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살롱
미드나잇 인 살롱
  • 김은리 기자
  • 승인 2019.09.03 11:26
  • 호수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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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들의 공론장에서 탄생
분별 있게 향유하며 즐기는 문화 만들어야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타임 슬립한 주인공이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을 만나는 공간으로 친숙한 ‘살롱(Salon)’이 국내에서 다시 뜨고 있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취향을 공통분모로 한 느슨한 관계가 주는 편안함이 사람들을 살롱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활짝 열린 살롱에 마주 앉아 저마다 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새로운 취향 공동체 문화를 들여다본다.

17세기 프랑스에서 한국의 다방까지
프랑스어 살롱은 ‘상류층 저택의 응접실’ 또는 ‘사교모임’ 등을 뜻한다. 살롱문화는 17~19세기 상류층 귀족 부인들이 문학, 예술 등 문화계 인사를 집으로 초대해 객실을 내주고 식사를 대접하면서 작품 낭독과 비평, 자유토론의 자리를 만든 데서 시작한다. 신분제 시대였음에도 당시 살롱에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평등하게 대화하고 토론했다. 여기서 좀 더 발전한 살롱의 형태는 19세기 파리의 카페에서 갖춰진다. 전자는 귀족 부인의 주도하에 주최됐지만, 후자는 일반인과 예술가가 모임을 주도하는 수평적인 모습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살롱을 가리켜 ‘새로운 문화공간을 주도하는 최초의 학교’라고 표현했으며, 실제로 ‘커트루드 스타인’이라는 미국인 작가가 운영한 ‘스타인 살롱’에서는 피카소, 헤밍웨이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거쳐갔다. 이와 같이 살롱은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분야의 것이 교차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창조와 혁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문화적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다방이 살롱의 역할을 했다. 다방은 1930년대 경성에서 유행했는데, 당시에는 일본을 통해 서구에서 수입된 문화를 소개하고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이후 모더니즘의 바람이 불면서 지식인을 중심으로 문학과 음악 등 예술을 논하던 곳이 됐으며 소설가 이상도 종로구 청진동에 다방 ‘제비’를 운영하며 문인들과 교류했다. 이상은 다방을 방문하는 사람에 대해 “심정의 회유를 소원하는 티 없는 사람의 하나가 된다”고 묘사했는데, 유럽에서 유행한 살롱문화에 대한 동경이 다방 운영의 동기가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다방은 1960년대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다. 도시로 몰려든 젊은 여성을 유혹해 성을 상품화한 상술을 부리는 다방이 급속히 늘어났고, 살롱이라는 말도 퇴폐 유흥공간인 룸살롱에서 그대로 사용됐다.

취향의 시대에서 다시 꽃 핀 살롱문화
현대에 다시 유행하는 살롱은 룸살롱도, 헤어살롱도 아닌 본래의 프랑스 살롱문화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집단보다 개인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로의 변화는 과거 살롱문화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u Only Live Once) △워라밸(Work-life Balance)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불확실한 미래나 거대한 꿈을 좇기보다는 더욱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현재와 소박한 행복을 찾는 것에 가치를 둔다. 집단이 말하는 수직적 체계에서 성공을 쟁취해 얻는 행복 대신 나만의 취향을 추구하면서 얻는 행복을 중시하므로, 집단에 매몰되고 지워졌던 개인의 취향과 개성은 이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다.

취향을 어떻게 매개할 것인지에 따라 살롱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살롱에서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독서모임 ‘트레바리’와 소셜 살롱 ‘문토’는 대표적인 콘텐츠 중심 살롱이다. 트레바리는 책을 매개로 취향을 공유한다. 읽고 쓰고 대화하고 때로는 전시회를 찾아가는 이벤트를 열며 친목 모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독후감 쓰기를 최소한의 의무로 정해두고 있다. 트레바리에 참가한 신누리(28) 씨는 “평소에 직장인은 생산적인 대화를 할 기회가 적다고 느꼈는데, 트레바리에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독후감을 쓰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고 꾸준히 글로 정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문토는 △독서 △여행 △요리 등의 다양한 주제에 맞는 리더를 섭외해 모임을 구성하고 멤버를 모집한다. 주제를 발제한 리더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형식이다.

