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행동이 힘이 되어서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서방 죽은 년처럼 뭐 하는 거여? 얼른 일어나 계산 받지 못하냐!”
식탁 위에 턱을 괴고 있던 정숙은 어머니의 다그침에 못 이겨 계산대로 옮겨간다. 손님은 둔치에 사는 박씨와 그의 두 아들이다. 귀밑에 새까맣게 때가 낀 작은 아들놈은 미처 다 먹지 못한 단무지를 주워 삼키고 있고, 큰놈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데 그래도 머리가 컸다고 동생을 이렇게 쥐어박고 있는 것이다. 정숙이 멀뚱히 쳐다보니까 취학신청 기간을 놓쳤다는 큰놈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아예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유리창에 붙은 ‘원조짜장’이란 빨간 글씨 너머로 식당 안의 동태를 살피는 큰놈에게 정숙은 손을 흔들어 보인다.

“저기. 각시. 요즘은 내가 돈벌이가 시원찮고 해서, 내 요다음 장 설 때 나오면 그때 꼭 갚을 테니, 오늘은 그냥……”

박씨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잡힌다. 그 사이로 누렇게 배어 나오는 기름을 보니 정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네. 그렇게 하세요…… 맛있게 드셨어요?”

박씨는 눈곱이 두툼하게 낀 두 눈을 껌벅하며, ‘그러문’하는데, 그 눈곱 사이론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다. 박씨가 작은 아들놈의 엉덩이를 두들겨 몰며 식당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박씨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더니 그만 그 자리에 멈춰 버린다.

“여보, 박씨! 이게 벌써 몇 번째요? 애들 보기 챙피해서라두 그 짓거리 못할 거유. 나는.”

박씨가 ‘저기’하며 말을 꺼내 보려고도 하지만, 어머니는 오늘 박씨를 그냥 보낼 요양이 아닌 것 같다. 양철 주걱을 식탁에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는 어머니의 어깨가 이미 들썩들썩한다.

“처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나는 구뎅이 파서 장사하는지 알어? 나는 본시 인정이 없어서 요만큼 밖에 못 하니께, 욕을 할래면 허고, 주먹다짐을 할래면 또 그렇게 해보슈. 하지만 오늘 짜장면 값이랑 쐬주 값은 받아야겄네. 돈을 내 놓고 가든가, 아니면 팔 걷어붙이고 짬통을 푸든가. 양당간에 결정을 보슈.”

어린 나이에도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쯤은 아는지, 이때쯤 작은 아들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기 시작한다. 정숙은 그 놈 터져버리면 식당이 난장판이 될까 싶어 얼른 다가가 뒤통수를 썩썩 문질러준다. 박씨는 이미 취기가 한바퀴 돌아있는데다가 어머니의 된서리 같은 소리를 듣고 나니 이 속에서 뭔가 서럽고 물컹한 것이 올라오는지, 탁자에 이마를 대고 퍼져,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작은아들놈이 따라 울음을 터뜨리자, 어머니는 ‘이런 우악스러운 것들 보게’하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상황이 이만큼 되자 ‘원조짜장’ 뒤에서 서성거리던 큰놈은 팔뚝을 눈앞에 달고 후두둑, 언덕 위로 달음질을 쳐버린다.

“어휴. 지겨워! 나가. 나가. 나가!”

작은아들놈이 오히려 먼저 울음을 그치고 애비를 끌어당기자 박씨는 또 못 이기는 척 그렇게 끌려 나간다. 구부정하니 식당 문을 빠져 나가는 박씨의 모습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어머니는 ‘벼락을 맞아 죽을 년’하며 집 나간 박씨의 처를 욕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고개가 허리까지 내려와 힘없이 언덕을 올라가는 박씨와 그의 아들을 보고 있자니 정숙의 눈에도 슬그머니 눈물이 고인다.

“정숙아!”

정숙은 눈물을 대충 훔쳐내고 부엌으로 간다. 어머니는 고사상에 올렸던 시루떡을 비닐 봉투에 담아 정숙에게 준다. 그리고 다른 비닐 봉투에는 동치미를 한 대접 퍼 넣는다.

“먹다가 모가지 막혀 뒈지면 나 때문이라고 할 거 아녀.”

어머니의 콧잔등에 주름이 피었다 진다. 정숙은 두 개의 봉투를 들고 재빨리 언덕으로 뛰어올라간다. 박씨와 그의 두 아들은 그리 멀리 가지 못하였다. 정숙은 큰아들 손에 봉투를 쥐어주고 혹시나 다시 돌려주지는 않을까 싶어 잰걸음으로 언덕을 넘어온다.

“꾸물거리지 말고 손님 없을 땐 식당 바닥도 좀 쓸고, 양파 왔으니까 눈이 매워 못 참겠더라도 조금 도와야 하겄다. 계집애가 양파가 매워서 찔끔찔끔하면 시집살이를 어떻게 할 거누?”

