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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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에 입학허가를 받은 나는 전공하려는 학문의 핵심 언어가 ‘한문(漢文)’이었기에 예습을 하고자 당시 대구에 있던 어떤 노한학자를 찾아가서 배움을 청했다. 30년도 훨씬 넘은 세월이지만, 그때 풍경은 잊혀지지 않는다. 첫날, 선생님이 책장에서 『논어』를 꺼내어 앞으로 이 책을 읽자면서, 책을 펼쳐 첫 구절을 읽고 해석해 주셨다. 그 문장은 바로 다음과 같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항상 익힌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논어』「학이」1장-
 

그 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든 의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나는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를 이렇게 불렀다)에 들어간 8살 이후,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둔 20살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익히는 공부가 즐거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오르면 좋았지만, 공부 그 자체가 즐겁지는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정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학교에 다니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달려가는 소떼처럼, 그냥 관습적으로 학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복습하고, 시험치고 또 시험치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배우고 익히는 공부는 ‘즐거움’이라고 선언한 공자의 일갈(一喝)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이상하였던지... 공부라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즐겁다고 하다니….

그 해, 3월에 한문을 전공하는 학과에 입학하여 이후 박사학위를 마칠 때까지 쉼 없이 공부에 매달렸건만, 공자께서 말씀하신 ‘즐거운 공부’는 요원하였다. 이 공부의 정체를 모르니,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었다. 더하여 중국과 한국의 고전을 읽으면서, 공자의 이 즐거운 공부의 정체를 찾아낸 많은 선배학자들의 감탄을 보게 되었다.

나는 힘들고 괴롭기만 한 공부인데, 그분들은 그렇게 기쁨이었다니... 약간의 선망과 질투(?)도 생겨났다. 이 의문과 선망을 해소하는 데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의 최근에야 이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이것은 『논어』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공자가 제시한 사람의 살림살이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자 과정이었다.
그러면 이것은 과연 무엇인가! 주자(朱子)식으로 표현하자면, ‘인이불발(引而不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활쏘기를 가르칠 때, 활시위를 당기는 지점까지만 가르치고 발사하는 시점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이하면 그 갈 길은 제시하지만, 목적지로서의 답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주자가 불친절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답을 제공해봐야 소용없을 뿐 더러,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 형태를 말하고 또 말할 뿐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볼 뿐이다. 그래야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논어』의 모든 말들은 오로지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 도달하였을 때의 마음 상태를, 공자는 ‘기쁘다’라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손과 발이 춤춘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도 『논어』를 읽을 때, 공자와 정자의 그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다 같은 사람인데 우리라고 안 되리라는 법이 있겠는가!

나도 그 맛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는 없다.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단서는 알려주고 싶다. 내가 발견한 단서는 바로 삶이 나에게 주는 ‘고(苦)’이다. 괴롭지 않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우선 이것을 받아들이면 괴로움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다. 나만이 특별하게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자각은 일단 고해(苦海) 속의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누가 괴로워하는지를 잘 살펴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괴로워하는 것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도대체 누가 괴로워하는 지를 절실하게 찾아보는 데서, 공자가 말한 ‘즐거움’의 정체를 체험할 여지가 있다. 이 탐사의 여정이 바로  『논어』에서 이야기하는 공부의 정체이다. 아쉽게도 힌트는 여기까지 만이다. 부디 모두들 대학에서 하는 공부를 통해 그 답을 찾으시길!

이영호 부교수동아시아학술원
이영호 부교수동아시아학술원