대부분의 살롱은 유료 회원제로 운영된다. 유료임에도 참가하는 이유에 대해 신 씨는 “높은 가격이라 처음에는 망설였는 데, 막상 참여하다 보니 얻는 것이 더 많아서 비용을 감수하게 됐다”고 답했다. 합정동에 위치한 '취향관’은 유료 회원이라면 언제든 공간에 나와 다른 회원들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지만 비회원은 머무를 수 없는 사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소속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수평적 관계 또한 살롱문화의 핵심이므로 참가자들은 서로의 신상을 묻기보다는 각자의 생각과 취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문토의 권빈 매니저는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이름 뒤에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굳이 직업이나 나이로 서로를 소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살롱의 모습을 전했다.

'문토'의 '생각하는 주방' 모임이 진행되는 모습문토(munto.kr) 제공
'문토'의 '생각하는 주방' 모임이 진행되는 모습
ⓒ문토(munto.kr) 제공
'취향관'으로 들어가는 문
'취향관'으로 들어가는 문

주변을 물들이다
살롱문화는 우리 주위의 공간을 바꾸기도 한다. △성수동 △을지로 △합정동 등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살롱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은 지역의 개성을 살려 방문객을 모으고 지역 문화를 발전시킨다. 이러한 공간 재생은 기존에 있던 것을 없애는 재건축과 달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공생하며 지역 고유의 개성을 살린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다른 산업과 다양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서 모임은 출판시장과 연결돼 있다. 대형서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독립서점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세심하고 친밀한 운영방식을 택한다. 따라서 독서모임이나 저자와의 대화 같은 살롱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이는 독립 출판물, 독립 잡지의 증가와 연결돼 결과적으로 새로운 출판 트렌드를 형성하기도 한다. 살롱문화를 담는 *플랫폼 산업 역시 살롱의 인기에 힘입어 발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플리케이션 ‘씀’은 글쓰기 모임을 위한 가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성숙한 문화로 나아가려면
이러한 살롱문화는 향유층이 20~30대에 쏠려있다는 점에서 서브컬처적인 성격이 있다. 살롱문화가 더욱 성숙한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참여 세대의 확대가 필요하다. 실제로 일본에는 노인살롱이 6만개 이상 존재하는데, 살롱 안에서 이들은 서로 대화는 물론 간병부터 일손 품앗이까지 다양한 활동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의 시니어 살롱은 기업의 후원을 받을 만큼 시니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새로운 것에 대해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롱이 무의식적으로 행복과 안정감을 주는 새로운 탈출구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영상대학교 광고영상 디자인과 정호훈 교수는 “소비사회의 모든 트렌드는 소비와 연결된다”며 “취향으로 뭉친 살롱문화도 관련 소비를 일으키기 위한 도그마(Dogma)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살롱문화가 단순히 트렌드를 좇는 *트렌드 도그마가 되는 현상을 경계했다. 즐기면서 참여해야 하는 살롱이지만 무엇을 얻고자 하는 목적성이 강해지면 결국 또 다른 강연회나 세미나 참석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살롱에서는 ‘선택적 문화 향유’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취향을 단순하게 경험하고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서 “취향이나 취미가 같다고 신념이나 태도가 같지는 않다”며 “관계 안에서 나와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이해도 높아져야 한다”고 올바른 공동체 문화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벨 에포크=‘좋은 시대’라는 의미로, 프랑스의 정치적 격동기가 끝나고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플랫폼 산업=시장참여자가 원하는 재화 및 서비스를 거래할 수 있도록 사이버에서 공간을 조성하는 산업을 뜻한다.
*트렌드 도그마=교조주의와 일맥상통하며,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좇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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