정숙은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온다. 욕을 먹고 하는 것이라 건성으로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면서도 정말로 그랬다간 어머니의 성격이 또 한번 보일 것이니 구석구석 깨끗이 쓸어야 한다. 출입문께를 쓸 때쯤 손님이 한 명 들어온다. 아이엠에프 터지고 큰 사업가들 부도 났다, 망했다, 소리 많이 하지만 시골처럼 난장판이 된 곳도 없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간다고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야 삼대는 고사하고 그저 문칸방 안의 딱 그 사람들 입에 풀칠하기도 변변치 못한 처지였으니 사람들 입에서 ‘어구야, ×팔’ 소리가 절로 나오던 터였다. 이곳 생활에 진저리를 치며 도시로 간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힘들고, 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대로 허덕이는 처지이니, 한가하게 동네 짜장면 집에 앉아 노닥거리는 축들도 이제는 없다. 그러니 이렇게 가끔 들어오는 손님은 임금 모시듯이 떠받들어야 하는 것이다. 손님은 작년에 이장을 했던, 그나마도 동네 유지 소리 듣고 사는 덕골 김씨다. 어머니가 쪼로로 따라나와 인사를 한다.

“먼데까지 오셨네요. 날도 추운데. 정숙아. 얘야. 뭐하고 있냐아. 엽차 내와라. 우후후. 김선생님네 느타리는 잘 된다면서요.”

“말도 말아요. 요즘 마누라가 병이 나서 누워 있어 갖구, 느타리를 신경 쓸 사람이 있어야지요. 원, 그래도 요즘 느타리 값이 괜찮아졌다는데, 때를 못 맞추고 아파서는, 에이.”

“어디가 그리 아프세요?”

“여기, 이 젖 밑에 무슨 혹이 났대는데, 수술을 하래니까 펄쩍 뛰면서 지금 한약 먹고 있다우. 하여간 누가 황씨 아니랠까봐서, 고집은……”

“걱정이 많겠네유. 참, 뭐 드실 거죠?”

“짬뽕이나 하나 줘요. 뭐, 걱정이랄 게 있나요? 그저 병이 지랄이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저렇게 누워 있으니까 집안 꼴이 엉망이 되어서 그게 그렇죠, 뭐.”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짬뽕을 만들 준비를 하시고, 정숙은 난로의 연탄불을 뺀다. 연탄재를 뒤켠으로 옮기려 하자, 어머니가 가스불을 신경 쓰는 그 와중에도 ‘그건 뒤에 갖다 쌓아놓고 국 끓여 먹으려니? 언덕빼기 내려오는데 심심찮게 얼음이 고이두만. 그 위에다 갖다 뿌려라’하신다. 정숙은 문 밖으로 연탄재를 들고 나가 어머니 얘기하신 곳에 연탄재를 내려놓고 발로 밟는다. 그 때 저쪽에서 자전거가 달그락거리며 오더니 정숙의 식당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최선생이다. 달리 어떻게 인연을 맺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정숙의 편에서는 최선생을 보면 이유없이 흐뭇한 기분이 되곤 한다. 그것은 비단 정숙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동네 처녀들은 최선생을 마음에 두고 있는 이들이 이미 여러 명이다. 최선생이 그리 인물이 잘 났거나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이라, 마을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초등학생을 다루는 양으로 고분고분하고 나긋하니 나이 찬 처녀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 데는 충분했던 것이다.

정숙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선생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최선생은 밤색 양복 속에 회색 조끼를 입었다. 촌스럽기는 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이다. 정숙은 얼른 보리차를 가져다 최선생 앞에 놓는다. 정숙이 뭐 드시겠어요, 하고 묻자 최선생은 민망하게도 ‘시켰어요’한다. 잠깐 나갔다 왔는데도 슬리퍼 사이로 스며들어온 냉기가 만만치 않다. 정숙은 연탄난로의 불구멍을 크게 열어놓고, 최선생 쪽에 놓인 석유 난로에도 불을 당긴다. 정숙이 쪼그리고 앉아 석유난로의 심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양이 편치 않았는지 최선생이 못 견디고 일어나, 내가 해볼게요, 한다. 정숙은 어쩜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있나, 하는 맘으로 슬그머니 한발 뒤로 물러난다. 이때 짬뽕 내어가라, 하시는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는 정숙에게 한 마디 한다.

“이 년아. 기름도 바닥이 났는데, 그건 또 왜 가지고 난리 짓거리냐?”

정숙은 최선생 앞이라 더욱 민망하여, 짬봉을 얼른 김씨 앞에 내려놓고는 행주라도 헹굴 양으로 부엌으로 들어가고, 최선생은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슬그머니 자리에 와서 앉는다.

“학교 일은 좀 어떠세요?” “네. 요즘은 방학 중이라서요. 크게 바쁜 건 없습니다.”

김씨는 짬뽕 그릇을 입에 갖다 대고 후루룩, 국물을 마신다. 커, 하며 그릇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김씨는 한 마디 더 붙인다.

“뭐어 요즘 애들은 스승을 스승으로 생각하지들 않으니까, 우리 때만해도 선생이면 하늘이고 그랬는데 말이지…… 그렇잖아요? 최선생?”

최선생은 김씨의 말이 옳다는 것인지 그르다는 것인지 고개를 꾸벅하고 만다. 어머니가 짜장면을 들고 나오며, 그러문요, 요즘 선생이 선생인가요, 한다. 최선생은 다소 난감한 표정이다. 짜장면 한 그릇을 숭늉 마시듯 해치운 최선생은 이내 자전거를 타고 가 버린다. 김씨는 할 일이 없는지 짬뽕 국물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을 해야겠다고 한다. 어머니도 술 한잔 마셔야 겠다, 하며 고사떡과 잡채를 가지고 나온다. 정숙은 계산대에 앉아 최선생이 달려나간 아랫길을 멍하니 보고 있다.

