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탐적론, 잊혀진 권리를 지키는 학문이죠”
“법의탐적론, 잊혀진 권리를 지키는 학문이죠”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8.04.02 22:31
  • 호수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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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법의학자 문국진 교수는 세계 최초로 ‘법의탐적론’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부검을 하다 유가족에게 도끼에 맞을 뻔하는 등 몇 번의 고비에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결과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법의학에 가슴이 뛴다는 그를 만나 ‘법의탐적론’에 대해 들어봤다.

ⓒ이야기가 있는 집 블로그 제공
ⓒ이야기가 있는 집 블로그 제공

법의탐적론은 어떤 학문인가.
전 세계적으로 법의탐적론이라는 학문이 발표된 적은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검시를 통해 죽음의 유형을 구분하는 것 등이 법의학의 역할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은 과학적으로 명백한 증거물이 있어 해결이 가능하지만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면 직접적 증거가 없어 수사가 힘든데, 최근 이러한 사건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때 법의학은 과학적 증거가 없어 제대로 된 조사가 불가능하지만 법의탐적론은 가능하다. 법의탐적론의 ‘탐(探)’과 ‘적(跡)’은 흔적을 찾아낸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현재 연구 중인 법의탐적론은 예술작품과 관련 문헌들을 법의학적 지식에서 착안, 연구해 의문을 남긴 예술가들의 사인과 예술계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역할을 한다.

법의탐적론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차이콥스키의 사인이 세 번 바뀌어 발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진실을 알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신빙성 있는 자료들이 나오지 않아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 차이콥스키가 살던 당시 러시아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이것이 발각되자 명예 재판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됐는데, 세계적 음악가라는 명성을 고려해 러시아 정부에서 콜레라로 인한 사망으로 발표한 것이다. 모스크바 병원에 연락해 그의 병상일지를 보니 콜레라의 증상인 쌀뜨물 같은 변을 봤다는 기록이 있어 처음에는 콜레라로 인한 사망이라 단정했다. 하지만 우연히 러시아 신문의 내용 중 당시 고관 대사들이 법적 전염병인 콜레라로 죽은 그의 이마와 손등에 키스를 했다는 기록을 보게 됐다. 이에 의심을 품고 더 조사해보니 콜레라의 증상을 유발하는 약물을 차이콥스키가 섭취하게 한 뒤 사약을 내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현재 증거가 없어도 과거의 문서나 증거물이 남아있으면 사인이나 권리 침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음에 자신감을 얻게 됐고, 법의탐적론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게 됐다.

법의학에서 나아가, 법의탐적론만의 가치가 있다면.
법의학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법의탐적론 연구가 수월해진다. 또한 예술가의 가치관, 작품세계, 성장 배경 등을 몸에 익혀야만 법의학적 지식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법의탐적론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미제로 남았던 사건을 해결하는 법의탐적론은 권리 존중의 정신을 과거의 사람들에게도 넓히는 학문이다. 권리 존중은 선진화된 민주 사회의 핵심인데, 이러한 사회일수록 문화의 중심인 예술이 강조된다. 따라서 권리를 존중하는 학문인 법의학을 통해 예술계의 권리를 지키는 법의탐적론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다면.
18세기 스페인의 화가 고야의 그림 속 모델의 신원을 확인하는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똑같은 모델의 발가벗은 모습과 옷을 입은 모습을 대상으로 한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라는 두 작품을 그렸는데, 모델의 신원이 200년간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그림의 모델인 ‘마하’로 처음 지목된 여인은 고야와 연인 관계로 알려져 있던 명문 귀족 가문의 ‘알바공작부인’이었다. 고야가 부인의 별장에서 부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때 누드화를 그렸을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고야의 사망 후 그의 집에서 나온 알바부인의 초상화 속 얼굴과 마하의 얼굴이 닮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후 마누엘 고도이 재상의 애인이었던 페피타 투토가 마하로 지목됐다. ‘벌거벗은 마하’가 고도이의 누드 컬렉션에 포함돼 비밀 전시실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 후세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무덤까지 파헤쳐 신원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난감한 문제였지만, 현재의 발전된 법의학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연구를 시작했다. 얼굴의 모양, 지문, 홍채 등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추출해 분석하는 생체정보 기술을 통해 얼굴의 동일성 여부를 가려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벌거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의 얼굴과 알바부인 초상화, 그리고 페피타 투도의 초상화를 3차원 형상으로 복원해 얼굴 각도를 동일하게 한 후, 눈과 얼굴 너비 및 눈과 코의 상대 비율과 같은 얼굴 계측지수를 산출해 유사도를 확인했다. 그 결과 투도가 알바 부인보다 마하와 유사한 지수를 더 많이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더 정밀한 연구를 위해 얼굴 이미지를 겹쳐 중첩 정도를 확인하는 중첩비교검사를 실시했다. 머리의 끝 점과 턱의 끝 점이 겹쳐지도록 비율을 유지해 중첩했을 때 마하와 투도는 눈썹, 눈, 코, 입의 위치와 크기가 자연스럽게 대칭된 반면 알바 부인은 위치와 크기가 달라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확인해 결론을 내렸다. 

현재까지 법의탐적론의 연구 진행 수준은.
현재까지 예술가들의 죽음과 미제 사건들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연구해왔는데 이제 학계에 발표할 만큼의 연구는 된 것 같다. 약 20년간 연구해왔지만 오는 6월에 열릴 국제법의학회에서 법의탐적론에 대해 처음으로 발표하게 된다. 하나의 학문을 개척한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동조가 필요한데 점차 법의탐적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문학잡지 ‘문학사상’으로부터 문학작품을 법의탐적론으로 풀어내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 잡지에 싣게 됐다. 문학계에서도 혁신적이라는 평을 받아 문학작품으로 그 영역을 넓히게 됐다. 국제 학회에서 발표가 된 이후에는 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프란시스 드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
프란시스 드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
ⓒ이야기가 있는 집 블로그 제공
프란시스 드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이야기가 있는 집 블로그 제공
프란시스 드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이야기가 있는 집 블로그 제공

 

왼쪽은 마하와 알바부인의 중첩비교검사 결과, 오른쪽은 마하와 투도의 결과
왼쪽은 마하와 알바부인의 중첩비교검사 결과, 오른쪽은 마하와 투도의 결과
ⓒ이야기가 있는 집 블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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