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익숙함에서 본질을 캐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익숙함에서 본질을 캐내다
  • 김원구
  • 승인 2019.03.05 03:59
  • 호수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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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l김원구 기자 kwg0328@skkuw.com
사진l김원구 기자 kwg0328@skkuw.com

인터뷰-최장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리에게 익숙한 편의점 ‘(Nice to) CU’, 자동차 ‘맥스크루즈’, 음료 ‘세븐(7even)’, 영화관 ‘롯데시네마’ 등 브랜드의 전략과 네임, 디자인을 기획한 최장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와 함께 청담동의 한 카페로 향해 신문기자에서 기획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말하는 ‘기획’에 대해 들어봤다.

브랜드 전략, 디자인, 마케팅 등 하는 업무가 다양하다. 본인의 직업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이하 CD)를 소개해달라.
간단히 말하면, 브랜드 네임을 만들고, 디자인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에요. 기업은 이런 브랜드라고 소비자에게 말하는데, 이것과 실제 소비자의 인식 간에는 ‘격차’가 있어요. 이 ‘격차’가 얼마인지,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업이 자문을 구해요. 그러면 저희는 브랜드 이름과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는 어떻게 할지 등을 고민하죠. 결과적으로 한국야쿠르트의 ‘세븐(7even)’, 현대자동차의 ‘맥스크루즈’와 ‘벨로스터’, 해운대 ‘엘시티(LCT)’나 ‘경인 아라대교’처럼 이름을 만들기도 하고, 로고나 상품 패키지 디자인도 합니다. 곳곳에 필요한 지식이 많아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관련 공부를 해요. 엄청 바쁘게 돌아가는 직업이죠.

광고가 브랜드나 디자인보다는 큰 시장이라 CD가 ‘광고기획총괄자’라고 사전에 나오지만, 유사 업계에서는 이 용어가 통용돼요. CD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보내는 언어를 직접 만들고 팀의 방향을 정하는 최고 지위예요. 팀에는 △네이머 △디자이너 △리서처 △전략가 △플래너들이 있는데 프로젝트로 묶이면 CD가 방향을 제시하고 관리합니다.

저는 처음에 네이머로 시작했어요. 3년 정도 네이머를 하면서 창의적인 브랜드 이름을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이것만으로는 설득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브랜드 전략 공부를 하고 전략 프로젝트를 몇 번 하면서 전략 쪽으로 조금 이동을 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전의 최장순은 어떤 사람이었나.
대학교 이전에는 어른들이 시키는 공부 외에는 다른 것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또 지금은 무교지만 교회를 다닐 때 목사님의 설교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원어로 된 성경을 번역하며 생긴 문제라 생각했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학술적으로 풀어보고도 싶었고요. 이런 데서 영향을 많이 받아 종교학과를 지망했어요. 하지만 서울대 종교학과에 떨어지고, 유사한 학과를 찾는데 언어학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고려대 언어학과에 다니게 됐습니다.

졸업 후 입대했기 때문에 4년 동안 쭉 학교를 다녔죠. 그 시절 ‘언어가 모든 것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세계관이 형성됐어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의 사유를 만들고, 그에 따라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거든요. 이 사고방식은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기획자가 되기 전에 ‘교수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고 알고 있다. 왜 기자가 되려고 했나.
대학원에 가서 교수가 되고 싶었고, 이 계획에 일말의 의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했죠. 그렇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대학 내내 철학 공부만 해서 영어 성적이나 자격증도 없었으니까요. 언어학 전공을 살리고 싶었고, 글 쓰는 데에는 자신 있어서 교수신문에 지원했어요.

학자에 대한 미련도 여기에 좀 묻어나는데, 저희 학교에 기자 출신 교수님이 계세요. 특이한 경우이긴 한데 경력 면에서 그분을 롤모델로 삼았어요. 교수신문에서 글을 쓰며 교수들이랑 두루 친해지려 했는데, 제가 맡은 역할이 연구 비리랑 표절 취재다 보니 친해질 수도 없었죠. 한 번은 제 기사로 교수 한 명이 해임되기도 해서 심적인 충격이 좀 컸어요.