“따님이 최선생을 맘에 두고 있는 거 같네.” “그게 뭔 소리유?”

“아, 내가 왔을 적엔 그냥 멍하니 있다가 욕만 들어 먹더니, 최선생을 보고는 탁 엽차 갖다 놓고 당신 추우실께라 석유난로에 불을 댕기려 하고 말여요.”

“허긴 지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께 남정네 보면 가슴이 동하기도 하고 그렇겄지요.”

정숙은 두 늙은네의 대화를 못 들은 척 하려고 해도 자꾸만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최선생도 고민 많은 사람이드라구.” “무슨 고민이 있대요? 이 쬐끄만 동네에서 초등학교 선생 하면서 팔자 편하지, 뭐.”

“아니…… 부친이 췌장암이래나 뭐래나, 그러더라구.” “저런!”

최선생의 아버지가 암에 걸린 것이 특별히 술잔을 기울여야 하는 사연이라도 되는 듯 김씨와 어머니는 소주를 벌컥 들이키고는 시루떡을 맨손으로 잘라 먹는다. 김씨가 신문이 어디 있나 해서 정숙은 계산대에 있는 지방 신문을 가져다 준다. 김씨는 붉은 가죽 주머니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어 쓴다. 안경을 쓴 김씨는 꽤나 고집스러운 인상이다. 김씨가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혼자서 소주 두어 잔을 더 털어 넣는다. 갑자기 김씨가 신문을 식탁에 펼치며 이게 무슨 자인 줄 아쇼, 하자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그런 요상한 글자를 알까, 끄억, 한다.

“정숙아. 너 여기 와서 이거 무슨 자인지 좀 봐라.” “둬요. 요즘 아가씨들이 뭐 한문 같은 걸 아나?”

“원. 그래두 가방 끈 긴 게 우리 같은 거 보다는 낫겠지유. 몰랐수? 그래도 정숙이 저 년이 서울대생이유. 서울대생.” “그래요? 한 동네 살면서도 거 몰랐네. 어이고. 공부 잘 했구만. 훌륭하네 그래. 지금은 방학이라 내려와 있는가 보네.”

“방학 땜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됐수.”

정숙은 또 어머니가 무슨 말을 꺼낼까 싶어, 공연히 밖을 내다보며 당신 말씀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모나미 볼펜을 따닥따닥거려 보는 것이다. 어머니는 또 술 한잔을 입에 털어놓고는 꺼억, 한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아이를 업은 여자 한 명이 들어온다. 손님인가 했는데, 김씨를 보며 ‘아주버님’ 한다.

“제수씨가 여긴 왠일루 오셨어요?”

“저, 아주버님. 형님께서 오늘은 좀 일찍 들어오시라는데요. 버섯이 꽤 돋아 있는가 봐요. 아주버님께서 버섯을 따 주셨으면 하시길래……”

“원, 마누라두…… 내가 어련히 가지 않을까봐서. 그럼 그 얘기를 하려구 제수씨를 여기까지 보낸 거요?”

“그게 아니구요. 이쪽에 볼일이 있어서 온다구 하니까, 부탁을 하셔서요…… 그럼 그만 가볼게요.” “어, 예. 애기 잘 덮어 가지고 댕겨요.”

“어쩌다 그런 데루 빠졌나 모르겠네요. 졸업만 하면 앞길이 창창할턴데.”

김씨는 제수가 나가자 술을 한잔 들이키고, 병에 남은 술을 술잔에 톡톡 털어 넣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머니는 술 한병을 더 가지고 나오신다. 김씨는 ‘어떻게 그렇게 되다니요?’ 하며, 어머니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됐어요’ 하시는데, 김씨는 또 ‘뭔데유’ 하며 끝을 놓지 않는다.

“지가 뭐 세상을 바꿔 볼 거라고, 데모질을 하다가 저 모냥이 됐다우. 대통령이랑 지가 무슨 웬수 졌다고 그러께 그렇게 난리를 피우다가 잡혀 가지고서는 석달이나 유치장에 가 있었다우. 지 아부지한테 머리 끄댕이 잡혀서 저 언덕빼기 넘어오는 걸 보면서, 내가 가슴이 다 찢어지고 그랬수.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두 심장이 벌렁벌렁해갖고 숨을 잘 못 쉰다니까요. 누가 공부 하래나? 그냥 저냥 조용히 학교 잘 다니다가 졸업하고, 학벌 있으니께 좀 점잖은 사내 만나서 애 낳고 살면 되는 거 아니겠수? 기집애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남편이 맹글어 놓는 것인디, 지가 뭐 세상을 바꿔 볼 거라고. 에고. 이 년아.”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며 집어 던진 잡채 줄기가 정숙의 머리 위에 척, 붙어 내려 앉는다. 정숙은 머리 위에 붙은 당면을 떼어내며 부엌으로 간다. 차라리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양파껍질을 벗기는 게 나을 듯 싶다. 당신이 자식을 나무랄 때에는 당신 눈 앞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더 이상 화를 돋구지 않는 방법일테다.

“어쩌다 그런 데루 빠졌나 모르겠네요. 졸업만 하면 앞길이 창창할턴데.”

