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생일선물 주지 말자
우리, 이제 생일선물 주지 말자
  • 성대신문
  • 승인 2019.05.27 14:57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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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 한가운데서 광안대교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경이와 주은이를 만나기 위해 다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부산에 왔다. 학기 내내 자주 만났고, 두 달이 지나면 다시 만나겠지만, 방학에도 보고 싶은 LC 친구들이었다. 현지 가이드가 둘이나 있는 덕분에 부산 맛집에도 찾아가고, 이제 막 명소로 떠오르는 영도 흰여울길도 들렀다. 바닷바람이 꽤 세차게 불었지만, 찰칵, 찰칵, 카메라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우리를 담았다. 날이 어두워질 때쯤 깡통 야시장에 가서 배를 채우고, 광안리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 걷느라 지친 다리를 풀어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가 열렸다.

설렘 가득했던 스무 살 새내기 시절에 처음 만난 집단이 LC이다 보니, 만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공유한 시간이 상당했다. 각종 신입생 환영회에 가고, 직권배정 수업을 같이 듣던 1학년을 거쳐, 다른 전공에 진입했어도 시간을 맞춰 밥을 먹고, 술집이 아닌 도서관에서 만나고, 더욱 다양한 주제로 생각을 나누는 2학년이 되기까지. 많은 추억을 공유한 우리는 이제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도 서로의 생각을 읽고, 서로의 노래 취향도 알고 있고, 또 매년 생일을 함께 보내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정하고 유쾌한 친구들을 만났을까, 하는 생각으로 넓은 밤바다에 비치는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떤 기준으로 묶였는지 모를 LC에서 만나 이렇게나 깊은 관계가 되었으니, 우리 인연은 아주 오래 가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백 살까지 생일선물 고민하느니 앞으로 아예 주고받지 않는 게 어때?’ 단순히 선물의 문제라기보다, 길고 깊은 우리 인연에 조심스레 동의를 구하는 물음이었다. 경이와 주은이는 역시나 속뜻을 읽었고, 우리는 앞으로 함께할 수십 년의 생일에 편지만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단란한 밤이 깊어갔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사망년, 아니 삼학년이 되었다. 올해도 각자 다른 전공 탓에 같이 듣는 수업은 없지만, 매주 월요일 점심을 함께 먹는다. 엑소 노래만 듣던 내가 이제는 잔나비 노래도 듣는다, 경이가 동아리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은이가 사랑니 두 개를 뽑아야 한다, 등등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생일도 함께 보냈다. 부산에서 약속한 대로, 거창한 선물 대신 각자를 닮은 필체로 정성스레 적은 편지를 주고, ‘100세 인생 함께 가자’는 글귀가 쓰여 있는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이틀 전에 예약한 대학로의 모 식당에 찾아갔는데, 주인아저씨의 착오로 예약이 취소되었다. 우리는 이 나름대로 추억이라며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리조또와 짬뽕을 먹으며 새삼, 각자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 평화롭고 여유로운 점심을 함께할 수 있음에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밥을 먹은 뒤에 경이는 아르바이트하러, 주은이는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는 수업을 들으러 세 갈래 길로 흩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월요일에 다시 만날 것이고, 서로의 100세 생일에도 편지를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송서연(통계 17)
송서연(통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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