그래도 기자 생활은 재밌었습니다. 교수신문이 교수사회를 벗어나서는 영향력이 크진 않았지만, 학계나 교육부 관료들은 많이 참고했어요. 저는 표절윤리 시리즈를 냈었는데 외부에서도 많이 인용했고, KBS ‘추적 60분’과 함께 관련 프로그램도 만들었어요. 전국에서 표절 제보는 저한테 제일 많이 들어왔을걸요? 그렇지만 경력에 쓰기 애매한 게 신문사 내부사정 때문에 기자 생활을 1년 정도밖에 안 했어요.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실 저는 완전 기자 체질이었어요. 『기획자의 습관』에도 써놨지만, 기자처럼 일하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기자는 사건을 취재하고 그것을 위한 공부를 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분석하는데, 사업을 할 때도 대다수가 이렇게까지는 안 하거든요. 대충하다가 실패하는 사업가들이 많아요. 그런데 탐사보도 하는 기자처럼 일하면 못할 게 없죠. 그 정도의 지성과 열정, 부지런함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봐요. 저 역시 브랜딩 쪽에 오고 나서 기자 생활이 도움이 많이 됐죠.

또 기자는 어느 나라건 정보 접근 용이성이 높아요. 그런데 기자를 그만두니까 그게 답답해지더라고요. 지금 하는 일도 정보 접근이 중요한데, 그래서 ‘기자 때처럼 정보 접근 용이성을 확보할 방법이 뭘까’라고 생각하는 습관도 도움 되는 것 같아요.

수많은 업(業) 중에 브랜드 기획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언론계를 떠나고 나서도 언어학 전공을 살리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구글의 *크리에이티브 맥시마이저(Creative Maximizer)라는 포지션에 지원했어요. 연봉 테이블에서 ‘엔지니어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연봉이 낮게 책정돼 포기했어요. 그런데 마침 면접 본 건물 다른 층에서 일하던 선배가 한 브랜드 회사를 소개해줬어요. 마침 거기서 언어학 전공자를 뽑아서 브랜드 이름을 짓는 ‘네이머’로 이쪽 일을 시작했죠.

기획자로서 필수 자질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체력이요. 그리고 ‘나는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부터의 해방이라 생각해요.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소크라테스적 자각이라 생각합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을 익숙한 프레임으로 해석해보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보는 게 기획의 역할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본질을 찾아야 해요. 사람들에게 책상을 그려보라 하면 대부분 판을 그리고 다리 네 개를 그리겠죠. 그런데 책상이 책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본질은 ‘무언가를 받쳐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 본질을 염두에 두면 다양한 디자인의 책상이 나올 수 있죠. 본질을 분별해내면서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

다만, 창의적인 것이 무조건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 소비자들이 피곤해하죠.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해도 몸이 진화하는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파괴적 혁신은 과거의 것들이 적재적소에 섞여야 한다고 봐요. 기존의 것을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인내심도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이게 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죠.

기획에서 팀 간의 협업이 잘 이뤄져야 함을 저작물들에 많이 드러냈다. 기획이 아니더라도 팀워크는 어디서나 중요한데, 팀워크를 잘 이루는 방법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경청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말이 많지 않은 편이어서 상대방이 말을 하면 잘 들어주고 반응도 잘 해주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제가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에 저를 또 찾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 거죠.

또 업무적인 관점에서 팀워크를 잘 이루려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잘 나눠야 해요. 아이디어를 팽창시키고 발전시킬 때는 서로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아이디어를 선정해 구체화 시킬 때는 리더가 지적 우위에 있어서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하죠. 팀원들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요.

기획 일을 하면서 보람찼거나 반대로 회의감이 들었던 적은 언제인가.
저희는 기획의 대상이 소비자일 수도 있고, 기업의 임직원일 수도 있는데 그들이 좋아하면 굉장히 뿌듯해요. 반대로 회의감이 들 때는 체력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질 때예요. 저는 공황장애도 겪었는데, 그때가 거의 못 자고 집에도 잘 못 들어갈 때였어요. 지금은 많이 고쳐졌지만, 제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이었어요. 제 건강에 대한 기획을 못 해서 아쉬워요.

본인이 했던 기획 중 잘된 사례는 무엇인가.
 

KRAFTON 제공
ⓒKRAFTON 제공

‘맥스크루즈’는 초기 판매가 잘 돼서 기억에 남고, ‘구찌(GUCCI)’도 기억에 남아요. 구찌는 팝업스토어 디자인을 했었는데, 이탈리아 장인과 한국 장인의 만남이라는 테마를 설정해서 한지를 앞에 붙이고, 그 뒤에 구찌 가방을 놓아서 빛이 비치면 실루엣이 보이게끔 했죠. 또 과거에 훼미리마트가 CU로 바뀐 뒤에 사람들이 CU를 ‘쿠’라고 읽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CU 앞에 ‘Nice to’를 붙여 자연스레 ‘씨유’라고 읽도록 만들었죠.

