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학, 세상과 함께 진화하다
소비자학, 세상과 함께 진화하다
  • 김원구
  • 승인 2018.11.26 16:39
  • 호수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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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학, 경제 발전 부작용 해결하려 탄생해
빅데이터 통한 ‘커스터마이징’ 등 다양한 적용 이뤄져


연말이 되면 쏟아지는 ‘소비’ 트렌드 서적과 통계청이 매달 공시하는 ‘소비자’물가지수.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서도 인간 중심 디자인이 기본이다. 지난 16일 미국 시애틀 아마존(Amazon) 본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는 “만약 아마존이 소비자에 집중하지 않고 아마존에 집중한다면, 이는 아마존의 종말이 될 것”이며 “그것을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늘날 기업들도 소비자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가히 소비자는 오늘날의 화두라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모호한 표현인 ‘소비자에 대한 학문인 소비자학’. 소비자학은 과연 무엇일까.

소비자학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모든 사람은 소비자다. 누구도 소비 행위 없이 원활하게 살 수 없다. 소비자학은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소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엇인지 △경제 △기술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방면에서 분석한다. 소비자학은 실제 적용에 초점을 맞추는 실천 학문이기에 학문 간 융합 연구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때 소비자 전문가가 소비자 니즈를 포착해 상품 아이디어를 개발하면,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이를 구현한다. 우리 학교 황혜선(소비자) 교수는 “소비자가 사회·경제적 주체로서 역할을 하는 공공·보건·정치·행정 등의 주제도 소비자학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학은 다른 학문과 궁극적 목적은 다르지만, 마케팅이나 재무관리 등의 분야가 겹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영학 관점으로 상품을 개발한다면 기업 이윤을 위해 개발할 테지만, 소비자학 관점으로는 소비자 복지 증진에 입각한다. 황 교수는 “경영학적 시각과는 궁극적 목적에 차이가 있지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는 안 된다”며 “완전히 충족되지 못한 소비자 욕구를 소비자학이 충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 탄생하다
소비자학과를 비롯해 △소비자가족학과 △소비자경제학과 △소비자주거학과 등의 이름을 가진 학과들은 모두 소비자학을 가르친다. 왜 이런 다양한 이름을 갖는 걸까? 이는 소비자학의 모(母) 학문이 ‘가정학’이라는 것과 관련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여러 학문이 정립되고 발전하던 20세기 무렵, 가정생활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다. 온도나 습도를 측정해 삶에 적합한 정도를 과학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가정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정에도 과학을 적용하려 한 미국의 화학자 엘런 리처즈(Ellen Richards)는 가정학을 체계화했고, 1899년 개최된 ‘레이크 플래시드 회의’에서 가정학의 정식 명칭을 ‘Home Economics’로 명명했다. 여기서 ‘Home’은 주거지 및 사회 적응과 인격 함양의 공간을, ‘Economics’는 이런 가정의 △금전 △시간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관리함을 나타낸다.

이후, 가정은 사회와 경제의 기본 단위로 인식됐고, 이와 함께 가정학은 지속해서 확대되고 발전하며 하위 학문을 낳았다. 오늘날 가정학에서 파생된 여러 학문은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목표는 같다. 황 교수는 “가정학 안에는 소비자학, 식품영양학, 의류학 등 의식주를 담당하는 학문이 포함된다. 가정생활의 복지 증진이 우선 목표이고, 가정의 기능이 외주화됨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과됐다”고 말했다.

소비자학은 ‘소비자 문제’로부터 탄생했다. 전후 미국은 경제가 부흥하며 대량생산 시스템이 활성화됐다. 한편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소비자를 보호해줄 법과 정책의 학문적 근거가 없었다. 우리 학교 김기옥(소비자) 교수는 “그 당시에 ‘소비자’라는 개념이 대두됐고, 소비자가 삶과 경제의 주체라는 점에서 가정학이 소비자학을 다루게 됐다”고 말했다. 경제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학’이 탄생한 것이다.

