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상황 1.
두어 달 전쯤‘에너미 라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유일하게 표가 남아있었던 그 영화를 본 것이다. 극장 앞에선 커다란 홍보차에 ‘공공의 적’영상이 가득히 흐르고 있었는데 그 장면들은 모두 익숙한 것이었다.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에너미 라인이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보는 게 참 다행이다.’

상황 2.
영화 ‘집으로’가 관객몰이를 하고 있단다. 관객 100만을 넘어섰다는 광고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또 시작이군!”

내가 영화 ‘친구’를  
아직 보지 않은 이유
‘친구’는 800만이라지. 대한민국 국민 다섯 중 하나는 이 영화를 본 셈이다. 비디오로 본 사람까지 합하면, 나만 빼고 다 보지 않았을까 싶다. 난‘친구’란 영화에 기대를 하지 않아서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난 이미 ‘친구’를 잘 알고 있다. 그 영화에 나온다는 명 대사들은 모두 섭렵하고 있고, 볼만한 장면들은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다 보았다.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숱한 인터뷰를 통해 다 읽고 들어 알고있다.
왜 내가 굳이 다 아는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가? 그저 확인하러?

내가 영화 ‘집으로’를 보지 않을 것 같은 이유
‘집으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 영화이고, 눈물나는 감동이 있다. 난 이 영화의 제작이야기를 듣고는 반드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아마 난 이 영화를 보지 않게 될 것 같다.

일요일 정오면 TV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너무나 상세하게 잠재적 관객들을 위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들은 나는 더 이상 그 영화에 대한 환상을 가질 수 없다. 그 친절한 해석에 세뇌되어, 영화는 그 틀에 맞추어져 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나만의 세계를 확인하고,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놀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또 다른 세계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데. 수많은 상품의 광고들은 ‘이래도 안 살래?’라며 상품을 속속들이 눈앞에 까발린다. 성능에서부터 디자인까지, 그것이 얼마나 편리하며 또한 우리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인지 강조하고 열변하며 눈 앞에 들이민다.

멍청하게도 영화나 연극마저 이런 광고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볼만한 내용은 미리 다 보여주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장면마다 숨겨진 감독의 의도와 곳곳에 깔린 암시에 대해 설명해준다. 단지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 누구나 이 유혹에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광고는 삶에 있어 문화적 향유를 강조하며 소유를 강요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강요가 통하지 않는다.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것처럼 설쳐대더니, 정작 영화관에 가고 싶은 마음을 싹 사라지게 하는 수많은 매체들.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기분을 갖고 싶다. 영화를 봄은 확인이 아니라, 발견이다.

이영훈(철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