“모르지유…… 지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저 년이 쑥맥같아 보이고 그러니까 선배라고 하는 것들이 옆에서 쑤석거리면서 충동질을 했겄지유. 어휴, 또 그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말은 좀 잘 해유? 정숙이 저 년 귀에 달콤하게 들어와 앉는 말만 골라 하니께 지도 모르게 바람이 든 거지유. 지들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도, 그게 다 빨갱이 짓 아니유? 김일성이 김정일이가 즈들 대통령은 아니잖어요. 아니, 그 짓거리를 해도 그렇지. 지가 좀 약아빠지면 슬슬 빠져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요? 그래도 고향서 지 보고 있는 애비, 에미가 있는데 말이유. 지가 무슨 세상을 바꿔 볼 거라구……”

서울에서 내려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머니가 정색을 하고 묻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래서 그런 짓을 한 거냐?”

정숙은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에게만큼은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제 개인의 불만이 아니에요. 이곳도 그렇지만 곳곳에 힘든 사람들 많잖아요. 좀 도와주고 싶은데 워낙에 제도가 잘못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고쳐 보고 싶었던 거에요. 제가 한 행동을 무조건 나쁜 거라고 단정짓지 말아 주세요. 지금도 제 행동에 대해서는 후회 안 해요. 그저 제가 한 행동이 힘이 되어서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 바뀐 세상 속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살았으면 좋겠구요.

물론 어머니는 ‘아는 소리 작작해라’ 하시며 정숙의 뺨에 거친 손을 대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정숙을 탓할 때마다 ‘지가 무슨 세상을 바꿔 볼 거라고’라는 꼬리를 붙이고 만다. 김씨와 어머니는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귀가 눈과 같다면 정숙은 차라리 감고 싶다. 양파 잔뿌리를 뜯어내다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칼이 스미고 들어갔다 나왔는데도 정숙은 귀를 닫을 궁리만 하고 있다. 양파 더미 위로 핏물이 투둑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숙은 손수건을 꺼내어 손에 꼭 쥔다.

“요즘 애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 줄 몰라서 그래요. 난리 끝나던 해, 제가 아홉 살이 되었거든요. 뭐 남아 있는 게 있어야죠. 그렇게 맨바닥에서 살아보려고 하니, 그게 죽을 노릇 아닙니까. 지금 애들이 그런 걸 아나요. 뭐…… 어쨌든, 그래도 졸업은 시켜야 하지 않겠수?”

“졸업은 무슨 졸업에유! 내 다시는 저 년을 서울로 안 올려 보낼 건데요. 저 년이 혁주나 되었으면 후딱 군대라도 보내 버렸을 텐데, 그것도 안 되어 이렇게 데리고 있는 거요. 지 짝 만나 이 동네를 뜨기 전까지는 한발짝도 이 동넬 벗어나지 못하게 할테니까.”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양파 껍질을 벗기고 있는 정숙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 오죽이나 속상하면 그러겠느냐만 그래도 자식의 허물을 감싸는 건 부모의 몫인데, 저렇게 동네 사람 앞에서 자식 흉을 보고 있으니 서운함이 없을 리 없다. 더구나 다시는 서울로 안 보낸다는 것이 정숙에게는 맨살에 칼집을 내는 것 만큼이나 아픈 말이다. 정숙에게도 펼치고 싶은 꿈이 있고,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간 딸자식은 밖에 내다 키우면 다 베려 놓는 거 같우. 그래도 정숙이 저 년은 그나마 나은 거요. 양조장 집 딸 보시유. 공부 잘 한다고 해서 서울 올려 보내 놨더니, 그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것이 ×질을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한 번은 잘못 되야 애를 밴 거유. 애를 뱄는데 그래도 양조장 집 마누라 성미도 좋지. 딸년이 애를 배 가지고 왔는데도 어쩜 그렇게 욕 한마디 없수? 읍내 병원에 가서 애 떼고 와서는 미역국까지 끓여 먹였다지 뭐유. 그리고 그 은경이년 서울로 또 올라갔수. 그 짓거리 한번 맛 들리면 쉽게 못 끊지. 내 심엔 그 년 또 그 짓거리 하고 있을 거유. 내 정숙이 저년이 데모질을 하고 와서 저렇게 틀어박혀 있으니 그나마 놔두지. 은경이 그년처럼 하고 다녔으면, 그냥 화롯불에 모가지를 처박아 버렸을 테니까.”

상처라고 해야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것이니 피는 금방 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상처로 현기증까지 날 이유는 무엇인가. 정숙은 자리를 옮겨 부엌 벽에 기대어 앉는다. 칼을 다시 만지기 싫어, 툭 던져 놓았더니 아직 뻘건 껍질이 붙어 있는 양파의 옆구리에 가서 쿡, 하고 박힌다. 정숙은 꼭 그것이 자신의 옆구리나 되는 양 아릿하게 아픔을 느낀다. 너무 아파 참지 못하겠다며 비명을 지르고도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김씨가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김씨는 또 사회면 한 귀퉁이에서 그럴 듯한 사건이라도 발견해 낸 모양이다.

“하여튼간 요즘 젊은 애들은 정조관념이 없어요. 여기도 보슈. 열일곱살이 원조교젠지 뭔지 하다 걸렸다는데, 돈 빨리 벌려고 그런 건데 뭐가 나쁘냐고 했다지 않수.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시원찮은데 말이지.”

어머니가 어디요, 하자 김씨는 손가락으로 그 기사가 붙은 자리를 짚어 준다. 어머니는 벌써 눈이 어른어른해서 잘 안 보여유, 하시고는 두 눈을 비벼댄다.

“아마 양조장 집 딸 같은 것들이겄지. 그런 게 어디 한둘이겠수?”

