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본교 인사캠 후문에서 마을버스로 네 정거장이면 도착하는 ‘전통과 문화의 거리’ 인사동. 이곳에서 한글로 쓰인 ‘스타벅스’ 간판을 보는 것이 더 이상은 낯설지 않다. 여기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바로 이웃해 자리잡고 있는 탑골 공원과 인사동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세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인사동을 찾는다. 대학로나 명동을 찾아갈 때와는 다른 기대를 갖고.

38%. 지난 해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인사동의 전체 상가 중 전통문화 관련업소 비율이다.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수치다. 특히 화랑과 공예품점 등의 경우 98년에는 총 4백84개에서 지난해에는 3백72개로 눈에 띄는 감소를 보였다. 반면 같은 해를 비교할 때 일반음식점은 83개에서 4백3개로 급증했다. △단란주점 △노래방 △당구장 △오락실 등등의 유흥업소들도 무려 46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1천2백77개에 달하는 나머지 62%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사동의 이미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업소인 것이다. 연령별로 인사동의 찾는 비율 역시 변하고 있다. 과거 다양한 세대가 비슷한 분포로 인사동을 방문했던 것과는 달리, 갈수록 젊은 층은 증가하는 반면 노년층은 감소하고 있다. 인사동 상점들의 성격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별 변화. 바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는 인사동의 현 주소이다.

인사동의 역사
현재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이른다. 인사동이라는 공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회장:공창규, 이하:보존회) 김병욱 사무국장은 “인사동은 조선시대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흔적이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있다”며 “이 지역을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하나의 도시를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 민족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조광조와 박영효의 생가, 운현궁이 위치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말 안동 김씨 세도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도화서와 최초의 신식극장인 장안사,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세워졌던 곳도 인사동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을 했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었던 종로경찰서가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이후 명동과 충무로 지역의 임대료 상승으로 전국의 고물상을 통해 이 일대에 집중돼 있던 골동품 및 고미술상이 비교적 임대료가 낮은 인사동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형성된 인사동의 분위기를 예술가와 미술 애호가들이 선호하면서 이곳은 자연스럽게 전통과 문화의 거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예술의 거리, 인사동
현재 인사동에서는 거의 매일 새로운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수십 개에 달하는 화랑들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적 여건 때문에 작가 중심의 개인전 위주가 되고 있어 문제지만 이곳의 화랑들은 여전히 인사동을 예술 공간으로 인식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적극 살려 올해부터는 매년 실시해 왔던 인사동 전통문화축제의 형식도 바뀔 예정이다. 기존의 공연 중심에서 탈피, △화가와 시민들의 만남의 장 △벼룩시장 △고미술 특별 전시회 △수공예품 전시회 △문화와 휴식의 장으로 변모한 업소 지정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 축제를 계획하는 보존회의 김병욱 사무국장은 “인사동이 화랑의 중심지라는 이미지와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해 매년 행하는 이 축제가 인사동의 정체성 찾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사동 발전계획
지난 해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종로구청과 서울시는 함께 인사동 문화지구 지속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종로구청은 인사동 문화지구에 대해 △비 문화업종 진입 규제 △주차장과 자전거 도로 확보 △노점상 정비 △거리 청결 등의 계획을 올해부터 2007년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비 문화업종 진입 규제는 그동안 인사동의 이미지를 훼손한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각종 상점들의 입점 금지에 관한 것으로 인사동문화지구와 인사동문화지구주가로변 지역으로 나누어 시행한다. 하지만 이미 들어와 있는 상점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불가능하다는 게 종로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이들 상점의 영업 지속 여부는 소비자의 행동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밖의 계획은 사람들이 직접 걸으면서 전통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관광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서울시와 구청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2004년까지 문화와 관광사업의 조화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문화관광벨트 조성에는 청계천 복원구간 등과 함께 인사동 및 주변 지역이 포함돼 있다. 경복궁과 북촌, 인사동 일대를 잇도록 형성된 이곳의 발전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고영만(문정)교수는 “주변의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곳과 함께 발전시키면 지역 개발효과는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
인사동 거리의 급격한 변화는 처음 인사동이 만들어 졌던 때처럼, 모든 이들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특히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당시 완전히 퇴화된 거리였던 인사동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면서 이곳은 소비적인 상업 공간의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이 과정에서 모든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인사동은 사라지고 돈이 되는 관광지만 남게 되었다. 인사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규제를 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생존권이 달린 상인들을 문화의 보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설득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인사동이 세대간 소통의 공간이라는 과거의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곳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문화 의식이 절실하다. “더 이상 인사동은 그곳 주민들만의 생존 공간이 아니다. 서울시, 그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인사동 살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곳을 찾는 소비자를 향해 외치고 있다.

김주연 기자 yeuni02@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