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깜깜하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만 쓰던 스마트폰이 먹통이다. 소리는 들리는 데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 꼴이 마치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은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서, 헛웃음이 난다. 설상가상 문장마저, ‘죽었’다. 막막하다.

여름부터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아등바등 글을 썼다. 있는 개념, 없는 생각을 쥐어짜다 글감을 길어내 머리 위로 퍼 올렸다. 가뭄에 콩 나듯이 얻는 성과라는 것도 사실은 비켜 맞은 행운의 안타. 의도하고 노려 친 공은 죄다 땅볼. 그마저도 더 넓은 바다에서 거친 파도에 얻어맞고 허우적대다 보면, 그런 미미한 성과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순식간에 씻겨 내려가서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할 줄 아는 일이라곤 글 비스무리한 것들을 깨작깨작 쓰는 것밖에 없어서,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쓰지만 영 신통치가 않다. 여름의 끝, 허우적대는 문장들을 보노라면, 갑갑하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기 만족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허물어진다. 자만과 낙심 사이에서 비틀대는 것이 꼭 술에라도 취한 것만 같다.

차라리 나만 어려운 거면 다행일 텐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시험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긴장감을 기억한다. 잡 페어에서 구직을 위해 치열하게 질문을 쏟아냈던 표정들을 기억한다. 어디선가 나처럼 글을 쓰고 있을 이들은 그래도 열심히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데, 사회가 주는 답이라는 게 영 미지근하다. 졸업할 때쯤이 되면 막연히 길이 열릴 거라고 믿었던 1, 2학년 때의 막연히 낙관적인 나를 만난다면,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우린, 왜 이렇게 어려워야 하나.

그럼에도 다시, 글을 쓴다. 있는 것 없는 것을 알뜰살뜰 꾸며, 그렇게라도 나 자신을 내다 팔기 위한 글을 쓰는 와중에도 좋은 문장을 썼을 때 느꼈던 즐거움을 생각한다. 내 생각을, 내 말을 남한테 전하기 위해 부득불 애써 온 순간들을 상기한다. 조사를 고민하고 단어를 연달아 바꾸며 골몰했던 시간들을 되새긴다. 문장 하나에 희비가 갈렸던 날들, 그 죽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아직도 텅 빈 내 자신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거라고 자기 암시를 건다. 아무리 흔들려도 나 자신만큼은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저 웅크린 채, 잠들어 있을 뿐이라고. 때가 온다면,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튀어 오를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문장들에 심폐소생술을 한다.

다시 글쓰기가 시작된다. 학기 말 바쁜 와중이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 다시 자기소개서 페이지를 살핀다. 아무것도 안 한 것만 같은데도 다가온 ‘졸업’이란 말의 무게는 삶을 짓누르지만, 그래도 일단 쓰고 본다. 그저 쓴다. 열심히 쓴다. 악착같이, 치열하게 쓴다. 그렇게 세상과 치고받는다. 오기가 생긴다. 단어를, 문장을, 문단을, 페이지를, 그렇게 채워나간다. 죽은 줄 알았던 문장을, 아니 나 자신을 그렇게 다시 깨운다. 포기하지 않도록, 좌절하지 않도록.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며 휴대폰이 진동한다. 거짓말처럼 불이 들어왔다.


한석구(경제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