“그럼유. 많이 배운 것들도 다 똑같다니까유. 요즘 대학생이라는 것들 그 짓거리 하고 다니는 건 다반사지유. 다반사. 어떻게 결혼이랑 그거랑 따로 놓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수. 하여튼간 세상이 어느 지경까지 갈려구 그러는지.”

소주 두 병을 비우고는 김씨도 일어나 나간다. 김씨랑 겹치어 아버지가 들어오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어머니의 얼굴과 술판을 번갈아 보더니 한 마디 던진다.

“장사는 때려칠 거여? 대낮부터 술을 퍼먹고 난리야! 그 놈의 수다는 죽을 때까지 달고 갈 건지, 언덕 내려오는데도 다 들리니, 원, 동네 시끄러워서.”

아버지는 난로 연통에 손을 대고 서 있는다. 어머니는 식탁을 치우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방에 들어가 누우세요.”

정숙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어머니가 안돼 보여 저 혼자 눈물을 찔끔찔끔 하면서도 굳이 양파 껍질을 혼자 벗기겠다고 우긴다.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간다.

“정숙아.”

아버지는 아예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자리를 잡으신다.
“뭐 하고 있었냐?” “양파 다듬고 있어요.”

“얼마나 더 해야 되는데?” “거의 다 했어요.”

“그으래…… 그럼 빨리 끝내구 나와라.”

정숙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양파 껍질을 벗겨낸다. 시큰한 냄새가 자꾸 눈을 찔러 눈물이 흘러도 매워진 손으로 눈물을 닦아낼 수도 없어, 고개를 숙여 옷깃에 눈물을 조금씩 찍어 낸다. 그렇다고 꼭 양파 냄새가 매워서 눈물을 흘리는 것만도 아니다.

숙의 속에 이미 울고 싶은 마음이 강물 같은데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그저 서러웠던 눈물을 마구 흘려 내보내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흐흑, 하는 소리가 흘러 나온다. 정숙은 밖에 아버지가 있기도 해서 애써 울음 소리를 속으로 삼킨다.

“아버지. 다 했어요.” “그래…… 그런데 뭐냐. 너 울었냐?”

“아니에요. 양파 냄새가 매워서 그래요.” “으응. 난 또…… 특별히 할 일 없지?”

“예.” “그럼 하우스 가서 아부지 일 하는 것 좀 도와야 겠다.”

“식당은요?” “닫아 걸고 가야지, 뭐. 니 엄마 저 지경이 되어 있는데 워떡하냐.”

정숙은 문을 걸고 ‘今日休業’이라 쓰여진 팻말을 문에 걸어 놓는다. 아버지가 서툰 솜씨이지만 정성스럽게 붓글씨로 써놓은 것이라, 아는 체 하면서 알기 쉽게 한글로 바꾸어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남들은 휴업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한문까지 쓰느냐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정숙도 그런 생각이지만, ‘今日休業’은 당신의 자존심이다.

아버지가 먼저 언덕을 넘어가고 정숙도 바삐 그 뒤를 쫓아간다. 비닐 하우스에 이르자 아버지는 덕지덕지 흙이 붙은 장갑 하나를 정숙에게 던져 준다.

“나뭇단을 이 위로 올려야 하는데, 옆에서 붙잡아주지 않으면 도대체 힘들어서……”

“이쪽에서요?”

“그럼. 한 번 해 보구…… 기집애가 되나서 힘이 있을까 모르겠다. 혁주가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 곧잘 도와주고 그랬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정숙은 식당에서 내내 어머니에게 이년, 저년 소리를 듣다가 아버지한테까지 ‘기집애’ 소리를 듣는 게 싫기도 하거니와 ‘기집애’ 얘기를 하면서 굳이 죽은 혁주까지 들먹이는 아버지가 못내 밉다. 열두살이 되던 해, 트랙터 뒤에서 놀다가 치여 죽은 남동생 얘기를 듣지 않으면 요즘 정숙의 하루는 넘어가기가 힘들다. 정숙은 ‘그렇지?’하며 슬쩍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아버지에게 어쩔 수 없이 네, 하고 만다.

나뭇단이 오십여개는 되는 것 같다. 정숙은 옆에서 받쳐주기만 하는 것인데도 가슴팍에 흥건히 땀이 고인다. 그래도 아버지는 쉬자는 말 한마디 안 꺼낸다. 일을 한꺼번에 끝내버릴 심사인 것 같다. 아버지는 나뭇단이 점점 높아지면서 힘이 더 들어가자, ‘으싸’하며 힘을 더 내지만 정숙은 이미 힘이 다 빠져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 것 같다.

“왜, 힘 드냐?” “네에.”

“원, 녀석두. 고걸 하구선 그래? 허긴…… 여자 심(힘)이 그렇지, 뭐.”

