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에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어요”
“거인의 어깨에 오르면 더 멀리 볼 수 있어요”
  • 박철현 기자
  • 승인 2019.03.05 01:11
  • 호수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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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차호(기계 80) 동문
사진 l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제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민만기, 이하 법전원) 교수님 40명 중 당구를 제일 잘 쳐요.” 
책이 빼곡히 들어선 책장과 프린트물이 가지런히 쌓인 책상, 그곳에서 만난 정차호(기계 80) 동문의 첫 마디는 유쾌했다. 
그가 연구실에 책을 쌓아간 시간 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우리 학교 법전원 교수로 있는 정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나라 특허법의 과제를 제시하기까지
창의성이란 선행자료를 검색하고 이해하는 능력


 

거인의 어깨에 오르기까지 
“특별할 것 없는 유년 시절 후에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은 술 마시고 당구 치는 것이 전부였어요. 기계설계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전공 진입 과정에서 기계공학과보다 기계설계학과가 학점이 낮아도 됐기 때문이었죠.” 그 당시엔 당구 치는 것이 전부였다며 정 동문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그는 군대와 첫 직장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느끼고 단순하게 살아온 삶의 태도를 반성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은 다음 시간을 헤집고 나갈 원동력이 됐다.

“군대 조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가 돼야 했고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박사학위가 있어야 했어요.” 그는 ‘공직사회 진출과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목표를 새겼다. 그렇게 2달 반 만에 첫 직장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나와 기술고시를 준비했다. 다른 걱정거리 없이 합격에만 집중했던 고시 생활을 마치고 그는 산업자원부 무역협력과로 발령됐다. “산업자원부에서 근무하다 보니 해당 업무와 시스템이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 위주로 돌아가서 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고민 끝에 얕고 넓은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보다 깊은 지식을 갖춘 전문 직업인, 스페셜리스트가 되자고 다짐했죠.”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그가 택한 곳은 특허청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특허법 대부분이 일본 것을 모방하여 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채 운영되는 후진적인 상태였어요. 이를 알아도 심사 법령과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데 제 지식과 논리에 한계가 있었어요.” 실제 업무에서 느낀 갈증은 다시 새로운 목표를 다짐케 했다.

그는 공무원 국비 유학길에 올라 미국 플랭클린 피어스 법률센터에서 특허법에 관한 논문으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구를 좋아했던 공대생에서 법학자까지 정 동문은 본인의 이력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갈림길이 나와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만약 다른 길을 택했더라도 저는 성공했을 거예요.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는 선택이 주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우직하게 걸었다. 

정 동문은 3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특허청에 돌아왔다. 유학 전후 달라진 특허청 업무 수행에 대해 아이작 뉴턴의 말을 빌렸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볼 수 있어요.” 유학 전엔 특허청 업무 개선에 대한 필요와 당위만 느꼈다. 하지만 유학 후엔 “선행문헌을 많이 읽고 이해하면 그 개선사항을 훨씬 선명하게 볼 수 있다”며 “기존의 지식 위에 우뚝 서야 한다”며 거인의 존재를 강조했다. 총 12년 동안 특허청에서 심사과장까지 지낸 후 그는 학자의 길을 선택해 2007년 법전원 교수로 모교에 돌아왔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특허법을 위해서
법학자는 크게 법률 해석을 하는 해석론 활동과 법 개정 및 도입을 하는 입법론 활동을 한다. 정 동문은 입법론 활동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법 연구와 입법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특허소송의 관할집중에 대한 입법을 주장했고 관련 법은 2016년 도입됐다. 나아가 위 입법 사안에 주로 쓰인 단어의 법리적 해석을 추가 연구했다. ‘특허권에 관한 소송’이라는 문장에서 ‘관한’의 해석을 타국 사례와 비교하여 우리 현실에 맞게 개진했다. “우리 법학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고 생각해요. 무비판적 법 모방은 해당 법의 오류까지 답습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것이 오류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돼요.” 그는 “법은 얽히고설킨 실타래기 때문에 연관된 것들을 꼼꼼히 고려해야 우리의 법을 제대로 꾸릴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우리만의 독자적인 법을 수립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중국과 일본이 택한 방식처럼 타국의 법을 선별적으로 도입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일본 등지의 법을 보고 중국 실정에 맞게 취사 선택 해요. 일본 역시 △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지의 법을 참고해요. 이 같은 타국의 예시처럼 우리나라도 단일사례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다양한 특허법 자료를 선별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녹이면 됩니다.” 그렇기에 “법 인사들은 자료를 이해하고 선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쉬운 길에 젖지 않아야 합니다. 무비판적인 복사·붙여넣기에서 벗어나 다음 세대가 나름대로 가꿀 수 있는 토양을 넘겨주는 것이 우리 법학의 과제”라고 말을 마쳤다.

