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병준 편집장 (hbj0929@skkuw.com)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
지역이기주의 민낯
'자연상태' 벗어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 이루는 일


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이들 학교 다닐 수 있게 해달라”며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다. “특수학교는 혐오시설 아니다”며 큰절 올리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높았다. “쇼하지 마라” “쟤 내보내”라는 고성이 오갔다. “왜 굳이 여기에 특수학교를 지으려 하느냐” “장애인들이 왜 이렇게 많냐”는 소리도 들렸다. 지난 5일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 보도 영상은 슬프고 기막혔다.

님비(NIMBY)는 ‘Not In My Back Yard’의 약자다. ‘나의 뒤뜰에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장애인 시설, 쓰레기 소각장, 교도소 등의 처리 및 수용 시설이 자신의 지역에 설치되는 것에 반대하는 지역이기주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용어의 유래는 1987년 미국이다. 뉴욕 근교 아이슬립 지역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미국 정부는 아이슬립 지역에서 배출된 300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배에 싣고 미국 남부 6개 주부터 중남미 연안까지 약 6개월 동안 항해했지만 쓰레기를 처리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바다 위 갈 곳 잃은 배와 강서구 특수학교의 처지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강서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15년간 서울에서 개교한 특수학교는 1개다. 2002년 종로구 경운학교 설립 이후 지난 1일 강북구 효정학교 설립이 마지막이다.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다. 서울시 특수교육대상 학생 수는 지난 4월 기준 1만 2800여 명인 반면 서울시내 30개 총 특수학교 정원은 4300여 명이다. 나머지 8500여 명은 일반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다. ‘Not In My 구(區)’가 만연한 결과다.

다만 지역이기주의를 마냥 욕하고 부정하기는 민망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기심 자체란 너도 있고 나도 있다는 단순하고 자명한 이유 때문이다. 특수학교 설립에 따른 집값 하락의 국면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이기심이 어떻게 작동할지 어찌 알겠는가.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17세기 영국의 학자 홉스가 한 말이다. 그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인정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그러해서, ‘만인은 만인에 대해 투쟁’한다. 지역이기주의와 같은 경계 없는 이기심이 사뭇 당연하고도 정당해 보인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상태의 경우다. 이 또한 홉스의 견해다.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의 관념, 정의와 불의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 무질서로 보았다. 나아가 그는 “끊임없는 두려움과 폭력에 의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잔인하고 짧다” “좀 더 만족스런 삶…이러한 통찰은 비참한 전쟁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데 대한 것이다”며 무질서한 자연상태를 벗어나야 할 사태로 규정했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그는 인정했지만, 이에 투항하지는 않았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자연상태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벗어나는 일이다. 정의와 불의가 구분되지 않는 사태로부터, 이에 대한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달아나는 일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약육강식의 구도 속에서 강자가 되면 그만이라는 언설들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긍정하며 늑대를 자처하는 행위들은 자연상태에 주저앉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자연상태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나. 무릎 꿇은 장애 학생 부모를 향해 “쇼하지 마라”며 집단으로 고성을 내지르는 사태가 슬프고 기막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