또 혁주 얘기가 나올까 싶어 정숙은 마음이 편치 않은데 다행히 아버지는 별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문다.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은 당신은 이제 거어억, 하며 목 밑에서 노란 가래를 끌어올려 밭고랑 사이에 툭, 뱉어 놓는다. 그리고는 하우스 문을 열고 나가 논두렁 밑으로 오줌을 주루룩 쏟아 놓는다. 정숙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못마땅하여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섰으나 오줌 누는 소리를 듣고 나니 정숙 또한 저도 모르게 요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은 고사하고, 몸을 숨긴 채 일을 볼 곳도 마땅치가 않다. 정숙은 할 수 없이 큰길을 건너 제방 밑으로 내려가 말라비틀어진 풀숲 사이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그곳까지 오느라 한참을 참았던 터라 오줌 줄기가 쏴, 하며 금방 터져 나온다. 정숙은 누가 보지나 않을까 싶어 내내 주위를 살핀다. 개울 주변에는 아무도 없지만, 건너편 골짜기에서 누군가 검불을 긁으며 내려오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팬티를 올리면서 엉덩이를 쓸어보니 벌써 차가운 바람에 식어 오돌토돌 닭살이 돋아 있다. 바지까지 올리고 제방을 올라오는데 정숙은 얼음을 되로 먹은 듯 속이 냉랭하고 쓸쓸하다. 아버지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을까 싶어 슬슬 걸음을 빨리 옮기는 자신의 모습이 정숙은 가엾게까지 느껴진다.

“내일 옆집 창수 불러서 마저 해야겠다. 나도 이젠 힘이 들어서, 못 해먹겠다.”

설 지나며 쉰을 넘겨버린 아버지에게 요즘 ‘못 해먹겠다’는 말을 듣는 건 어렵지 않은 터라 대충 흘려보내려 해도, 정숙의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다. 못 해먹겠다, 는 말이 다 포기하고 말겠다는 의미로까지 부풀려져 해석되곤 하는 것이다. 아버지 또한 생각없이 못 해먹겠다,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스물 다섯이 된 딸의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 앉는 걸 아시기는 할까. 정숙은 그저 아쉬움이 크다. 혁주 죽고, 그 해 농사 장마비에 고스란히 쓸려보내고 농약을 들이켰던 아버지이기에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 싶어 정숙도 당신 앞에선 바른 말조차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만 가자.”

정숙은 또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앞으로 나서는 아버지의 뒤를 쫓아간다. 나들이를 가든, 일을 하러 가든, 성묘를 가든 당신은 늘 저런 식이었으니 정숙의 어머니도 이제 다정다감한 배려 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다. 앞으로 멀리 떨어져 걷는 아버지의 큰 걸음을 뒤따라 가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정숙의 마음 속에 벌떼같이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겹쳐 들어 발걸음 하나 옮겨 놓기가 천근만근이다. 다시 서울로 가고 싶다고, 이번 학기엔 다시 복학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하려고 했지만, 촌동네 짜장면 집에서 계획하지도 않았던 등록금과 방값이 나올 리도 만무하고, 돈이 생긴다 해도 지금 같은 상황으로는 어머니가 펄쩍 뛰고 난리가 날 것이니 정숙은 욕만 한 차례 더 들을 것이 뻔하다.

식당에 도착하니 ‘금일휴업’ 팻말은 없고, 외지에서 온 아주머니 두 명이 짜장면을 먹고 있다. 단무지를 더 달라고 해서 가져다 주고, 정숙은 부엌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정숙이 다듬어 놓은 양파를 한 광주리 썰어 놓고, 이제 당근을 씻고 있다.

“왜 벌써 일어나셨어요?” “입에 거미줄 칠 일 있냐?”

어머니는 하품을 크게 하더니, 설거지물에 첨벙첨벙 손을 담근다. 아버지는 식당 뒤로 돌아가 며칠째 만들고 있는 닭장에 또 손을 댄다. 날이 풀리면 닭을 한번 길러보겠다고 한다. 이제 달걀은 따로 안 사도 된다고 허허허 웃는 아버지이지만, 어머니는 그 면전에 대고 수고비도 안 나오겠다며 그만 두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닭장을 가릴 철망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씻을게요. 어머니는 썰으세요.”

“그러자…… 아니, 그건 좀 있다 하고 빨리 밀가루 한 포 보내 달라고 해라. 저녁 손님 받을 게 모라잘 것 같네. 어여.”

"정숙이 수감중일 때 자신은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었으면서도 그 위험부담을 갖고 그녀에게 면회를 왔던 증호였다."

정숙은 손에 묻은 물기를 행주로 닦아내고 계산대로 간다. 수화기를 들려고 하는데 때마침 전화가 걸려온다.

“한중반점입니다…… 네, 그런데요…… 전데요…… 어, 선배님!”

정숙은 선배님, 하면서 한손으로 수화기와 입을 감싸 가린다.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는 것 같자 이선배는 전화 받기 곤란한 것 아니냐고 예의 바르게 묻는다. 정숙은 혹시라도 전화가 끊길까 싶어, 아니라고 금방 대답을 하고 만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통 연락이 없어서 전화했어. 휴대폰도 없앴더라.”

“이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현아한테 물어봤지. 안 가르쳐 주려고 하던데. 왜 전화하면 안 되는 번호인가?”

“아녜요. 엄마, 아빠 하시는 가게 번호예요.” “무슨 가게?”

정숙은 이선배가 대충 넘어가고, 이제 학교 얘기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졸업은 몇 명이나 했는지, 군대에 갔던 동기들은 복학을 했는지, 중호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집이요.”

“중국집? 허허! 그러면 짜장면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겠구나. 나중에 한번 친구들 데리고 가야겠는 걸.”

정숙은 이선배가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는 말이 빈말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어, 그냥 됐어요, 하고 만다.

“정숙아! 밀가루 시켰냐?” “아직요……”

“이 년아, 뭐 하는 거냐? 빨리 전화 하라니까.”

