 PS(폴리스티렌)가 포함돼 있다. PS는 가볍고 저렴해 배달음식 업체 등 많은 곳에서 사용되지만 90도 이상으로 가열되면 인체에 해로운 환경호르몬이 나온다. 편의점 도시락 뚜껑 또한 PS이기 때문에 뚜껑까지 함께 데울 경우 환경호르몬이 가득한 한 끼를 먹게 되는 셈이다.

아차! 여기도 환경호르몬이?

환경호르몬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발견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약 6년 전, 종이영수증에 기형아 출산과 성조숙증, 그리고 각종 암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 BPA(비스페놀 A)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파장이 불거졌다. 미국 환경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에 따르면, 영수증 한 장에 들어 있는 BPA의 양은 캔 음료나 젖병에서 나오는 양보다 250배에서 1000배가량 많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한 해 약 150억 개의 종이영수증이 발급되는 등 이를 계속 사용해왔으나 마침내 지난 4월부터 환경부 주도하에 전국적인 퇴출 사업에 시동이 걸렸다.

또한, 최근 생리대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수면 위에 오르면서 여성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는 지난 3월 여성 환경연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여성위생용품이 직접 닿는 신체 부위는 일반적인 피부처럼 화학물질의 노출을 효율적으로 막지 못한다”며 “생리대가 여성의 생식기계(生殖器系)와 맞닿아 사용되는 만큼 철저한 위해성 평가와 관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때 발표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에 의하면, 국내에서 판매량이 높은 일회용 중형 생리대 5종을 포함한 총 11개 제품에서 200종의 *TVOC가 방출됐고, 이 중에는 벤젠과 스티렌 등 20종의 독성화합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생리대는 안전성 검증 차원에서 전 성분 표시제가 적용된 샴푸나 세제와 달리 관련 규제가 없다. 그로 인해 제조사들은 영업 기밀이란 이유로 시중에서 판매하는 생리대와 팬티라이너에 세부 성분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대부분은 합성화학물질과 밀접한 관련을 맺지 않은 것이 없다. 여성들의 경우 이것이 체내에서 마치 실제 여성호르몬처럼 작용함에 따라 자연적인 호르몬의 균형이 깨져 여성 질환을 일으킨다. 이에 최근 의학계는 이같은 여성 질환을 방치한다면 △불임 △난임과 더불어 △습관적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다. 임신이 되지 않아 고통받는 부부들이 늘어나는 우리 사회 문제의 배후로서 환경호르몬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디버든,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遺産)

뿐만 아니라 환경호르몬은 그 영향이 세대를 거쳐서 발현될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에 관련해 최근에는 ‘바디버든(Body Burden)’이라는 개념을 통해 환경호르몬 문제에 다가가는 접근 방식이 호응을 얻고 있다. 바디버든이란, 인체 내에 축적된 특정 유해 화학물질의 총량을 뜻하는 것으로서 환경호르몬을 넘어 각종 합성화학물질로 인해 인체에 쌓이는 부담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모체에 쌓인 바디버든은 양수, 탯줄, 심지어는 모유 수유를 통해서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2014년 한국보건사업진흥회는 △서울 △경기·인천 △충청 △영남의 전국 4개 권역에서 표본 추출된 엄마 264명의 모유와 식습관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배달 피자를 많이 먹는 엄마의 모유는 *PFOS의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환경호르몬은 간·뇌·신경에 작용해 신생아의 지능과 몸무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학계에서는 바디버든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환경호르몬을 안전하게 대체하는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프탈레이트류와 비스페놀류를 대체해 사용되는 일부 대체물질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실제로 몇 가지가 상용화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물질의 안전성 역시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라 경고한다. 가령 BPA를대체해 사용되는 비스페놀 S가 환경호르몬으로서의 독성이 BPA보다 낮지 않다는 사실 등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환경호르몬 대체물질’을 개발해 사용하고자 한다면 대체물질의 안전성을 명확히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를 위한 ‘낯설게 보기’

한편 소비자들 사이에선 생활 속에서 화학제품을 멀리하는 ‘바디버든 줄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자발적으로 환경호르몬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일상에서 접하는 환경호르몬 중 상당수는 며칠만 주의해도 노출을 줄일 수 있다. 최 교수는 2010년 실험을 통해 닷새 동안 산사 수련에 참여해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했던 사람들의 경우, 프탈레이트 환경호르몬이 최대 90%까지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최 교수는 “늘 익숙하게 사용하던 것들을 낯설게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며 “이것을 왜 써야 하는지 스스로 반문하고 불필요한 화학제품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미 우리 삶을 에워싼 화학물질로부터 완전히 탈출하기는 쉽지 않지만, 화학제품 사용을 경계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느 정도 환경호르몬에 대한 노출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더불어 자식 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 청년들은 일상 속 작은 실천을 통해 무분별한 화학제품 사용을 피하고 건강을 돌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상에서 환경 호르몬 한 스푼 덜어내기

일상에서 환경 호르몬 한 스푼 덜어내기

1. 이미 섭취한 환경 호르몬은
   해독하자.

◈ 물을 많이 마시자.
◈ 독성물질의 75%는 대변으로 배출되니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자.
◈ 현미, 채소, 식물성 기름 같은 자연식품을 섭취하자.
◈ 땀이 촉촉하게 날 정도의 운동으로 피부를 통해 독소를 배출하자.

2. 화학제품 사용 시 유의하자.

◈ 컵라면봉지라면: 전자레인지로 가열해서는 안 된다. 컵라면 뚜껑에 라면을 덜어 먹거나 봉지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끓여 먹는 행위를 삼간다.

◈ 편의점 도시락: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뚜껑을 제거하고 적정시간(2분)을 초과하지 않는다.

◈ 종이영수증순번 대기표: 입에 물지 않는 것이 좋다. 지갑에 장기간 보관하지 않고, 물에 젖거나 기름진 손으로 만지지 않아야 한다.

◈ 통조림캔: 개봉 후 내용물을 다른 용기에 옮겨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찌그러져 있거나 녹슨 통조림, 캔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 테이크아웃 종이컵: 종이컵은 105도 이하에서는 대체로 안전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환경호르몬이 방출되므로 전자레인지로 가열하지 않는다. PS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뚜껑은 90도에서도 녹기 시작한다. 
 

기사 도우미

◇TVOC=Total Volatile Organic Compounds(휘발성유기화합물).

◇PFOS=Perfluorooctanesulfonic acid(과불화옥탄술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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