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몇 개 안 되는 채널에 일본 골목에 야쿠자처럼 리모컨을 돌리는 족족 쿡방, 먹방이라고 불리는 요리 프로그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맹세코 그 중 단 한 개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으며 쿡방의 향연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이 먹는 걸, 만드는 걸 왜 보고 좋아하는 거지? 싶었다. 물론 캐나다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자취하기 전에는 말이다. 그 전에는 아침에는 일 나가는 어머니가 급하게 해놓으신 찌개나 반찬들을 돌려먹고 학교로 나갔고, 점심과 저녁에는 간단히 학식을 사 먹거나 친구들을 따라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었다. 학교 주변 음식점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고 ‘먹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내 소신 덕에 지금까지 ‘음식’ 앞에서는 편한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웬걸, 내가 있는 학교에는 학식도 없을뿐더러 외식이 싸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취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요리를 처음에는 살기 위해, 먹기 위해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내 22년 평생 굶주린 배를 잡고 ‘먹기 위해’ 요리한 적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냉장고에는 음식이 있었고, 없더라도 배달시켜 먹거나 나가서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런 나에게 갑작스럽게 해야 하는 요리는 짐이었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처음 한 달간은 다른 재료도 없이 단지 삶은 스파게티 면에 소스를 넣어서 먹었다. 그러다가 간단히 버섯을 넣거나 베이컨을 넣다가, 페이스북에 음식 만드는 페이지들을 팔로우하면서 이제는 밥 요리도, 면 요리도 영양가를 다 고려해서 음식을 만들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요리가 나에게 생존 수단이라기보다는 취미에 가까워졌는데 그것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 하나만 이야기를 하자면, 요리가 취미가 된 후, 나는 좀 더 나를 위해 산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정말 살기 위해 먹었다. 음식에 대한 선호도 별로 없었고 단순히 눈앞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고, 하지만 배고프면 일을 못 하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먹었다. 또, 이것은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학교를 나오면서 선택권 없는 음식들 앞에서 내가 가졌던 생활 습관이기도 하다. 무의식적으로 불평할 수 없으니까 맛없어도 먹었고, 안 먹으면 공부를 못하니까 먹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스스로 마트에 가서 재료를 고르고 요리를 하면서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이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시간을 쏟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웃겼다. 갑자기 안 하던 요리를 20년 만에 하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고 웃는 것과 같다. 어색함과 기특함. 두 가지의 마음이었다. 그 전에는 밥 고르고 먹는 데에 3분이 걸렸지만, 지금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일주일 전에도 생각해야 한다는 게 시간 낭비처럼 보이지만, 하지만 역설적이게 나는 그 낭비를 할 때마다 스스로 나를 위해 산다고 느낀다. 그 전에는 나 자신 너머의 ‘일’을 위해 먹었다면, 지금은 ‘나’를 위해 투자하고 노력한다고 느낀다. 또한, 나는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해도 핸드폰 요금, 밥값, 교통비에 써왔는데 이 돈들은 ‘나’를 위해라기보다는 나의 ‘삶’을 위해 써져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리를 시작하면서, 나를 위한 나만의 삶을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먹는 곳에 집중하니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나 자신의 행복, 개성이 먼저이게 되고, 그로써 나는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현수빈 (신방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