최근에는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회사 ‘블루홀’의 이름을 ‘크라프톤(KRAFTON)’이라고 새로 지었어요. ‘Keep the Craftsmanship on’의 의미로, ‘(게임) 장인 정신이 오래 지속된다’는 테마로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고, 중세 길드의 깃발을 모티브로 한 로고도 만들어졌죠. 관련 PR 분야에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기획자의 습관』, 『본질의 발견』 등의 저서를 출간하고, 다양한 강연을 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기획에 부담 갖지 않고, 늘 하고 있던 것임을 알게 하고 싶어요. 사실 전문 기획자가 있다는 것은 기획으로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해요. 그렇지만 레포트를 쓰거나 ‘오늘 뭐 입지’라는 생각처럼 생활 속에서 모두가 기획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저는 모든 국민의 기획자화를 꿈꿔요. 기획은 낯설게 보는 게 중요한데, 이는 기성 질서와 관습에 틈을 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약일 수는 있으나, 그 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진화하는 거죠. 기표와 기의가 합쳐져서 기호가 되는데, 부당하게 결합한 기호라면 그걸 떼어내야 한다고 봐요. 다르게 보는 상상력과 기획력이 없으면 이를 분리할 수 없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강연 때 이를 알리고 있어요.

『기획자의 습관』에서 특정 분야의 권위서인 ‘바이블’을 위주로 읽어 나가는 독서법을 말했다. 이에 관해 설명해달라.
 

교보문고 제공
ⓒ교보문고 제공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관련 공부가 필요할 때, 그 분야의 ‘바이블’부터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처음부터 바이블이 잘 안 읽히죠. 그러면 당연히 개설서를 찾든 쉬운 쪽으로 가야 해요. 제가 의도한 것은 어떤 분야에 관한 책이 몇백 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다 읽지는 못하니 제대로 된 책을 골라서 읽자는 취지입니다. 보통 ‘바이블’이라고 하면 주관적이지만, 학술적으로는 동료평가(Peer Review)가 많이 된 책을 특정 담론이 유행한 시기의 ‘바이블’로 봐요. 분야별로 정의가 다르겠지만, 제대로 인정받는 책들을 위주로 뽑아보면, 그 바이블에는 ‘참고문헌’이 달려있어 찾아가며 링크 식으로 읽어 나갈 수 있죠.
이런 습관은 대학 때 만들어졌어요. ‘인문고전 강독반’이라는 동아리를 들었는데, 거기서 고전 위주로 공부하고 한 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파생되는 개론서를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 권을 떼게 되면 많게는 20권을 읽게 됐죠. 한 권을 일 년간 읽고 토론도 하며 그 주제를 완전히 소화했어요. 최근에 본 책보다 그때 본 책이 훨씬 더 기억에 많이 남아요.

기획에 대한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는 기획을 하는 게 목표에요. 상품이나 서비스의 본질에 가깝게 기획해서 소비 인식을 향상시키고 싶어요. 물론 이미지를 만들 때 포장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지는 일정 부분 허위에 가깝기는 한데 제가 하는 기획은 그게 덜했으면 좋겠어요. 카피든 디자인이든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했을 때, 정보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여주고 싶어요. 그럴 경우 소비 인식이 향상돼 기업들을 견제할 수 있는 지식도 생겨나요. 예를 들어, ‘저 브랜드는 이렇게 해주는데 여기는 아니네?’ 하는 것도 기업을 견제하는 방법일 텐데요, 이러면 기업이 더 노력하겠죠. 다소 비약적이지만, 이렇게 소비 공동체의 활동이 사회에 기여하게 만들고 싶어요. 제가 하는 프로젝트가 당장은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어딘가에 하나라도 메시지를 심고 싶습니다.

기획자를 꿈꾸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기획하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지치지 않고 자기답게 했으면 좋겠어요. 지치고 일도 안 풀리면 타협하게 돼요. 저도 과거에 타협 많이 했는데 지금 보면 아쉽죠. 자신만의 지치지 않는 노하우를 갖길 바라요. 또 지금 20대 대학생들은 저희 때랑 다르고 많이 어렵잖아요. 물론 어느 세대나 자기들이 늘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은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인구 구조 자체도, 20대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복지 부담도 많잖아요. 제가 지금 20대가 아니라서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지치지 않았으면 해요.

*크리에이티브 맥시마이저=구글에서 키워드 조합을 통해 광고주의 사이트로 소비자를 유도하는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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