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 김해빈 기자
  • 승인 2018.03.13 00:36
  • 호수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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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조각의 거장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회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41점의 조각, 11점의 회화, 26점의 드로잉과 판화 등 무려 116점의 작품이 건너온 이번 전시회는 총 2조 1000억 원에 달하는 작품 평가액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손길을 느끼기 위해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展」을 찾았다.

자코메티의 초기 작품
입구부터 동선을 따라 들어가면「자화상」,「오틸리아」,「브루노」등 자코메티의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코메티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의 고통을 조각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조각을 시작하기 전에 *신인상주의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색채를 활용한 그림을 그렸다. 어두운 분위기의 후기 대표작들과 다르게 동일 인물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색감이 다양하다. 자코메티의 초기 작품들은 중학생 시절에 그린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이미 회화에 큰 재능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각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 조각이었기에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델이 된 지인들
초기 작품들이 전시된 곳을 통과하면 자코메티 조각의 메인 모델이 됐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두상 조각들이 놓여있다. △디에고 △아네트 △야나이하라 △캐롤린 △로타르 순이다. 디에고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동생으로, 충실한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형의 작품에 기술적인 도움을 주는 헌신적인 조수이기도 했다. 그는 조각가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음에도 평생 형의 옆에서 모든 석고 조각을 청동상으로 본떠내는 작업을 했다. 아네트 암은 자코메티의 아내다. 그 또한 숱한 작품의 모델이 됐으며, 예술에만 열중하느라 건강과 경제적 문제에는 관심이 없던 남편을 묵묵히 도왔다. 야나이하라는 자코메티가 가장 좋아했던 모델이다. 일본에서 교수로 일하던 야나이하라는 자코메티를 위해 몇 시간이고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작품을 만들 때 모델이 움직이면 소리치고 짜증을 낼 정도로 예민했던 자코메티에게 야나이하라는 최고의 모델이었다. 마지막 뮤즈로 알려진 캐롤린은 자코메티와 38살이 차이 나는 어린 술집 여성이었다. 그는 자코메티가 죽기 2년 전 건강 악화로 황폐화돼있던 자코메티에게 사랑과 예술적 영감을 불붙여준다. 숨이 멎기 직전 병상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찾았던 것도 아내 아네트나 동생 디에고가 아닌 캐롤린이었다. 로타르는 자코메티의 마지막 모델이다. 술과 여자에 찌들어 사는 실패한 사진가 로타르의 모습에서 자코메티는 역설적으로 영웅의 모습을 포착했다고 한다. 그의 유작인「로타르상3」은 석고 원본과 청동 본이 나란히 마주한 채로 별도의 방에 전시돼있다. 유리 벽 없이 전시된 대부분의 조각과는 달리「로타르상3」은 유리관 안에 들어있어 더욱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전시해설가를 따라 둘 중에 무엇이 석고 원본인지 맞춰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업실 
흉상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전시회장 한켠에 마련된 조그마한 방을 발견할 수 있다. 간이 외벽으로 재현된 7평 규모의 공간은 자코메티가 평생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킨 곳이다. 예술계에서 젊었을 때부터 인정받아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그는 계속 비좁은 작업실에서 동생 디에고, 아내 아네트와 함께 생활했다. 살아있는 것은 화려하고 ‘살찐’ 것이 아니라 외로운 것이라 생각했던 탓이다. 시인 조르주 랭부르가 자코메티의 작업실을 “끈질기고 장엄한 집착을 보여주는 석고상들의 감동적인 묘지”라고 묘사했던 것처럼 당시 작업실에는 수많은 조각과 석고 부스러기들이 뒤섞여있었다. 그런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작업실 사진과, 실제와 같은 높이에 있는 창문, 작은 책상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움직이는 자코메티
유독 이 전시회에는 조각과 그림뿐만 아니라 곳곳에 동영상이 많다. 자코메티의 인터뷰 영상, 장례식 영상 그리고 스위스 출판업자 샤이데거가 찍은 다큐멘터리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샤이데거의 다큐멘터리에는 자코메티가 모델 자크 뒤팽을 캔버스에 그리는 순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담겨있다. 그가 붓을 어떻게 쥐는지, 얼마 동안 생각하고 캔버스 위에 붓을 올리는지, 얼마나 힘을 주고 빼는지까지 마치 그의 어깨너머에서 훔쳐보는 것처럼 관찰할 수 있다.   
 
침묵과 묵상, 기도의 방 
피날레는 그의 대표작인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의 석고 원본이 전시돼있는 방으로 마무리된다. 두 겹의 암막 커튼으로 막혀있는 곳을 지나면 외부 빛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걸어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방 안의 옅은 조명들에 의해서만 비치는 이 조각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각임에도 그 흔한 펜스나 안전띠도 없다. 주위에 널려있는 방석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조각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어디서부터 왔으며 또 어디로 걸어가고 있을까. 이번 주말 예술의 전당에서 당신도 직접 그 시선을 마주하기 바란다. 

신인상주의=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와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었던 인상주의의 기법을 과학적으로 더욱 발전시키고자 했던 미술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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