정숙은 어머니의 ‘이 년아’ 소리를 이선배가 들을까봐 손바닥으로 송화기 쪽을 꼭 감싼다.

“식당에 사람들이 많은 가봐. 시끌벅적하네.” “네? 네…… 조금요.”

정숙은 별 얘기도 못 했지만 이제 그만 전화를 끊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정숙아!”

정숙은 다시 송화기를 쥐어 잡는다.

“아예 두 포 가져오라고 해라! 그리구 포대 안 찢어진 걸루 보내라 그래. 지난 번엔 한쪽이 다 헤진 걸 보내서는 밀가루 삐질삐질 흘러나오고 그게 뭐누! 거 꼭 얘기해라.”

“네. 알았어요…… 선배님. 그만 끊을게요.” “벌써? 그래…… 그러면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잘 있어.”

그러나 정숙은 실로 반년만에 학교 쪽에서 온 소식을 이렇게 잘라 버리는 것이 못내 안타깝고 맘이 쓰리다.

“선배님! 잠깐만요.”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선배를 불러 보지만 뛰뛰, 하는 것이 벌써 저쪽에선 수화기를 내려 놓은 뒤이다. 정숙은 중호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었다. 자취방에 숨어 있다가 잡혀 이제서야 2차 재판에 들어간 중호가 많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정숙이 수감 중일 때 자신은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었으면서도 그 위험 부담을 갖고 그녀에게 면회를 왔던 중호였다. 그렇게 강해 보이던 중호는 창살이 얼키설키 얽힌 유리창 앞에 정숙의 모습이 나타나자 이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결국 중호는 면회 시간 내내 눈물을 끊지 못하고,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하자 그저 ‘아프지 마’ 한 마디 하고 돌아갔었다.

“정숙아. 뭐 하냐? 밀가루 시켰냐?” “아직요.”

“저 년이 뭐 하는 거여?”

정숙은 제분소에 전화를 걸어 밀가루를 주문한다. 그리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간다.
“이 년아. 너 요즘 무슨 정신으로 사는 거냐?”

어머니도 어떤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것은 아닐테지만 정숙도 이번에는 입을 꼭 다물고 만다. 그리고 당근에 붙어 있는 흙을 털어내는데 또 공연한 서러움이 밀려와 함지에 눈물 방울이 툭, 떨어진다.

“엄마……” “왜?”

“엄마. 이년, 저년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스물다섯이구요. 엄마 그렇게 욕하시는 거 남들 보기에도 안 좋아요.”

“뭐여?”

어머니의 표정이 금방 굳어진다.

“저년이…… 그래, 내가 못 배워서 그런다.”

그런 이후에는 달그락거리던 설거지 소리가 점점 작아져 간다. 그러더니 어머니는 저녁 내내 아예 말씀이 없다. 아버지와 셋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다가도, 보통 때 같으면 ‘물 가져와라’ 하였던 것을 오늘은 직접 부엌에 가서 물을 떠다 들이킨다. 저녁상을 다 치우고 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니 정숙은 조금 참으면 될 것을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이년아, 저년아 하는 것이 어쩌면 고단함을 풀어내는 어머니만의 방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저녁 먹은 게 얹혔나…… 뭐 그리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어?”

아버지는 저녁 내내 아무 말이 없는 어머니가 불편한 모양이다.

“어디 아퍼?” “아니유. 그냥 생각이 많아져서 그러네요.”

“무슨 생각은…… 그건 자꾸 해서 뭐해. 사는 건 그대론 걸. 그러지말구 이리 와. 우리 정숙이랑 셋이 고도리나 칠까?”

“아휴, 됐어유. 집안 식구들끼리 돈 따먹을 일 있어유?”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늘 이 사람 왜 이래, 한다. 아버지는 잠들기 전까지 그 네시간 정도의 시간이 무료한 것이다. 아버지는 텔레비전 채널을 터덕터덕 돌리다가, 이제 이것도 바꿔야 하는데, 하며 소주 한병을 꺼내 온다. 소주만 그렇게 마실 것이 마음에 걸려 정숙은 김치를 가져오고, 저녁상에 올려 놓았던 두부찌개를 가스렌지에 올려 놓는다.

“거기 뚱뚱한 아줌씨 이리 와서 한 잔 하시지.”

다행히 어머니는 아버지의 너스레에 슬며시 넘어가 주신다. 아버지가 먼저 어머니에게 술을 따라 준다. 정숙은 두부를 몇 조각 더 넣고 파도 썰어 넣는다. 술 안주로 끓고 있는 두부찌개를 보고 있자니 정숙은 또 걱정이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서 저렇게 술을 마시다 보면 장사 얘기, 농사 얘기 하시다가도 마지막에는 결국 죽은 혁주 얘기가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탁자를 붙들고 눈물 범벅이 된 후에야 술상을 치우게 된다. 오늘도 정숙의 걱정처럼 그렇게 될테지만…… 정숙은 두부 찌개를 숟가락으로 휘이 저어본다.

“정숙아! 이리 와. 너두 한 잔 해라!” “아뇨. 됐어요.”

“얼른 와라. 아부지랑 한 잔 하자.”

정숙은 두부찌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자신도 그 옆에 앉는다. 아버지가 술을 따라 준다. 태어나서 술을 가운데 놓고 아버지, 어머니와 둘러 앉아본 경우는 처음이라 마시기도 전에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가 아직도 말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벅찬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신다. 그리고 아버지의 술잔도 가득 채워 놓는다.

