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은 노화도 질병도 없다
‘포스트휴먼’은 노화도 질병도 없다
  • 우연수
  • 승인 2018.12.03 16:23
  • 호수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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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로 인간 강화하는 트랜스휴머니즘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 필요해


트랜스휴머니즘의 인간중심주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남기는 거야.”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 나온 대사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미래, 주인공 ‘철이’와 ‘메텔’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기계인간이 되고자 은하철도 999호에 탑승한다. 두 주인공은 기차가 정차하는 다양한 별에서 온갖 기계인간을 만난다. 기계화된 몸을 얻기 위해 승차권을 훔치는 가난한 사람들, 영원한 삶을 얻게 된 것을 후회하는 기계인간들.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이들의 긴 여정은 인간의 본질적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인간은 왜 영원한 삶을 열망하는가.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적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생명 연장이나 인간의 기계화 등 최첨단 과학기술로 인류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지금의 인간보다 훨씬 진보된 초인류를 포스트휴먼이라 부른다.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기계인간들도 포스트휴먼이다.

20세기 후반 옥스퍼드대학교 닉 보스트롬 교수를 필두로 트랜스휴머니즘이 본격화됐다.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을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성적·육체적·심리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확대함으로써 인간 조건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의 가능성과 그 바람직함을 긍정하는 지적·문화적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이 계승하는 계몽주의 휴머니즘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유래해 인간을 주체로 보는 인간 중심적인 사상이다. 이에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로 신체적 결함을 제거함으로써 다른 것보다 가치 있는 인간을 개선하고 우선시한다. 한편 트랜스휴머니즘과 자주 혼동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기존 휴머니즘을 해체하고자 등장했다. 이들은 인간 주체성에 관해 입장을 달리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과학기술에 대해 현상학·실존철학이 제기한 비판점들을 이어나간다. 반면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를 계승해 여기에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학교 이종관(철학) 교수는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을 같은 이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트랜스휴머니즘이 자주 쓰는 용어인 ‘포스트휴먼’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트랜스휴머니즘에서 ‘포스트휴먼’은 현재 인간을 능가하는 ‘인간 이후의 존재자(post-human)’를 가리킨다. 이와 달리 ‘포스트휴머니즘’은 근대의 휴머니즘을 극복한다는 의미에서 ‘post-humanism'이라고 이름 붙었다.

인간 향상의 정당화
트랜스휴머니즘이 강조하는 인간 향상은 건강수명의 연장이나 노화의 제거와 같이 과학기술로 지적·정서적·신체적 능력의 개선·강화를 꾀하는 것이다. 여기서 건강수명은 “노화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하고 건강하며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과학기술로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규범적 가치와의 충돌을 우려해 향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인간 존엄성의 위협을 근거로, 마이클 센델은 인간적 삶의 가치 훼손을 근거로 반대 입장을 취했다. 몇몇 생명보수주의자는 과학기술이 향상이 아니라 치료에만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료는 정상적인 기능에서 벗어난 것이나 질병을 처치하는 것이지만, 향상은 정상적인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치료와 향상을 구분하는 가정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우선 현대의학에 질병 치료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행하는 시술이 많다는 것이다. 예방의학이나 성형수술 등이 그렇다. 향상을 위한 개입은 의학 범주 밖에서도 이뤄지는데, 카페인을 통해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해당한다. 신체의 정상적인 상태를 정의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장애를 결함이나 비정상이 아닌 하나의 차이로 보자는 장애학은 정상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대표적인 담론이다.

윤리학자 존 해리스가 강화한 진화에서 “우리가 생명을 구할 때 그것은 죽음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듯 치료와 향상의 구분은 특히 노화나 죽음을 늦추는 데 있어서 불분명하다. 인간 기능은 성장하면서 증대하고 다시 노화를 따라 쇠퇴한다. 치료가 인간의 정상 기능을 유지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한다면, 80대인 사람에게 20대의 능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도 치료가 될 수 있다. 결국에 그 둘을 구분하기 힘들다면 노화도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할 대상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강신익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기계적 환원의 시선으로 인간의 변화를 바라본다”고 보충했다. 그러면서 “변화를 기계가 아닌 생명의 관점에서 볼 때 노화와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비판적 시각을 제시했다.

급진적 생명 연장론
트랜스휴머니즘의 급진적 생명 연장론은 이름 그대로 인간의 생명을 급진적으로 연장할 것을 주장한다. 급진적 생명 연장론에 따르면 인간의 기대수명(life expectancy)과 수명(life span)은 구분되는 개념이다. 전자가 평균치라면 후자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수명의 최대치다. 영양이나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은 증가했지만, 최대로 살 수 있는 수명은 역사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유전자 기술 같은 과학기술로 신체를 향상시켜 수명 자체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트랜스휴머니즘은 의식적 차원에서의 불멸성을 강조한다. 생명공학적 방식으로 노화를 없애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두뇌의 정보를 옮겨 개인의 자아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기술적 불멸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트랜스휴머니즘은 신체와 마음이 나눠진다는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을 되풀이한다. 즉 정신은 뇌에 저장되는 정보 패턴에 불과하며 이를 물리적 육체에서 분리해 다른 물리적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즘 시대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트랜스휴머니스트당’이 출마했다. 이들은 관처럼 생긴 ‘불멸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1세기에 이르러 트랜스휴머니즘은 영미 과학자 및 철학자들의 주축으로 그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와 함께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포스트휴먼의 등장에 대해 강 교수는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 과제”로 볼 것을 제안한다. 인간의 관념 자체가 크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포스트휴먼은 기술혁명이기보다 인간혁명”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2050년이 되면 영생을 사는 포스트휴먼의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미래학자 커즈와일의 주장에 대해 이종관 교수는 『포스트휴먼이 온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을 운명의 존재자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미래는 없다.” ‘죽음에 이르는 존재’로 규정된 인간을 통해서만 미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하지만 절대적으로 확실한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미래와 관계 맺을 수 있다.

이 교수는 근대 휴머니즘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하는 네오휴머니즘에 주목한다. ‘네오휴머니즘’은 실존적 허무에 직면한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다시 확보하고자 인간다움을 긍정적으로 성찰하는 움직임이다. 네오휴머니즘은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을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밝혀내려는 과학 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로써 인간의 본질을 새로운 존재방식에서 발견한다. 여기서 ‘은하철도 999호’ 속 ‘철이’의 여행을 다시 떠올려보자.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는 다양한 존재와 세계를 만나면서 결국 기계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지구로 돌아오려 한다. 영원한 삶을 포기한 ‘철이’의 선택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트랜스휴머니즘 시대의 우리에게 네오휴머니즘적인 질문을 안겨준다. ‘철이’가 영생을 찾아 떠난 모험 속에서 깨달은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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