소비자학의 발달
소비자학의 목표는 ‘소비자의 복지 증진’이다. 황 교수는 “알뜰한 소비를 통한 편익 수준을 논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통해 인간으로서 어떤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추구하는 바를 성취하도록 사회 여건이 마련돼 있는가’를 논의한다”고 말했다. 이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소비자학은 전통적으로 △가계 재무설계 △소비자 구매력 향상 △소비자 보호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또한 소비생활의 질적 변화와 더불어 △상품 및 서비스 개발 △소비자 니즈·트렌드 분석 △시장분석 영역의 중요도와 활용도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황 교수의 말을 빌려, 소비자학의 모든 분야는 “어느 하나 경중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소비자학이 태동한 배경인 ‘소비자 운동’이다. 연세대 사학과 설혜심 교수는 소비의 역사에서 소비자학 발원지인 미국을 분석했다. 대량생산·소비가 이뤄지던 1920년대 미국은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가 만연했다. 계획된 진부화란, 제품의 수명을 짧게 만들어 소비자의 구매 주기를 단축하는 것이다. 이는 설계상으로 이뤄질 수도 있고, 광고 등을 통해 인식적으로도 행해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계획된 진부화’는 판매량이 곧 이윤인 대량생산 체계에 알맞았다. 이러한 맥락 속에, 현재에도 영향력 있는 미국의 월간지 <컨슈머 리포트>가 등장했다. 미국 소비자협회가 발간하는 <컨슈머 리포트>는 매달 특정 품목을 선정해 기업별로 기능 및 가격 등을 비교·분석한다. 또한 소비자 운동에 대해 김 교수는 “소비자 문제에 관심 가진 변호사들이 소비자 보호 운동을 함께 했다”고 말했다. 제너럴 모터스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한 미국의 변호사 랠프 네이더가 대표적이다. 그의 고발은 미국에 ‘자동차교통안전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과거 소비자들은 월간지나 지식인 등 특정 대상이 생산한 정보를 습득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한편, 기술 환경 변화는 정보 활용 양상을 바꿨고 소비자 운동에도 영향을 줬다. 황 교수는 “이전에는 정보를 읽기만 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이제 읽기는 물론이고 정보를 △수집 △가공 △공유해 소비자 사이에 빠르게 퍼뜨린다”고 말했다. 이런 정보 공유는 불매운동과 같은 소비자 운동으로 이어진다. 구체적 사례를 보자면, 지난해 12월 미국의 한 커뮤니티로부터 애플(Apple)이 iOS 업데이트를 통해 신형 아이폰 교체를 유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애플은 ‘계획된 진부화’를 시인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라돈 침대 파문 또한 ‘맘카페’의 한 소비자가 침대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을 검출하며 불거진 사건이다. 당연히 해당 침대는 전량 리콜 당했다. 두 사건 모두 소비자들이 직접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오늘날의 소비자학
오늘날 소비자학이 갖는 의의는 사회 변화와 관계가 깊다. 최근에는 소비의 의미가 개인의 욕구 충족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영역까지 확장됐다. 과거에는 주로 즐거움 등 쾌락을 위해 소비했다면, 최근에는 이와 함께 공동체를 고려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윤리적 소비나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그 예다. 김 교수는 “인류 문명의 대전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생산 주체를 기업으로만 봐서는 안 되며, 소비자가 생산에 동참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로슈머나 *모디슈머가 활발한 만큼 소비자 지향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소비자학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소비 트렌드 연구의 첫 포문을 연 김 교수는 ‘왜 생산 결과만 다뤄야 하는가’, ‘생산 이전에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소비자학에 트렌드를 접목했다. 그는 “소비자학이 왜 문제가 발생한 후 해결하는 것만 담당하는지에 의문을 품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도 “애초에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산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만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기존 생산 방식의 문제점을 동감했다. 이어 “최근 상품 및 서비스 개발에서 ‘인간 중심’이 중요한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학에서도 빅데이터는 화두다. 대표적인 활용은 *큐레이션을 통한 커스터마이징이다. 특정 온라인몰에서 자주 구매하면 데이터가 쌓이는데, 이를 통해 쇼핑몰은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소비자가 원할 만한 상품을 추천해주거나 할인 정보를 알려준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게시물이 SNS에 자주 보이는 것도 커스터마이징이다. 이렇게만 보면 소비자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된 것 같지만, 아직 진행 단계다. 황 교수는 “온라인 버즈(buzz)처럼 아직 분석되지 못한 소비자 데이터가 많다”며 앞으로 소비자학의 역할을 일렀다. 소비자학의 연구 주제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모두 소비자의 주권 향상으로 귀결된다. 황 교수는 “소비자학의 연구가 대부분 실천적이고, 오늘날에는 소비자 욕구를 달성하는 방법도 다양하므로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변화가 맞물려지고 있는 주제는 늘 새롭게 발전되며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로슈머=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 ‘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
*모디슈머=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체험적 소비자. ‘modify’와 ‘consumer’의 합성어.
*큐레이션=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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