“크허어. 이쁘장한 딸이 주는 술이라 더 맛있구만. 자아, 당신도 한잔 해.”

아버지가 당신의 빈 술잔을 어머니에게 넘겨주며 술을 권한다.

“제가 따라 드릴게요.”

정숙은 어머니 마음을 풀어드릴 때가 지금이다 싶어, 아버지 들고 계신 소주병을 넘겨 받아 어머니의 술잔에 기울인다. 그러자 어머니는 소주병을 슬쩍 밀어낸다. 정숙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소주병을 그만 놓쳐 버리고 만다. 병은 바닥에 떨어져 금방 깨져버리고, 이러저리 흰소주 방울이 튀어간다.

“이 사람. 뭐 하는 짓이야! 아까 먹은 술이 덜 깼나. 왜 이래?”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는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정숙은 양철 쓰레받이를 가져와 깨진 병조각을 주워 담는다. 아버지는 술 한병을 더 가져와 혼자 따라 마시고, 어머니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유리 조각을 치우는 정숙에게 한 마디 한다.

“이게 뭔 꼴이야! 이 년아! 이게! 이게 뭔 꼴이냐구!”

쓰레받이에 담긴 병조각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정숙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내 주룩 흘러내린 눈물은 가슴께로 파고든다. 정숙은 쉽게 식당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낮에 연탄재를 뿌려 놓았던 곳에 가서 선다. 연탄재는 이미 바닥에 단단하게 얼어 붙어 있다. 정숙은 엷은 딱지가 앉기 시작한 손바닥의 상처를 슬쩍 비벼본다. 아주 작지만 믿음직한 방어막이다. 정숙은 자신도 하늘소처럼 단단한 껍질을 쓰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일 당장 서울 올라 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숙에게 어머니가 던지는 말이다. 정숙은 너무도 당황하여 쓰레받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멍하니 서 있는다.

“학교 시작하려면 아직두 멀었는데, 뭘 벌써 올라가라구 난리야?”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도 무척 놀란 표정이다.

“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요. 가서 굶어 뒈지든지 길바닥에서 얼어 죽든지 다 지 타고난 팔자니께, 올라가서 지 하고 싶은 짓거리 맘대로 하게 놔두라니까요. 지가 무슨 세상을 바꿔 볼 거라고! 에고…… 이 년아.”

정숙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따라나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두 분은 큰길가에 볼 일이 있다고 하며 끝내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온다. 아버지는 어머니 눈을 피해 만원짜리 열 몇 장을 꾸깃꾸깃하게 접어 정숙의 주머니에 넣어 준다. 아마도 겨우 내내 비닐 하우스 일을 해서 번 돈이리라. 어머니는 내내 말씀이 없다가 저만치 고개에서 버스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정숙에게 몇 마디 던져 둔다.

“이 년아. 나는 이 년, 저 년 안 하고는 못 산다…… 그리구 그 짓거리를 하드라두 니 몸 챙기면서 혀. 니 몸 다치면 니만 아프냐. 이 속 좁은 년아. 내 니 성깔이랑 고집을 아니까 서울 올라가면 그 짓거리 또 손댈 줄 알면서도 이렇게 보내는 거여…… 동전 있냐?”

정숙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부적 하나를 꺼내 정숙의 손에 쥐어 준다. 본래 버스에 사람 태워 보내며 손 흔들어 주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라 정숙도 그저 창밖으로 당신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당신 주머니 속에 있던 까닭에 따뜻해진 부적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어려운 글씨가 금색 실로 촘촘히 박혀 있다. 버스가 갑자기 쿵, 하고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더니 다시 내려 앉아 제 길을 간다. 얼마 가지 앉아 버스에 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에 빠져든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팍에 다시는 빼어 버릴 수 없는 돌멩이가 박히는 것도 같고, 마른 모래를 한 움큼 삼키는 것도 같다.

이승호(유동2, 한철)
 

소설당선 당선소감- 이승호(유동2, 한철)
좀더 원숙미를 가질 미래의 글을 꿈꾼다

중심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그 어설픈 자세가 피곤할 즈음엔 여지없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가장자리’이다. 소외의식을 스스로 느끼는 소외된 자들만큼 처절한 이들이 더 있을까 싶다. 주제넘지만 그래도 내 글에서는 ‘가장자리’를 품고 싶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상 나름대로의 사명감은 채비하려고 하나보다.

남겨진 자존심 덕에 끝내 폐지로 분류할 수 없는 수많은 습작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는 내내 부끄러운 마음 뿐이다. 그러나 아직 글이 농익지 못한 까닭은 손가락과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일 것이다.

재수를 하고, 입대를 하고, 복학을 하는 내내 ‘나는 아직도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삶의 대응 방식은 여전히 조급하고, 언어는 여전히 유치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 자신을 체벌하고 싶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떠한 희망이 이렇게 배어오르기도 한다.

나의 글이 자라지 못한 까닭은 결국 내가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러나 시간과 그 부속물이 나를 밀어 결국 나도 멋지게 자라게 될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것들이 합쳐져 언젠가는 원숙미를 갖추게 될 내 ‘미래의 글’을 꿈꾸다보면 버스 안에서 혼자 클클거리는 것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한중반점’. 애착이 많이 가는 글이지만, 상을 받으리라곤 기대하지 못하였다. 글을 곱게 보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