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읽은 책과 세상] 최선이라는 이름의 오만
[기자가 읽은 책과 세상] 최선이라는 이름의 오만
  • 이상환 편집장
  • 승인 2019.05.12 01:11
  • 호수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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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역사소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룬 역작이다. 소설은 정유년(1597년) 4월 1일부터 시작해 무술년(1598년) 11월 19일 이순신의 죽음으로 끝난다. 소설 속 이순신은 자신이 ‘왜 싸워야 하는지, 또 왜 우리가 옳고 저들이 틀렸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적과 싸울 뿐이다. 왜구 역시 그렇게 그려진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영화화한 <명량>을 보며 “적군을 단지 적으로서 희화화하지 않았으면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소설 속에서 정작 나쁜 것은 선조와 멀리서 왜군을 조정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들처럼 보인다. 선조와 히데요시는 대의명분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다. 이순신의 싸움은 왜구와의 싸움이라기보다, 명분 같은 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태평성대’의 꿈을 위해 조선을 불바다로 만들고, 선조는 대의명분에 사로잡혀 의병을 죽이는 등 전쟁을 더욱더 파국으로 이끈다. 도요토미도 선조도 자신들의 최선을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왜 상황은 그토록 악화하기만 했을까.

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최악의 순간은 종종 최선을 다하려는 인간들에게서 비롯됐다. 내 ‘숭고한 대의’로 이 땅에 천국을 만들겠다고 믿은 이들의 ‘최선’이 지옥을 만든 셈이다.

1965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들을 비밀리에 학살한다. 이는 반대파인 공산당을 숙청하고, 경제발전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수하르토’의 야심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에서는 ‘인도네시아 학살’에 의해 여전히 고통 받는 인도네시아 인들이 나오기도 한다. 독일의 나치와 히틀러 역시 그러했다. 최선을 다해 독일인들의 천국을 만들려던 그들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 최악의 비극을 재현했다. 중국의 모택동은 또 어떠했고, 멕시코의 민주화 대학살은 또 어떠했나.

이러한 비극적 사건들은 인류사에 끊임없이 되풀이돼왔다. 이교도를 물리치고 천국을 만들겠다는 십자군 전쟁은 중세에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수많은 학살과 전쟁 뒤에는 ‘최선의 명분들’이 있었다.

‘선함’의 반대는 ‘악함’이 아니라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최선이라는 말은 물러설 자리를 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선이라는 말에는 ‘나는 옳다’는 강한 확신과 오만함이 배 있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선함’은 없다. 선하다는 것은 바로 조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악은 스스로가 선하다고 믿을 때 가장 악랄해진다. 그래서 최악의 인간은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남으려는 이들이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남한산성에서 투쟁하던 일을 담은 김훈 작가의 또 다른 역사 소설이다. 소설 속 겨울, 남한산성 안은 ‘어찌할 것인지’를 둘러싼 싸움으로 시끄러웠다. 척화파인 김상헌은 명분을 위해 싸우자 했고 주화파의 최명길은 삶을 위해 항복하자 했다. 임금은 쉽게 결단하지 못했다.

김훈 작가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려는 것은 미래에서 판단한 오만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저 가치가 달랐을 뿐,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찌 그리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다만 살면서 한 선택들이 ‘차선’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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