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우리 사회를 포함해 오늘날의 세상이 극심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으며, 기술(technology)의 비약적 발전이 그 변동의 핵심이라는 데 이의를 제시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술은 과연 우리의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 새로운 기회인가 아니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유혹인가? 저자인 포스트먼(Neil Postman)은 “다정한 친구(기회)의 얼굴로 다가오지만 결국 위험한 적(유혹)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그는 오늘날의 기술 발전이 인간성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까지 파괴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 없이 인간은 단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다. 인간은 그렇게 산 적이 한번도 없었다. 기술을 사용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동물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흔히 기술은 ‘인간이 외부의 대상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서 고안해 사용하는 중립적 도구’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에 기술의 모든 위험성이 숨어 있다. 일찍이 하이덱거는 “기술을 이처럼 중립적 도구로 이해할 때 인간은 오히려 기술에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지는 최악의 경우를 맞게 된다”고 경고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수단으로서의 기술이 인간과 세계의 관계 방식의 변형을 통해서 인간 자신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세계의 이미지를 다시 변형시켜 왔다는 사실에 있다. 이른바 ‘기술이 낳는 소외 현상’(이 책에서는 ‘기술의 편향성’) 때문이다. 기술은 인간에게 종속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기술에 인간이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이 도리어 그것에 얽매이고 구속된다. 심지어 “인간이 기술 진화의 생식기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도 있다.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 자신이 언제나 기술에 의해 변하고, 또한 반대로 기술을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발견해 왔기 때문이다.
포스트먼은 이 같은 철학적 기반 위에서 사회변동의 원인을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그로 인한 인간 의식의 변화에서 찾는다. 이러한 관점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하이덱거, 해롤드 이니스, 루이스 멈포드, 마샬 맥루언 등의 선구적 사상가들이 그와 유사한 통찰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트먼은 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변동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관관계의 제시로 그치지 않는다. 그의 독창성은 규범적 관점에서 기술의 소외현상을 바라본다는 데 있다. 그는 기술이 인간의 삶에 출현하여 문화를 잠식해 가다가 마침내 모든 문화적 가치들을 독점하게 되는 과정을 유익하고도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묘사한다.
기술과 문화간의 관계에 대한 거시적 논의이다 보니 비약과 자의성이 여러 군데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어려운 얘기를 풍부한 예증들로 시원하게 풀어 가는 그의 문체는 탁월하다. 딱딱하기 만한 기술문명 비판서들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즐거움을 기대해도 좋다.

원만희 (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