창의교육의 일환 ‘발명 교육’을 위해서
정 동문은 이공계생 교육에도 뜻이 있다. 그는 논문 지식재산강국 실현을 위한 이공계 대학생 대상 ‘발명·특허’ 교육의 확대방안에서 발명·특허 교육의 필요성을 말했다. 또한 우리 학교 공대생을 대상으로 ‘발명가를 위한 실천적 특허법’ 강의를 개설해 강단에 오르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로수 보호 덮개를 설계하는 과제를 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추가 점수가 부여되는 과제였다. 해당 과제는 새로운 가로수 보호 덮개 아이디어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과제 수행 자체에 의의를 뒀다. “학생들이 ‘특허정보검색서비스’를 통해 가로수 보호 덮개의 기존 출원을 검색하면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에도 지식이 무수히 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과정이 발명의 시작이죠. 선행기술을 찾는 습관이 들면 1년간 맨땅에 부딪혀 배울 내용을 1달이면 충분히 익힐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 더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어떤 분야의 발명이 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런데도 10년 동안 계속 새로운 것이 출원되는 것을 보면서 기존 것들의 장점을 조합하는 방식에 대해 깨우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발명’을 “사회현상, 기술적 문제 등 지금의 문제를 개선하는 모든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래할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은 단순 작업이 아닌 창의 활동에 방점을 둡니다. 과거의 암기, 주입식 교육은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므로 토론, 논술 교육처럼 ‘발명 교육’이 창의교육의 일환이 될 수 있죠.” 그는 ‘창의성’에 대해서도 “공허한 추상적 단어가 아니라 선행자료들을 검색하는 능력,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조합하는 능력”이라 설명했다. “대다수 사람이 조합하는 것만을 창의성이라 여기는데, 앞의 두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행자료를 검색하고 이해하는 길을 열심히 걸어가면 창의성은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죠.”

개구쟁이들아, 
나침반을 챙기고 자유롭게 노를 젓자

정 동문은 우리 학교 기술고시와 변리사 준비반인 운용재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자과캠 운용재까지 너무 멀지만, 저도 운용재 출신으로 그때 도움을 받았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죠.” 역시나 그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끌어냈다. “저는 예비 변리사 친구들이 발명가의 친구가 됐으면 해요. 발명가와 발명품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덕목인 것 같아요.”

그에게 인상 깊은 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저를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답안지, 질문내용, 평소의 행실을 보면 기존 틀에 갇히지 않고 생각이 자유로워서 본인이 놓인 문제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어요. 저를 좀 무시해도 그 친구가 기특했어요.” 그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겸손하기보다 자유분방하게 사고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기를 바랐다. 사회를 바라볼 때는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자고 했다. “예를 들어 ‘특허 괴물’은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특허기술을 사들여 로열티 수입을 챙기는 회사를 말해요. 특허권을 침해한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여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기도 하죠.” 괴물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뜻이 함축돼 있지만 실상 그런 면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개인 발명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기술을 대신 팔아주는 측면에서 ‘특허 천사’라고도 불려요. 같은 현상을 보고 다르게 볼 수 있는 거죠. 우리 사회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요. 따라서 현상을 자세히 분석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다. “하지만 나침반이 없는 사람은 노를 저은 만큼 손해 볼 수 있어요. 어떤 길이든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를 저으면 돼요.” 정 동문은 과거에 영향력 있는 사회 일원이 되고자 기술고시라는 나침반을, 우리나라 특허 발전을 위해 법학자의 나침반을, 지금은 아시아에서 내로라하는 법학자가 되기 위한 나침반을 보고 노 젓고 있다. “어떤 길이든 그 분야의 선행지식을 습득하기만 해도 100명 중 10명 안에 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본다면 10명 중 1명이 되는 거죠.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노를 젓다 보면 본인의 목표에 도달해 있을 거예요. 다만 노를 저을 때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저으셨으면 해요.”       
 

*특허소송의 관할집중=예전에는 전국의 모든 법원에서 특허소송의 제기가 가능했으나, 법 개정으로 5개 법원에서만 소의 제기가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법원의 전문성이 제고됐고 항소심은 특허법원에서만 가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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