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지난 1일 장기하와 얼굴들은 정규앨범 기자 간담회를 통해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싸구려 커피’부터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신선하기 그지없던 노래들을 잇달아 히트시킨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밝힌 그들의 해체 이유. ‘정점일 때 해산하는 게 가장 좋은 타이밍’이 그것이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실천하면서 그들은 뭇사람의 아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퇴장마저 그들의 등장처럼 비범했다. 

최정상 인디밴드의 자리를 스스로 반납한 그들은 ‘오래오래 해 먹어요’나 ‘존버(x나게 버티기의 약자)’같은 소시민적 태도를 초월한 듯하다. 비트코인으로 인생 한 방을 노리는 청년들, '워라밸'과는 거리가 먼 직장임에도 죽어라 다녀야 하는 서민들, 퇴직 후 국민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예상 수령액에 노심초사하는 노년층은 그들이 사는 세상을 꿈꿀지 모른다. 미디어는 그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조명하고 ‘그래도 저 정도면 먹고 살겠지’라는 사고의 틀을 강화한다. 그들의 현실은 소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시민은 소시민적 방식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자 간담회가 있기 불과 몇 시간 전의 사건을 살펴보자. 미네소타 소속인 NBA 선수 데릭 로즈가 강팀인 유타를 상대로 커리어하이 득점을 기록하며 전 세계 농구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만 22세의 나이로 최연소 MVP를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랐으나 커리어 내내 이어진 부상은 그를 후보 선수로 전락시켰다. 불운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할로윈을 맞아 부활의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농구칼럼니스트는 이날의 헤드라인으로 ‘데릭 로즈, 동토에서 피어난 장미’를 뽑았다.

NBA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로즈라는 선수의 능력과 정신력을 소시민의 그것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분명 모순적이나 특기할 지점이 있다. 한 현지 해설의 말처럼 “Too Big, Too Strong, Too Fast, Too Good”으로 설명되는 그의 플레이는 십자인대 파열로 파괴력을 잃었고 베테랑 최저연봉으로 그 가치도 인정받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있어서 이는 실망과 좌절을 안기기에 충분할 것이며 그에게는 소시민이 쉽게 상상하기 힘든 나락으로의 추락이었을 테다. 모두가 끝났다고 말했을 때 그는 ‘프랜차이즈, 팀, 팬 그리고 모두를 위해 주어진 모든 것에 죽도록 연습했다.’ 결국 그를 향해 전현직 NBA 스타들은 존경을 표한다.

어쩌면 소시민이 일상에서 오래오래 버텨보려는 정신에도 무시할 수 없는 강직함이 담겨있지 않는가. 꼭 이러한 극기의 발로가 탈(脫)소시민화를 이끌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는 분명 값지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주말 밤 신문사 사무실처럼 소시민은 더 밝게 빛날 언젠가를 위해 늘 자신을 불사른다. 운이 좋다면 정말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신문사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아침 해를 볼 때면 새삼스레 소시민의 일상이 우직함을 깨닫는다. 그것조차 소시민적이겠지만 아직도 우리는 ‘존버’ 중이다.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