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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성대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불안과 고통을 건너는 언어들국어국문학과 정우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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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호] 승인 2017.06.06  17: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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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고양된 감정에 도취하여 속내를 드러내는 고백이나 푸념,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과장되게 말하는 것도 아니다. 관찰하고 사유하고 추적해서 발견해내는 것이며, 치열한 정신과 언어의 탐색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시의 형식은 행과 연을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미지, 비유, 반어, 상상력, 시적 언어의 배치, 리듬 등이 받쳐주어야 한다. 당선작 <돈 세이 댓 코리도어 이스 낫 마이 워드>가 말하듯, “언어가 가 본 적이 없는 섬”에 당도하려는 시도가 시 쓰기이다. 문법은 인간 상상력이나 사유의 최소한도이다. 시는 언어 밖을 사유하고 수행하기 때문에 비문법적인 언술을 감행한다. 언어 너머를 언어로 표현하는 절망적인 작업, 그 오만한 자유가 시이다.

최우수 당선작 <나는 바다모래 아파트에 살아>는 상상력과 표현력이 경쾌하고 환상적이며 아름답다. 염분이 많은 바닷모래를 섞어 아파트를 지으면 철근 콘크리트가 부식되고 압축 강도가 떨어진다. 그 아파트에는 부식되어 푸석푸석한 인생들이 산다. “거대한 가난”, “어긋나고” “부족하고” “균형 맞추지 못해” 기우뚱한, 불안한 인생들이 거주하는 바닷모래 아파트이다. 그런 곳에 심해의 파도소리와 바닷내음, 바람소리, 헤엄치는 물고기를 배치하는 환상적 상상력은 당돌하고 신선해서 역동적이다. 세상의 험난한 파도에 쓸리고 밀려온 가난하고 남루한 인생들이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안은 채 날아가고 물고기처럼 헤엄친다는 상상력은, 얼핏 오늘날 청춘의 위치와 응전을 환기한다.

우수작 <돈 세이 댓 코리도어 이스 낫 마이 워드>는 ‘나’와 ‘나의 언어’와 ‘시’에 대해 말한다. 이 시의 낯설고 난해한 제목은, 방이라는 밀폐된 자아에서 나와 “corridor”(복도, 통로)에 주체를 배치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 주체는 “친구가 연인이 동지가 죽음이 나를 만들어온 것”이란 언술처럼, 타자와의 접속이 모여 ‘나’로 구성된 것이다. “나의 시에 나의 언어가 없다”는 고백과 “복도의 닫힌 문들 사이에서 찾아낸 길이 나를 설명한다.”는 구절은 쉽게 수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많은 공부와 사유와 실험의 결과임을 짐작케 한다. 다만, 시의 언어와 구성이 좀 더 다채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작 당선작 <빨래에 대하여>는 시 쓰기의 공력이 느껴지는 잘 다듬어지고 안정된 작품이다. 바닷가 산동네의 옥상에서 펄럭이는 누추한 빨래를 통해 가난한 살림살이와 그리움, 나아가 희망까지 잘 교직해서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냈다. 시의 기승전결이 너무 매끄럽게 틀 지워져서 시적 문법으로 잘 찍어낸 그림 같다. 

가작 <refloat>는 세월호 세대가 쓴 세월호 인양에 대한 작품이라 주목된다. 이 시는,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인양의 순간을 안타까움과 허탈함, 분노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을 인양하지는 못했지만(“그곳에는 그것도 그들도 없다”), “그날만이 꿋꿋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세월의 바람에 풍화되고 마모되는 세월호의 기억을, 계속해서 “꿋꿋하게”, “refloat”하겠다는 이 시의 전언은 값진 것이다.

2017년 성대문학상 시 부문에 90명이 150편을 투고하여 풍성했고, 작품은 수준 높았다. 당선작들은 기성 시단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어느 봄날 기억의 폭설이 내렸어>, <라면 끓이기>, <내 어머니께>, <대문>, <엄마의 미소>, <조개껍질과 철교의 서사>, <숫자>, <날벌레>, <평범한 아침>, <종로3가>, <겨울봄>, <피곤과의 혼례>, <나이키 운동화>, <모래시계> 등도 아까웠다. 이밖에 언급하지 못한 많은 작품이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계속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정우택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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